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스위스에 살면서 한국 엄마와 유럽인 아빠 혹은 그 반대의 경우를 많이 만나게 되었어요.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아이에게 꼭 “한국어”를 가르치고야 말겠다는 의지였어요. 유럽에서 살다 보면 한국인 만날 일도 그다지 많지 않고 한국어 쓸 일도 별로 없는데 의아했어요. 오히려 영어나 불어, 독일어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는데 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정체성의 문제라는 것이었어요.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그 이유를 느끼게 된 것은 우리 집 아이들이 말해준 학교에서의 일화에서 비롯되었어요. 이곳 유럽에서는 엄마의 언어를 못하는 것을 굉장히 의아하게 생각하며 모국어를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실망한다는 것이었어요. 예를 들어 폴란드 엄마와 스위스 아빠 사이에 태어난 아이에게 폴란드 출신 선생님이 폴란드 말로 물어보셨는데 아이가 못한다고 하자 굉장히 실망했다는 표정과 반응을 보이셨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우리나라는 섬과 같은 나라여서 다른 말을 듣는 것도 다른 나라 사람과 결혼해서 사는 것도 흔히 볼 수 없는 일이에요. 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게 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곳 스위스는 유럽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접근성이 좋은 나라다 보니 여러 나라 사람들과 여러 나라 말이 공존하는 사회예요.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쓰는 말이 나를 나타내는 곳이죠. 물론 독일어나 영어를 그럴싸하게 잘하는 것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엄마, 아빠의 언어를 배우고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이 모든 일보다 우선이 되는 것 같아요. 내가 누군지 정확히 알아야 다른 언어도 배우고 다른 공부도 배울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뿌리 뽑히는 나무신세가 되기도 한답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나는 누구인가?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니까요.
이것은 아이들이 인종차별을 당한다 해도 자신을 보호하는 일종의 보호막 역할도 하는 것 같아요. 나도 가고 싶은 나의 나라가 있고 나의 말이 있다고 말이죠. 당당하게 내뱉을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은 부모님의 간절한 열망이 (한국에서는 너무 당연해서 소중히 여겨지지 않는 것들이) 잔잔한 감동이 되는 요즘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