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게 뭐야.
필자는 전시 공간 디자인 분야 쪽으로는 영화보다는 지식이 더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그와 관련된 글에서는 더 깊이 있는 (그렇다고 믿는다) 비판을 담을 수 있다. 아는만큼 깔 수 있으니까. 이런 이유로 영화에 대한 리뷰를 쓸 때에는 비판적인 글보다는 대개 마음에 들었던, 혹은 인상 깊었어서 추천할 만한 영화 위주로 글을 썼었다. 하지만 내가 보는 모든 영화가 그런 영화는 아니다. 추천하기 싫은 영화도 있기 마련. 내가 모르는 만큼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쓰려하나, 전혀 추천하지 않는 영화를 좋게 써서 누군가 보게 된다면 그것 참 슬픈 일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런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이번 글은 평소와는 다르게 까는 글이다. 그럼 시작.
모털 엔진의 첫 트레일러가 나왔을 때에는 기대가 아주 컸었다. 너무 컸던 게 문제였다.
전체적인 배경이나 비주얼은 참신하고 흥미를 이끌기에 충분했다. 포스트-아포칼립스 배경인데 도시 전체가 움직인다는 설정은 아주 새로웠으니까. 그리고 작은 마을을 잡아먹으면서 크는 것도 신기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을 줄은 몰랐다. 배경이 새로운 만큼 전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야 하니 어딘가 구멍이 나있더라. 괜히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상황으로 다양한 영화가 나오는 게 아니었다. 탄탄하고 설명이 가능하니까 그런 것이었다. 전혀 새로운 걸 창조해내는 데에는 그저 비주얼이 다가 아니었다. 그리고 비주얼만을 챙긴듯한 (안 챙긴 것 같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결국 혹평을 받았다. 이 이유에 대해 몇 가지 나누어보려 한다.
어느 영화건 드라마건 어떤 콘텐츠이건, 심지어 전시나 건축, 예술, 디자인에도 스토리가 있는 때이다. 그리고 잘 만들어진 스토리는 대중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며 사랑을 받게 된다.
이런 매체에서 하는 스토리가 있다면 이를 뒷받침해주는 근거, 혹은 플랏이 있을 것이다. 주인공의 성장 과정이 주된 줄거리라 하면 주인공 주변 인물들의 성격이나 배경, 혹은 주인공이 살고 있는 시대, 물리적인 배경이 있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주된 이야기와 맺어지고 끝나는지, 얼마나 탄탄하게 엮여 있는지에 따라 잘 만들어진 스토리와 아닌 것에 차이를 느끼게 된다.
모털 엔진에서는 주된 이야기의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를 죽인 놈을 복수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 함께한다- 대충 이 정도? 그리고 이 요리에 부수적인 향신료가 들어간다. 새로운 인연이 존경하던 그 나쁜 놈에게 통수를 맞고 주인공과 함께 공공의 적을 갖게 된다던지, 알고 보니 그 나쁜 놈이 주인공의 아빠였다 던 지, 주인공을 죽이기 위해 나서는 슈라이크가 주인공을 키웠던 사람이었다던지.
