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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Lee Feb 23. 2021

 당신의 곁에는 어떤 인연들이 머물러 있나요?

독서노트 - 「 쇼코의 미소, 최은영, 문학동네 」

눈을 반짝이며 웃는 엄마와 말이 많은 할아버지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이런 사람들을 바깥에서 만났다면 나는 주저 않고 좋은 어른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할아버지는 늘 무기력했고 사람을 사귀는 일에 서툴렀다. 나는 엄마와 할아버지를 작동하지 않아 해마다 먼지가 쌓이고 색이 바래가는 괘종시계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변화할 의지도, 아무런 목표도 없이 그저 그 자리에서 멈춰버린 사람들이라고.
가족은 언제나 가장 낯선 사람들 같았다. 어쩌면 쇼코는 나의 할아버지에 대해서 나보다 더 많이 알았을지도 모른다.

「 쇼코의 미소, 최은영, 문학동네(14쪽) 」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쇼코의 미소  <신짜오 신짜오>, 최은영, 문학동네(89)



<쇼코의 미소>는 ‘관계’라는 큰 한 가지 주제 안에서 조금씩 다른 7가지 색깔의 이야기들을 담은 단편집이다. 성장기 소녀부터 청년, 중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관계 안에서 겪는 여러 감정들을 그리고 있다. 그들에게는 저마다의 기대, 저마다의 상처, 저마다의 성장과 회복이 있다. 한 가지 주제로 이토록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은 걸 보면 역시 "인생은 결국 사람"이라는 말, "사람으로 시작되고 사람으로 끝난다"는 말이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인연이라는 것도, 우리의 마음과 감정이라는 것도, 같은 듯 다르고, 이젠 좀 알듯하다가도 매번 처음처럼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꽤나 우울해서 독자를 한없이 침잠시키지만, 그 사실적인 절망감이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이백 오십 장짜리 책 안에 우리가 타인에게서 느끼는 속마음을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다. 꿈과 좌절, 절망과 고독, 그리고 위로에 대해서. 가족끼리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상처에 대해서. 갑자기 끝나버리는 애틋했던 어떤 관계에 대해서. 이런저런 관계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서.


우리는 사람 때문에 작아지고, 또 사람 때문에 커진다. 사람 때문에 아프고, 역설적이게도 또 사람 때문에 치유되곤 한다. <쇼코의 미소>에서 상처투성이 쇼코는 소유의 할아버지에게는 희망이자 위로가 되었고, 감정 없는 냉혈한으로 불리는 소유 엄마의 일상에도 작은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단 일주일의 동거였지만 소유의 가족도 쇼코에게는 위로가 되었고, 소유는 쇼코에게서 우정, 상처와 우월감을 번갈아 느끼며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한다. 한편 <신짜오 신짜오> 나 <한지와 영주>에서는 한때 가깝고 소중했던 사이가 영문도 모른 채 남이 되기도 하는 관계의 균열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단짝처럼 붙어 다니고 한때는 소울메이트라고 믿었던 친구와 갑작스럽게 멀어지는 일이라든지, 가족 때문에 지긋지긋한 상처를 받지만 가족이 있어 힘을 내기도 하는 이 소설 속의 지점들은 우리의 삶과 묘하게 맞닿아있다. 너무 현실 같아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아서 우울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한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바로 나의 이야기이고, 당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을수록 가슴속 저 밑바닥에 꽁꽁 묻고 감추어둔 기억의 파편을 자꾸만 꺼내올려 벌거벗겨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날로 심해지는 고독과 소외 속에서 개인의 속마음을 공감해주고 다독여주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쇼코의 미소>는 독자에게 각자의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 떠나보낸 사람들, 가족들 등 인간관계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감춰버리고 싶은 상처들의 민낯을 다시 한번 꺼내서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부담스럽고 내키지 않더라도 분명한 것은 그 시간들이 있어야 또 내가 앞으로 어떻게 관계를 맺어갈지, 어떤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나 또한 앞으로 어떤 관계를 피해야 하는지, 어떤 것이 좋은 관계인지도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그 생각 끝에는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다다르게 되었다.


상처를 어떻게 보듬어 갈지에 대하여, 적절한 거리에 대하여, 나의 상처를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의 기준에 대하여, 인간의 외로움과 고독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겐 서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함께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관계’ 안에서 태어나 ‘관계’ 안에서 성장하고 ‘관계’ 안에서 늙어간다.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완벽히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찾아온 인연들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헤아리는 일, 나도 모르는 사이 때로는 상처를 주고 말 때가 있더라도 돌아서서 사과를 건넬 줄 아는 일,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자 노력하는 일이면 될 것이다.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그렇게 나는 그저 진심을 다해 살면 될 뿐이다. 그렇게 인연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으로, 동시에 때가 되면 덤덤히 떠나보낼 줄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이 우울한 소설은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갈 아름다운 관계들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며, 2021년 당신이 만들어갈 소중한 인연들을 가슴속 깊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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