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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우림 이원종 Nov 05. 2019

오래될수록 좋은 천량차, 하지만 주의해야한다.

흑차 천량차, 차 중의 왕, 하늘과 땅의 산물

세계 흑차의 중심 안화安化,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차 중의 왕 천량차


동정호 아래, 양자강 아래 후난성湖南省이 있습니다. 창사에 도착한 날,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추적거리는 비를 맞고 서둘러 모 호텔로 향합니다.


호남화래건湖南華萊健에서 주최하는 안화 흑차의 연토회 강연장에 도착하니 줄 잡아 천 이백 명쯤으로 보이는 인파에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강사의 열기가 참가자들의 가슴을 지피는 모양입니다.


차를 향한 호남인의 열정은 뜨겁습니다. 세계 흑차의 중심은 중국中國, 중국 흑차의 중심은 호남湖南, 호남 흑차의 중심은 안화安化입니다. 이러한 안화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세계차왕 천량차’일 겁니다.


천량차를 좋아하는 매니아에게 있어서, 진년 천량차는 꿈의 차이기도 합니다.


녹차는 신선할수록 대접받지만, 천량차는 묵을수록 대접받습니다.



이곳에서 들은이야기이지만 여러 해 전에 몇몇 한국인들이 안화의 황사평黃沙平으로 천량차를 찾아 왔다고 합니다. 춘절 때라 하니 설 전후해서 도착 하였는가 봅니다. 백사계와 여러 차창들을 돌며 진년 천량차를 찾았는데, 민간까지도 수소문했다고 합니다. 천량차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지극했던지 대접받은 엽저 마저도 수거해 갔다고 합니다. 아마도 제 생각에, 부산과 대구 쪽의 선배님들이 아니셨는가 싶습니다. 덕분에 후배는 수월하게 천량차 맛을 봅니다.


일반적으로 천량차의 탕색은 금황색 혹은 홍황색입니다. 맛은 깊고 부드러우며 찹쌀 향기가 납니다. 뜨겁게 달이면 생강홍탕맛이 나고, 식은 차는 달콤합니다. 다른 차와 달리 진년 천량차는 수십 번 혹은 수백 번을 우려도 그 맛과 향이 한결 같습니다. 몇 날을 우려도 우러나오며, 달콤하기 그지없습니다. 천량차 만의 미덕입니다.


그런데 흑차의 성지 안화 혹은 창사에서 묵는 동안 나는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호텔에서 제공되는 차가 립튼 홍차였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천 개 차상이 립튼 하나만 못하다’는 중국인의 자조가 곱씹어지는 순간입니다. ‘광저우에서 그토록 대접 받는 천량차가, 안화에서는 애물단지 취급 받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애달픔도 있습니다. 이래서야 ‘봉황이 높이 날자 위엄과 기세가 우뚝하도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한국에 돌아와 나는 모처럼 진년 천량차를 냅니다. 차연茶然이닿아 잠시 내게 머물러 있는 차입니다. 이 차를 나누며 나는, 찻자리의 소중함을생각합니다. 찻자리에 함께 한 이들을, 내가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그네의 현존現存을, 그네의 내면內面을, 그네의 영혼靈魂을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천량차는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의심스러운 천량차를 감별해 주의하자.


천량차는 1983년도에 복원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천량차의 역사는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록에 의하면 천량차의 시원은 1820년대입니다. 당시 산서성의 차상인인 진상晋商들이 안화의 유씨 집성촌에 주문을 냈다고 합니다. 이들은 호남뿐만이 아니라 복건이며 절강이며 안휘며 곽산 일대의 찻잎을 구매해 나라 안팎으로 공급했습니다. 신장이나 몽골이나 러시아나 유럽까지도 이들의 차가 흘러갑니다. 당연히 천량차 백량차도 그 품목의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때의 천량차를 ‘기주권’이라 하는데 천량 즉 36.25kg 이 그 계량 단위입니다. 드물게는 강주차상들이 주문하여 만든 ‘강주권’이 있었는데 그 무게는 천백 량 즉 42kg이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중에 누구여도 42kg짜리 강주권을 만나신다면,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골동 중에 골동일 것입니다.


여러 대를 거치며 천량차의 가공기술은 안화 강남의 류씨네 전승이 됩니다. 1952년이 되자 백사계차창이 류씨 일족의 도움을 받아 천량차의 가공공예를 전수 받습니다. 그러나 1958년 흑전차의 압착설비를 이용하여 화전차를 만들면서, 천량차는 무대에서 내려갑니다. 보다 고급의, 그리고 새로운 수요의 욕구에 부합하느라 천량차가 부활한 것은 1983년입니다. 백사계차창이 1982년에 전통적인 수공예 방식으로 천량차를 만들 줄 알던 기술자들을 모아 복원에 성공합니다. 1999년부터는 본격적인 재생산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량차가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천량차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체크 포인트를 갖게 됩니다. 누군가가 1960년대 혹은 1970년대의 백사계 천량차를 소개한다면,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합니다.

누군가는 이 천량차를 민간 천량차라고 소개할 수도 있습니다. 역시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천량차 부재 시대의 천량차입니다. 또한 민간에서 만든 천량차의 일부에서는 심각한 곰팡이 현상이 나타납니다. 차를 뜯어 품차를 하기 전까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천량차는 어떻게 만드는걸까?


천량차의 제작 공예에 대하여는 자세히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천량차 공예의 특수성이 형식보다는 정성에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다른 흑차와 마찬가지로 발효과정이 들어갑니다. 천량차의 제작과 발효는 모두 천지인의 조화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 증거의 하나가 칠성조七星灶입니다. 북두칠성의 정기를 머금도록 소나무로 홍배를 합니다. 매 작업마다는 일곱 명이 한 조가 됩니다. 전통적인 천량차의 건조는 노천을 이용합니다. 자연스레 말립니다. 낮에는 볕에, 밤에는 이슬에 맡깁니다. 때로 바람이 불고, 때로 비가 오기도 합니다. 하늘과 땅이 발효를 주재합니다. 이 과정을 칠·칠 곧 49일 동안 거칩니다. 천량차를 묶은 띠도 일곱 개입니다. 칠은 곧 양수이며 일월오성입니다. 해와 달 그리고 나무, 불, 흙, 쇠, 물의 일월성진이 천량차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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