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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훈 Jul 11. 2023

영화의 도시 LALA LAND, 미국에서의 마지막 여행

미국 교환일기 6

어느덧 마지막 여행지의 기록이다. 사실 미국에 오면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텍사스도 뉴욕도 아닌 LA였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LA는 필수 여행지가 아닐까 싶다. 지금으로부터 13여 년 전에 가봤던 곳이며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지만 그때는 테마파크가 주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LA 여행은 영화가 중심이 된 여행이었다. 영화 여행인 만큼 방을 할리우드 거리에 잡았으며 그 인근만을 여행했다. 



할리우드 거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명예의 거리'다. 보도 자체가 '명예의 거리'라고 할 수 있으며 길이 2.1Km로 2752개의 별이 있다. 처음 이곳을 걷다 보면 아는 배우를 찾고자 계속해서 고개를 바닥에 떨구고 다닌다.




숙소에서 알게 된 두바이 친구가 무하마드 알리의 별만 유일하게 벽에 붙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왜 수많은 유명인들 중 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별은 돌비 극장 입구, 오른편 벽 쪽을 잘 살펴보면 찾을 수 있다. 그 외에도 로빈 윌리엄스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그리고 비틀스의 별들도 찾았다. 우연히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차이니스 시어터(Chinese Theater)' 앞을 가보면 유명 배우들의 발도장과 손도장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 배우들 중에는 유일하게 이병헌 배우와 안성기 배우의 사인이 있다.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돌비 극장이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사진처럼 각 해에 수상한 작품상을 벽면에 걸어놓는다. 2019년에는 기생충(PARASITE)이 자랑스럽게 걸려있다. 약 20불 정도 지불하면 시상식이 이뤄지는 극장 안을 투어할 수 있지만 내가 여행하는 날들에는 스케줄이 없어 들어가 보진 못했다. 


돌비 극장을 마주 보며 오스카 시상식이 열릴 때 이곳의 모습은 어떨지 그려보았다. 차에서 내려 극장 문까지 펼쳐진 레드 카펫을 따라 당당히 걸어들어가는 감독과 배우들. 이곳에 자신의 작품을 들고 온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된 일일까. 나는 그 앞에 서서 영화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돌비 극장 맞은편에 위치한 루스벨트 호텔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처음으로 개최되었던 곳이다. 100여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여전히 할리우드 거리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할리우드 거리는 작지만 화려한 곳이다. 처음 이 거리에 도착했을 때는 약에 취했는지 벽을 보고 욕하는 사람부터 홈리스, 대마 냄새, 정신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거기에 처음으로 해외에서 오롯이 혼자 여행을 하게 된 부담까지 더해 혼이 쏙 빠져나갔었다. 물론 다음 날 바로 적응됐지만.



할리우드 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를 가면 아카데미 박물관(Academy Museum of Motion Picture)이 있다. 오픈한지 2년 밖에 되지 않아 한국에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거 같다. 로스앤젤레스 뮤지엄(LACMA) 건너편에 있어 같이 관람하기에도 좋겠다. 하지만 나는 시간 관계상 아카데미 박물관만 관람을 했다. 일반인은 25$ 지만 학생 요금은 그보다 훨씬 저렴하다. 



이 박물관은 영화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관람할 수 있게 만들었다. 때문에 영화사 속 발명품, 주요한 사건, 영화 등을 2시간 남짓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압축해서 볼 수 있었다. 최초의 영화와 함께 만들어진 시네마토그라프나 과거 영화 촬영 당시 사용했던 거대한 필름 카메라 등 한국에서 쉽게 보기 힘든 다양한 사료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영화 <대부>, <죠스>, 그리고 <스타워즈>에서 사용했던 실제 소품들을 전시해 놓은 모습이다. 사진을 설명해 보자면 대부 속 가족들이 입었던 옷, Bruce라는 닉네임의 상어 모형, 스타워즈의 주요 캐릭터들인 3PO와 R2D2다. 이 소품들은 실제로 영화 촬영 당시 사용했던 것들이며 가까이서 보면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스타워즈 캐릭터들의 경우 당시 CG라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배우들이 모형에 직접 들어가 움직이며 연기를 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소품들과 전시, 작품들이 있어서 '영화'로워지는 느낌을 가득 받을 수 있었다. 또한 20세기 초중반 여성 영화와 흑인 영화에 관한 전시도 진행되고 있어 미처 몰랐던 영화의 역사까지 알아갈 수 있었다. 



박물관에 다녀온 뒤 라라랜드 촬영지였던 그리피스 천문대로 갔다. 아쉽게도 휴관일이라 천문대 안을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천문대 건물 자체가 멋있었고 LA가 한 눈에 보여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천문대에서 할리우드 사인을 바라보니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어 사진이 잘 담기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문득 시간도 남은 거 걸어가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 반 정도 되는 등산 코스였다. 



한국 산들에 비하면 동산 수준이긴 했지만 길을 잘못 들어서 수풀을 해치며 다녔다. 혼자 이게 뭐 하는 걸까 생각하면서 여행은 고생해야 기억에 남는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다. 눈앞에서 작은 사슴을 마주치기도 했다. 이전까진 차 안에서만 보던 걸 호신용품 하나 없는 맨몸인 상태에서 조우하니까 조금, 아니 많이 무서웠다. 그렇게 또 걸어가다 앞을 보니 코너에서 말이 다그닥거리면서 내려왔다. 이게 정말 무슨 상황일까 싶었다. 알고 보니 말을 타고 등산을 하는 관광 상품이었다. 나는 여러 마리의 말들을 지나쳐 할리우드 사인을 향해 계속해서 걸어갔다. 



가까이서 본 할리우드 사인은 거대하고 만족스러웠다. 야경을 본 뒤 내려가고 싶었지만 핸드폰이 터지질 않아 해가 지기 전에 내려가기로 했다. 


