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기 Jul 30. 2023

라테는 역시 블루보틀이지


뉴욕 여행을 할 때 스타벅스를 종종 갔다. 대부분은 친절하고 좋았는데 센트럴 파크 근처에서 꽤 불쾌한 경험을 했다. 한국에서는 스타벅스 어플로 결제를 하기 때문에 내가 설정한 닉네임으로 불러주는데 미국에서는 점원이 직접 이름을 물어봤다. 그래서 Link라고 대답했는데 점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왓왓 거렸다. 몇 번이고 다시 말해줘도 소용이 없었다. L과 R을 명확히 구분해서 발음하지 못하는 내 탓이려니 생각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받은 커피에는 Lee라고 적혀 있었다. 이 썩을 놈이 한국인은 다 Kim 아니면 Lee인 줄 아는 모양이다. 발음을 제대로 못해 놓고 왜 점원 욕을 하냐고? 주문을 해놓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태 다른 스벅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발음이 심각히 나빠졌을 리는 없으니 그놈이 나쁜 것 아니겠는가.


남은 여행 기간 동안에는 조금 더 발음이 쉬운 닉네임으로 바꿔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던 중에 문득 미국 스벅에서는 리필이 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커피를 다 마신 뒤 리필을 요구했다. 근데 이 양아치가 또 못 알아듣는 척을 한다. 오기가 생겨서 끝까지 설명을 했고 기어코 리필을 받아냈다. 회원이 아니었기에 0.5달러의 비용을 지불했고. 먼 미국까지 가서 진상 짓을 한 것 아니냐고? 아니다. 한국과 달리 미국과 일본 스벅에서는 원래 리필이 가능하다. 지금 생각하니 괜한 고집을 피운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커피를 리필하면서 침을 뱉거나 한 것은 아니려나.


다음날 첼시 마켓 근처에 있는 블루 보틀에 갔다. 라테가 유명한 가게란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아직 한국에 지점이 생기기 전이라 마셔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제 스벅에서 겪은 일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또 내 발음을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긴장을 한 채 기다리는데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점원이 이름을 물었고 나는 의기소침하게 Link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내 대답을 들은 점원이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것 아닌가. "링크? 젤다의 전설의 그 링크? 나도 야생의 숨결이랑 링크 좋아해."


그는 부족한 내 발음을 한 번에 알아들었을 뿐 아니라 링크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친절한 점원에게 받아 든 커피를 가게 앞 의자에 앉아 마시는데 얼마나 고소하고 맛있었는지 모른다. 그야말로 인생 라테였다. 라테는 역시 블루보틀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현명한 미술 선생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