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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Feb 05. 2021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울진 후포항에서 출발한 배는 빠른 속도로 바다 위를 달렸다. 물가에 돌멩이를 던지면 돌멩이가 물 위를 '통, 통, 통' 튀는 것처럼 거대한 배가 바다 위를 '통, 통, 통' 튀며 달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창 밖으로 파도가 매섭게 일렁이는 걸 보고 있으니 세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잠시 후 우리는 울릉도 사동항에 도착했다.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 미리 알아보긴 했지만, 생각보다 울릉도 자유여행에 관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 대부분 패키지로 여행을 오는지 배에서 내린 사람들 대부분이 기다리고 있던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매표소에 가서 버스 타는 곳을 물어보고 한참을 걸어 '여기가 맞나' 싶을 때쯤 저 멀리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버스에 올라타 기사님께 A리조트에 갈 건데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물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숙소까지 멀진 않았다. 언덕 하나를 올라가면 되는데, 체크인을 하고 나서 또 한참을 언덕을 올라가야 했다. 중간에 에스컬레이터까지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려니 여행 시작도 전에 온몸에 땀이 났다. 나중에 알았지만 울릉도는 산지가 많아서 유명 관광지는 대부분 전망대다. 이 말은 산꼭대기에 가야 멋진 전망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모노레일이 있어서 편하게 올라갈 수 있는 곳도 있지만, 어떤 곳은 바닷길이 공사중이라 산 하나를 넘어서 갔는데 그야말로 등산 코스였다. 뚜벅이 여행자답게 울릉도에서 얼마나 걷고 산을 올랐는지 두 다리가 튼튼해져서 돌아왔다.





짐을 정리하고 나서는데 리조트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여기가 국내야, 해외야 싶을 만큼 이국적이고 아름다웠다. 바다는 강릉에서도 많이 봤지만 울릉도 바다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좀 더 깊고 푸른 느낌. 어디든 낯선 곳에서 보면 더 새로운 법이다.  제주도도 멋지지만 울릉도는 사람 발길이 덜 닿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느낌이다. 울릉도 아직 안 가보신 분들, 코로나 끝나면 꼭 한번 가보세요. 두 번 가보세요. 한국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답니다.


울릉도 관음도로 이어지는 관음교.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는 세상 힘들지만, 내려올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이마를 스치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울릉도 곳곳을 다녔다. 때로는 일정을 변경해 예정에 없던 곳을 방문해보기도 했다. 이렇게 예정에 없던 여행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되기도 한다. 


울릉도에서도 내린 곳이 종점이었는데 옆에 마을버스가 하나 있었다. 나리분지 마을로 가는 버스였는데,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마을 버스를 탔다. 버스도 작은데 길도 꼬불하고 비까지 살짝 내려서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기도하면서 나리분지에 도착했다.


나리분지는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로, 말 그대로 산 속에 분지가 만들어진 마을이라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다. 교과서에서 배운 분지를 여기서 처음 봤다. 마을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이곳에서 산채비빔밥도 먹고 카메라를 삼각대에 놓고 사진도 찍었다. 우리 부부는 울릉도에 간 김에 셀프로 리마인드 웨딩 촬영을 했는데 너무 즐거운 추억이었다. 하얀 원피스에 운동화를 신고 산을 오르고 바다를 건너며 웨딩 사진을 찍었다. 두 다리는 힘들었지만 사진에 담긴 사진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보였다.


태하등대에서 한 컷.
죽도를 바라보며.
이동하며 당충전은 필수!


우리 부부는 결혼할 때 웨딩 사진을 신혼집에서 둘이서 찍었는데, 나는 나대로 예쁘게 나오고 싶고 남편은 카메라를 만지면서 본인 스타일링도 신경써야 하니 서로 예민해졌다. 그래서 사소한 말로 싸우고 신경 써서 체하고 장염 걸리고 휴가 내고 고생을 좀 했다.


그래도 셀프로 사진을 계속 찍다 보니 노하우가 많이 생겼다. 이탈리아 여행을 갔을  남편이 사진을 너무 많이 찍어서 '사진 찍으러 여행 왔나?' 싶을 정도였는데, 지나고 보니 남는 건 사진이다. 그때 10분이면 지나갈 거리를 여기저기서 사진 찍느라 1시간이 걸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라도 이탈리아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남긴 건 고마운 추억이다.


원피스에 운동화 신고 사진 찍던 추억. 우리가 전하고 싶은 웨딩 촬영의 추억이기도 하다.


아무튼 울릉도에서도 산이랑 숲속, 다리 위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우리 부부는 강릉에서 사진업을 하는데 각 잡고 찍은 웨딩사진보다 이렇게 여행하며 즐거운 추억을 담는 사진을 담고 싶은 소망이 있다. 운동화 신고 강릉 산과 바다 곳곳을 누비며 웨딩 사진 찍을 뿐 어디 안 계신가요?


울릉도의 택시.

울릉도에서는 버스와 택시를 이용해 이동했다. 지형이 험하기 때문에 렌트를 해서 운전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울릉도의 모든 택시는 SUV 차량이다. 산을 깎아 만든 도로를 지나려면 튼튼한 차와 단단한 마음이 필요해보였다. 버스 창밖으로 바다를 보며 감탄하다 보면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남편도 운전 신경 쓰지 않고 함께 여행을 즐길 수 있어 더없이 만족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꿈 같은 울릉도 여행이었다. 은희경 작가의 책 중에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는 책이 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지도를 검색할 때를 제외하곤 시계도, 스마트폰도 거의 보지 않았다. 스마트폰하는 시간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에선 쉽지 않았는데 낯선 곳을 여행하니 가능해졌다. 요즘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가끔씩 그때가 그리워진다. 어쩌면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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