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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Jan 26. 2022

책 <일기 日記>, 조용하고 낮지만 단단한 문체로.




<일기 日記>
황정은
창비
2021년 10월




소설가 황정은은 참, 할 말이 영 없는 사람처럼 굴면서도, 막상 지면 앞에 앉으면 세상에서 가장 많은 말을 가장 간결하게 부려놓는 사람 같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중이니 그냥 지나가세요, 하는데도 굳이 그 앞에 앉아 몇 마디 되지 않는 말을 꼬박 다 듣고서야 일어나게 만드는 그런 사람 같기도 하고.


그래서 신작이며 매 작품을 열정적으로 쫓아 탐독하지는 않아도 가끔, 어쩌다 찾아 읽고 싶게 만든달까. 특유의 조용하고 낮지만 단단한 문체로 풀어내는 생각과 말들이 한 땀 한 땀 올차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기억과 질문과 사랑이 담긴 황정은의 첫 에세이집-이라는 카피를 달고 있다. 흔한 문장이긴 하지만 이런 류의 카피는 좀, 붕 뜬다. 황정은의 문장과 글이 '기억과 질문과 사랑'을 담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크고 일반적이고 단편적인 범주의 수사로 묶어버리는 건 너무 쉽기만 한 표현 같아서.


연약하지만 단단한, 겉도는 것 같지만 깊은 모순된 지점을 표현할 어떤… 더 적확한 표현이 있었으면 좋겠다. 홍보와 광고라는 건 결국 가장 무난하고 전형적인 길로 갈 수밖에 없겠지만.












내 이웃들이 반달터에 두고 있는 관심을 나는 안다고 썼지만 실은 '아니까'라고 쓰는 데 하루를 망설였다. '안다'고 쓰거나 말해야 할 때 나는 매우 축소된다. 내가 그것을 안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내가 그걸 모른다는 것을 안다. 알아버린 것을 모르는 척, 안다고 말해야 할 때 나는 순진한 척을 하며 무언가를 단념하고 있고 그래서 안다고 말하는 것이 내게는 늘 얼마간 책임을 지는 일로 느껴진다. 그래도 나는 목포가 항구도시라는 것을 알고 그 도시 어디쯤에 서울분식이 있다는 것을 안다. 운정호수공원의 가로등들이 새벽 한시쯤 꺼졌다가 다섯시쯤 켜진다는 것을 나는 알아.

(29-30쪽, 일년 중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무 정치적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런데 나는 누가 어떤 이야기를 굳이 '너무 정치적'이라고 말하면 그저 그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말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그건 너무 정치적,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을 대개 이런 고백으로 듣는다.

나는 그 일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습니까.

(133-134쪽, 산보 중에서)




그러나 나는 문학이 뭔지 실은 잘 모른다. 그것이 살고 죽는 게 중요한 일인지도 잘 모르겠다. 문학의 존멸은 내 싸움이 아니다. 내가 오늘 무슨 생각을 했는지, 뭔가를 썼는지, 쓸 수 있었는지가 나는 궁금할 뿐이다. 소설을 쓰며 살다보면 문학이란, 하고 묻는 질문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 이미 있는데 하필 왜 있느냐고 물어 멈추게 만드는 질문을. 누가 내게 그렇게 물으면 나는 일단 그를 의심한다. 개수작 마, 하고 실은 생각한다. 그 질문을 생각하느라고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 채 읽거나 쓸 수도 없어 사는 걸 그냥 중단하고 싶은 시기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을 내게 묻지 않는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렇게 묻는 이를 만나면 너는 실은 내 원고나 내 싸움엔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너의 싸움에서 네가 스스로 찾지 못한 대답을 내게서 가져가려는 것뿐이다, 하고 생각하며 그를 잘 봐둔다.

(141-142쪽, 쿠키 일기 중에서)




여자아이는 자신의 성기와 가슴을 언제 자각할까. 그것을 어떻게 자각할까. 내가 내 성별을 글이나 그림이 아닌 피부로, 몸으로 자각한 순간들은 대개 폭력과 관련되어 있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내 성별이 여성이라는 것을 매우 이른 나이에 아주 난폭한 방식으로 자각했으며 그 뒤로도 온갖 곳에서 말로, 원하지 않는 접촉으로 그걸 겪었다. 내몸을, 내 성별을, 말하자면 내 몸이 여겨지는 방식을. 여자아이들은 그런 일을 겪는다. 일개인일 뿐인 내가 그것을 다 어떻게 아느냐고? 여자아이들은 안다. 록산 게이의 말 대로 “소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배운다.”32면

수십년 동안 사촌과의 일을 내가 지은 죄처럼 떠안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 일이 아이들의 호기심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일,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사이라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렇게 말하는 어른들이 있고 그렇게 말하는 소설들이 있고 그렇게 말하는 영화들이 있다. 그 말들이 '어린' 시절의 '호기심'이라고 일컫는 욕망들이 실은 쌍방의 욕망이라기보다는 일방의 욕망이며 호기심이라는 것을 나는 최근에야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남자아이들이 주도하는 모험에서 여자아이들은 만져지고 꿰뚫린다. 남자아이들이 호기심을 충족하기로 마음먹고 모험을 행할 때, 가장 가까이 있는 여자아이가 대상이 된다. 남자아이들은 '어린아이다운' 호기심을 충족하고 '모험'을 완성하지만 여자아이들은 남에게 말하지 못할 수치로 그 일을 기억에 남긴다. 일곱살에 겪은 일을 마흔이 넘어서도 잊지 못한다.

(176-177쪽, 흔痕 중에서)




다시는 쓰지 않을 글과 몇번이고

고쳐 쓸 글 속에

하지 못하는 말을 숨기거나 하면서 그래도

여기 실린 글을 쓰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문학을 주어로 두지 않고 목적으로 두고 살아온 지난 시간 동안

문학을 나는 늘 좋아했고 그것이 내게는 늘 최선이었습니다.

(197-198쪽,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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