주 요리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향신료를 너무 과하게, 그리고 조금 부적절하게 사용한 기분이 들었다.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바로 주인공과 발렌타인의 관계. 아니 이거 그냥 스타워즈 판박이 아닌가? 영화 막바지에 우리가 연속극에서나 보던 ‘아임 유얼 파더’ 를 시전한다. 물론 이야기 흐름상 충분히 가능한 전개였고 말이 안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굳이? 이 설정 없이도 충분히 전달하려고 하던 이야기는 그대로 전달이 잘 되었을 것이다. 무언가 반전을 위해, 반전이 있을 법한 시간대이지만 전혀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이거 너무 억지로 넣은 것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또, 슈라이크의 엔딩도 너무 어이가 없기 짝이 없었다. 그도 알고 보니 누군가의 아빠였고, 아이에 대한 애착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설정인데 무슨 그렇게 갑자기 죽어버리나? 슬프지 않은 것과 행복한 것은 다르다. 이 안드로이드는 슬픈 것을 모르게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이 괴물도 슬퍼 보이지 않기에 아 그렇겠거니 하는데 아니 왜 행복한 모습을 보고 갑자기 오작동을 일으키면서 죽는 것일까. 슬프지 않은 것을 원했지 행복한 것을 원했다면 얘를 키우면서 충분히 웃는 모습을 보지 않았나. 뭔가 어설프게 급 마무리짓는 느낌이었다. 다시 말해, 이전 웃는 모습을 볼 때에 주인공도 안드로이드로 만들겠다더니 갑자기 자기가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니까 죽어버리는 이상한 로봇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이 로봇은 매정하고 세기로 유명했다고. 근데 그런 위압감이 특별히 느껴지지도 않았다. 차라리 여러 마리가 나왔다면 모를까. 이 외에도 스토리의 구멍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글이 몹시 길어질 것 같기에 (이미 길지만)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자.
한 가지 영화를 보면서 그리 달갑지 않게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주인공 헤스터의 상처였다. 이 부분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그 상처가 생긴 이유는 발렌타인이 휘두른 칼 때문이었다. 한 방. 근데 큰 헤스터의 상처에는 무슨 줄기나 나무의 가지처럼 갈라져있다. 아무리 봐도 칼에 맞아 생긴 상처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원인을 몰랐을 때에는 상처의 원인이 너무나도 궁금했는데 알고 나니 김이 빠지면서 매우 실망스러웠었다. 이야기랑 분장이랑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아, 물론 필자는 의사가 아니고 어릴 적 저런 상처를 입지도, 입은 사람도 보지 못했으니 실제로 저렇게 피부가 자랄 수 있다고 하면 반박은 못하겠으나, 상식적인 선에서는, 그리고 직관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이 영화에서는 적어도 저런 분장은 미스였다고 생각한다.
그럼 두 번째.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하는 것. 바로 주인공의 외모이다. 주인공의 외모를 비하하거나 평가하는 게 절대 아니다! 다만 화면에서 노출이 많은 캐릭터인 만큼, 보았을 때에 거부감이 최대한 들지 않게 해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이 영화가 만약 킬링 디어 같은 무거운 영화라면 이해한다. 영화의 분위기도, 캐릭터도 조금 뭐 거부감 들 수 있다. 아니 그런데 오락영화에서, 그것도 여주인공의 얼굴에 흉측하고 큰 상처를 만든다는 것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물론 이런 생각을 깨는 시도였음에는 만족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상업적인 영화이지, 예술성을 따지는 영화가 아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다.) 그러니 보는 관객의 눈이 즐거워야 할 텐데, 다른 비주얼은 흥미롭고 좋은데 왜 하필 주인공만 저런 것이냐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결국 그녀를 더욱 불쌍하게, 비운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한 속셈 아니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부분은 충분히 얼굴의 흉터 외의 방법으로 표현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쉽고 슬프지만 상업 영화에서 캐릭터의 비주얼은 중요하다. 받아들여야 한다.
피터 잭슨. 반지의 제왕. 아마 이 때문에 기대치가 높았던 사람들이 꽤 됐을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멋진 영화가 나올까, 얼마나 흥미롭고 재밌으면서 눈도 즐거운 영화가 나올까! 하지만 기대가 높은만큼 실망도 커지는 법. 바람을 불어넣는 광고와 홍보 또한 한몫을 했었었다. 아마 피터 자신도 영화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겠으리라.
참, 중국 자본에 굴복한 모습 또한 한 마이너스를 했으나, 그래도 땅덩이가 크니까 그러려니 했다. 근데 그럼 미국은 왜 안나와? 러시아는!? 영국 중국 딱 두 국가만 나오는 것은 아주 실망스러웠다. 나라끼리 좀 부딪히고 그런 맛이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