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 생활권 외국인 주민이 마주하는 "노잼 동네 인식"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대학원에는 얼마나 많은 외국인 유학생이 있을까요? 재적학생 대비 외국인 학생 비율을 보면 2022년 전체 일반대학원에 재적하는 외국인 학생은 31,127명으로 전체 평균 약 19%를 차지합니다. 지역의 경우는 유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극단적으로 높습니다. 2022년에 가장 외국인 유학생 비율이 높은 대학원은 유학생 비율이 92%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비단 지역만이 아니라 수도권 내 대학에서도 유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지역 쇠퇴와 인구 절벽으로 인한 직격타가 예상됨에 따라 수도권 대학, 나아가 이 대학들이 지역 경제를 견인하는 자치구들은 유학생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하지 않고서는 대학 경제를 더이상 담보할 수가 없게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몇 십 년, 국내 대학들 그리고 대학들이 위치한 지역의 흥망성쇠는 외국인 유학생과 같은 비전통적인 학생 그룹을 얼마나 잘 유치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서울 자치구 가운데 유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성북구를 들 수 있습니다. 고려대, 경희대, 시립대 등 다양한 대학들이 밀집되어 유학생 비율로는 영등포구를 넘어서는 곳입니다. 성북구의 대표 대학하면 고려대학교가 있습니다. 고려대에 재학중인 외국인 비율은 12%에서 20%까지 추산되며 5~6명 중 한 명이 외국인인 셈입니다.
동시에 고려대학교는 안암 캠퍼스타운 사업의 배후 앵커 교육 시설이기도 합니다. 안암 캠퍼스타운 사업은 ‘청년 창업의 꿈이 실현될 수 있는 일자리 중심 혁신 도시’를 비전으로, 청년창업 활성화를 통한 대학발(發) 문화콘텐츠 활성화와 지역 내 경제적 수익 환원을 위한 구체적인 세부 사업들을 실행해 왔습니다. 2022년 6월 기준 안암 캠퍼스타운은 고려대 거점 대학과 밀접히 연계되어 지난 6년간 120개 창업팀을 육성하고 이 중 약 100여팀이 931억원 매출을 창출하고 자본을 유치하는 경제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려대에 다니는 유학생들에게 "캠퍼스타운"에 대해 물어 보았을 때 대답은 하나같이 같았습니다. "처음 들어보았다." 캠퍼스타운 예산으로 진행되어 오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및 지역 축제, 창업 공모전 홍보를 접하기도 어려웠으며, 혹여 정보가 있었더라도 언어와 제도의 장벽에 가로막혀 참여가 어려웠을 겁니다.만약 고려대학교 5분의 1에 달하는 외국인 유학생들 대부분이 고려대학교 배후에서 벌어지는 지역재생 사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면? 다양한 주민들이 화합하고 어우러지는 지역 공동체 그리고 문화 활성화라는 사회적 성과는 반쪽짜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로컬인사 자체 서베이 분석 결과에 따르면 고려대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 유학생은 약 2천 5백 명에 달하는데도 안암동 지역 상권에 대한 인지도, 선호도, 이용 빈도가 매우 낮게 나타납니다. 외국인 유학생 거주민을 대상으로 한 결과 고려대 각종 국제 교류 프로그램이 존재함에도 안암동 내국인 거주민과의 커뮤니티 형성 및 로컬 자원에 대한 공 동 창작과 소비는 거의 전무합니다. 특히 안암 캠퍼스타운 사업으로 조성된 거점 시설이나 문화행사 프로그램에 대한 인지도는 없다시피 합니다.
안암동 일대에 거주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은 일정 정도의 경제적 생산력과 소비 욕구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동네에는 알바, 여가생활, 네트워킹 모임을 할 수 있는 장소가 거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2023년이 된 지금까지도 외국인들이 강남이나 이태원, 홍대나 신촌 등 "뻔한 불금 장소"로만 몰려드는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성북구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사는 수많은 외국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커뮤니티가 아니라 놀거리가 많다고 알려진 지역으로 이탈하고 있습니다.
로컬인사 라운드테이블 인터뷰 및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안암 생활권의 외국인 응답자 90% 가까이가 지역 상권에 대해 탐색(생산 및 소비) 후 해당 경험을 통해 지역의 유휴 시설 및 인지도가 높지 않은 시설들을 더욱 자주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1/3 정도는 창업 지원을 받아 자신만의 서비스나 아이템에 대해 비즈니스적 실행을 해 보고 싶다는 의사도 보였습니다.
안암동만 하더라도 캠퍼스타운 사업 등 국비 사업을 통해 훌륭한 문화예술 및 커뮤니티 앵커 시설들이 만들어져 있지만 사용률은 부진한 곳이 많습니다. 지역 기반 활동 및 문화 콘텐츠에 대한 인지도가 낮고 수요는 높은 외국인 주민들에 유휴 시설을 제공하여 각종 창작과 소비 활동의 장(場)으로 활용하는 건 어떨까요? 한류 비자가 중국 실시간 검색창을 마비시킬 정도였다는데, 이제 곧 외국인 로컬 크리에이터들도 우리 동네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내국인이 빠져나가며 쇠퇴하는 지역 곳곳마다 새로운 주민들이 들어온다면 무슨 변화가 생길까요?
우리나라 자치구들은 외부민의 인구 유입을 환영하지만 내부민들에 의한 주민 진입 장벽은 어디나 있습니다. 아직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은 지역 경제의 양지에 온전하게 포함되기가 어려운 주민들입니다. 지금까지처럼 한복 체험이나 김장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을 우리에게 동화되게 만드는 대신에, 풍부한 외국인 주민들의 존재로 인해 지역이 새로운 색채를 띠도록 하는 건 어떨까요? 시혜적 관점을 거두고, 외국에서 찾아 온 "새로운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지역 발전의 "인재"이자 "파트너"로서 함께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제안해 보면 좋겠습니다.
참고문헌
일반대학원, 외국인 유학생이 많은 대학원/적은 대학원은?
글 로컬인사 전서은 / 사진 곽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