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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Lee Aug 12. 2021

달까지 가자

달까지 가자 - 장류진


장류진의 단편들이 어딘가 어둡고 불편한 구석을 품고 있던 것에 반해,  장편은 유쾌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이 내심 기뻤다. 덕분에  시간 만에 완독을 해냈고, 꽤나 기분전환이 됐다. 매년 미지근한 점수의 인사 평가를 받아 연봉은 동결에, 회사에서는 거의 아웃사이더로 통하고, 좁은 월세방에 사는, 소위 흙수저라고 자신을 지칭하는 젊은 여성들. 따지고 보면 하루하루를 허덕이는 그저 그런 직장인의 씁쓸한 단면들을 빠지지 않고  그려냈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경을 “유쾌하게연출해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들 삼총사는 이더리움 덕에  좋게 월급보다 큰돈을 벌어 낯빛이 좋아졌지만, 사실 현실은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독자는 “우리 같은 애들이라고 스스로를 낮추는 은상의 말투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그들의 코인이 이른바 “떡상하는 것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다가, 그렇지만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비행이 끝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도 누구보다  알고 있다. 남은 책장이 줄어들수록 보다  선명하게 자각하게 된다. 갑자기 날아서 달까지 가는  짜릿한 여행이 끝나도 지구에서의 치열한 삶이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각자의 몫과 책임은 결코 희미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명확해질 뿐.


현실이 힘들면 힘들수록 누구나 인생 한방을 꿈꾸고, 멋진 기회가 찾아오기를 바란다. 어쩌면 누구나 그런 꿈을  자격이 있다. 매번 “달까지 가즈아!” 외치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 속에 꽁꽁 숨겨진 결핍과 욕망을 건드린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라면 다 갖고 있는 심을 솔직하게 드러내어줘서 후련했고, 누구나 꿈을   다는 당위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 짜릿하고 통쾌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직장에서 가장 소외되고 아웃사이더인 삼총사에게 달까지 가는 기회를 허락해  장류진 작가에게 하이파이브를 건네고 싶었다. 누구나 더 좋은 것을 해보고, 더 누리며 살 자격이 있다는 걸 말해주는, 그리고 코인으로나마 한 단계 신분상승을 누리는 이 로또 같은 이야기는 유쾌하면서도 동시에 돈, 신분, 고용불평등, 소외계층 등 여러 가지 생각에 머물게 한다.


전작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도 그랬듯이, 장류진은 오피스 풍경을 실감 나게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나도 코인을 좀 사서 일확천금을 노려볼 걸" 하는 달콤한 생각도 물론 들지만, 그보다도 동기들과 함께 보내는 꿀 같은 점심시간과 수다, 회사 주변 카페와 거리의 풍경들, 출퇴근길 단상 사무실의 싸한 공기 등을 좇으며 어쩐지 향수에 젖게 된다.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누군가가 직장인들의 하루가 궁금하다면 대동소이한 오피스 풍경을 단숨에 엿보기에 더없이 적절한 작품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다해, 은상, 지송, 이 비주류 삼총사가 함께라서 참 다행이었다. 혼자였다면 이겨내기 힘든, 어쩌면 건널 수 없을 위태로운 다리를, 그들은 함께이기에 울고 웃으면서 건너올 수 있었을 거라 확신한다. 직장에 그런 의지할 벗이 있다는 건 적지 않은 행운이고,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월급 몇 푼 오르는 것보다 더한 자산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억지스럽다고 하지는 마라. 왜, 은상 언니를 통해 나머지 두 명도 어쨌거나 큰돈을 벌었으니 내 말이 아예 틀린 건 아니지 않나.

 

글을  쓰고 도서 평점  리뷰를 살펴보니 호불호가 꽤나 갈리더라.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좋은 소설이 되어주었다. 적당히 재밌고, 적당히 무겁고,  적당히 생각할 거리는 주는, 적당한 이야기다. 적당한 소설 찾기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접근할  있고, 공감할  있는 소설. 그러면서도 마냥 가볍지 않은 이야기는 그리 흔치 않다. 그러니까 당신도 얼른 읽어보고 함께 이야기하면 좋겠다.



 은상 언니가 '우리 같은 애들'이라는  어절을 말할 , 이상하게 마음이 쓰리면서도 좋았다.  몸에 멍든 곳을 괜히 한번  눌러볼 때랑 비슷한 마음이었다. 아리지만 묘하게 시원한 마음. 못됐는데 다름 아닌  자신에게만 못된 마음. 그래서  용서할  있을 것만 같은 마음.
<달까지 가자, 장류진, 193>


"! 니가 그럴 자격이  없냐? 그럴 자격 있다. 누구든 좋은 ,  좋은  누릴 자격이 있어.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 너도, 나도, 우리 엄마도. 그건  마찬가지인 거야. 세상에 좋은 ,  좋은 ,    좋은  존재하는데, 그걸 알아버렸는데 어떡해?"
<달까지 가자, 장류진,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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