정상에 올라가기 직전, 키르기스스탄에서 이민 온 아저씨 4명을 만났다. 한국에서 일을 한 적이 있어 짧지만 한국어를 할 줄 안다고 하셨다. 운이 좋게도 그분들이 숙소까지 태워주셔서 편하게 돌아갈 수 있었다.  



다음날 가장 큰 이벤트는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 투어였다. LA에는 저곳을 포함해 파라마운트 스튜디오, 디즈니 스튜디오, 유니버셜 스튜디오 등 투어를 할 수 있는 스튜디오가 여럿 있다. 그중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를 선택한 이유는 LA에서 가장 큰 영화 스튜디오이며 좋아하는 영화들을 많이 제작한 곳이기 때문이다. 가격은 70달러로 한화로 대략 10만 원 정도 됐기 때문에 샅샅이 살펴보면서 본전을 뽑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야외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 워너 브라더스 4명의 간략한 전기와 이들이 이루어 낸 유성영화로의 전환이 영화 역사에서 얼마나 대단한 건지, 또 워너 브라더스에서 어떤 유명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들을 만들었는지 등에 대해 전시와 영상으로 관람했다. 이후 트램을 타고 야외에 설치된 스튜디오들을 견학했다. 


워너 브라더스가 제작한 영화들은 본 영화가 시작되기 전 공장들이 나란히 있는 짧은 장면이 들어가 있는데 이곳이 그 장면과 동일하게 생겼다. 동일하게 생긴 거대한 건물들이 연이어 있고 그 건물들 속에는 다양한 세트들이 있다. 그중 한 건물만 들어가 볼 수 있었는데 그곳에는 학교 세트장, 교실, 체육관 등이 있었다. 가이드는 이 세트들을 어떻게 이용해 촬영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촬영 세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카메라를 이용한 눈 속임, 혹은 착각이라고 했다. 


실내 세트장 외에 야외에도 사진처럼 건물들과 거리가 있는데 벽돌 건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나무로 지은 건물이다. 내부도 모두 나무로 되어있는데 그래야 영화에 맞추어 세트장을 바꾸기 용이하다고 한다. 지금은 빈 건물들처럼 보이지만 촬영을 하게 되면 간판도 달아놓고 실제 가게들처럼 만들어 놓는단다.



이 스튜디오의 가장 큰 테마 중 하나가 시트콤 <프렌즈>다. 센트럴 퍼크 카페나 오프닝에 등장하는 분수, 대본집 등 드라마에 등장하는 다양한 것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생 영화 중 하나로 꼽는 <매트릭스>에 나오는 특정 신의 스토리보드가 있어 흥미롭게 관람했다.



DC 히어로 영화 팬들과 해리포터 팬들을 위한 세트장 및 촬영 소품도 잘 전시되어 있어 관람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크나이트>를 재미있게 봐서 그런지 조커가 입었던 의상이나 배트맨이 탔었던 배트모빌과 배트팟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었다. 해리포터 테마 체험관도 생각보다 크고 다양했다. 



투어 가이드의 말처럼 영화 촬영은 눈 속임, 착시, 착각 등을 이용한다. 괴상한 표정을 지을 때 사진을 찍은 게 미안하지만, 아무튼 화면 속 영상에선 한 아이가 거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위치를 통한 착시다. 배경 또한 마찬가지. 실제로 건물이나 공간을 짓지 않고 사진과 같이 그림을 그려 실제로 있는 것처럼 만들기도 한다. 무언가를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것과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유사해 보이지만 다르다. 


 

이건 무엇을 전시한 걸까 하고 봤더니 한 해에 워너 브라더스에 들어오는 원고의 양이라고 한다. 저 중에서 제작 선정이 되는 건 소수고 그중에서 제작에 들어가는 건 더 소수며 방영, 혹은 상영이 되는 건 더 소수고 그중 유명해지는 건 더 소수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말문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예술로 먹고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투어를 끝마치고 숙소에서 짐을 찾아 마지막 여행 장소인 사모사 해변으로 갔다. 기존에 봐왔던 LA의 풍경과는 다르게 마을과 바다가 함께 있어 가는 길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눈에서 잊히지 않게 계속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근처에 있는 라라랜드 촬영 장소를 보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걸어갔다. 팔은 아팠지만 해변에서 비치 발리볼을 하는 사람들,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 그리고 러닝을 하는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을 지나치며 걷는 순간순간이 즐거웠다. 


다음에 LA에 오게 된다면 바다가 보이는 이곳에 숙소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LA에서 가 본 곳들 중 가장 아름다웠으며 개인적으로는 미국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좋았다. 한국에서 바다를 보러 가면 대개 동해를 가는데 동해는 해가 뜨는 곳이다. 반대로 캘리포니아의 바다는 해가 지는 곳이다. 이 반대되는 매력이 이 공간의 매력을 증폭시킨 것이 아닐까?  



즉흥적인 성격이라 여행 계획을 세세하게 세우진 않았다. 어쩌다 보니 미국에서의 마지막 밤에 바다에서 일몰을 보게 되었다. 내가 선택했지만 긴 여정의 마지막으로 탁월한 결정이었다. 미국에서 대략 반년간의 생활을 하며 수도 없이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을 봤지만 이날의 해는 조금 특별했다. 하루가 지나가면서 해도 같이 넘어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 멀리 보이는 붉은 해가 조금은 천천히 넘어가기를, 아니 되도록이면 넘어가지 않기를 바랐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기 전 속으로 해에게 말했다. 다시 돌아오겠다고. 조금 더 발전해서 꼭 다시 보러 오겠다고.  


나는 그렇게 해와의 약속을 품은 채 미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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