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이다. 일본어로 남편은 보통 단나라고 많이 하는데 여기서는 츠레라는 표현이 쓰였다. 왜 그럴까. 단나는 남편이란 뜻 이외에도 주인, 가장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가부장적인 성격이 강한 일본이라서 그런지 남자를 더 높여주는 듯한 느낌이 드는 단어이다. 그렇기에 감독은 영화 제목에 단나란 표현을 쓰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같다. 왜냐하면 우울증에 걸린 남편 미키오를 위해 그의 아내 하루코가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이기 때문이다. 남자인 미키오보다 여자인 하루코가 오히려 가장이 되어 가정을 이끌어가는데 어찌 단나란 표현을 쓸 주었겠는가.
츠레는 단나와는 달리 성 중립적인 단어인데 뜻은 다음과 같다.
つれ [連れ] 동행, 동반자
이을 연이란 한자를 쓴 것이 눈에 확 들어온다. 부부든, 친구든 이어져 있지 않으면 더 이상 동반자, 동행이라 부를 수 없는 것 아닐까. 명목상으로는 부부이지만 대화를 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마음뿐 아니라 몸의 대화 역시 그렇다고 하고. 아이 때문에 산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나마 아이가 연결 고리가 되니까 다행 아니냐고? 하지만 서로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은 관계를 어찌 동반자라 부를 수 있겠는가.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는 일러스트 만화가인 호소가와 텐텐이 그린 자전적 에세이 만화가 원작이다. 작가가 직접 우울증을 경험한 덕분일까. 우울증에 대한 묘사가 꽤나 사실적이었다. 게다가 '리갈 하이', '한자와 나오키'로 유명한 배우인 '사카이 마사토'의 연기는 정말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했고.
사실적인 묘사와 훌륭한 역기 덕분에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답답했고 겨우 좋아졌나 싶었는데 다시 나빠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했다.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아내의 사소한 실수 하나를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미키오의 옹졸함에 분노하기도 했고.
하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둘이서 함께 조금씩 극복해 가는 과정, 강단에 서서 자신의 부끄러웠던 모습들이 이제는 조금 자랑스럽다고 고백하는 미키오의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 특히나 마음에 깊이 남은 것은 하루코의 마지막 대사이다.
"츠레는 앞으로도 이 우주 감기와 함께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밤이라도 새벽이 밝아오지 않는 밤은 없다. 설령 찾아온 새벽하늘이 흐리다고 해도 밤보다는 훨~씬 밝은 법이다."
정말 그렇다. 어두운 밤은 결국 밝아올 것이고 설령 흐릴지라도 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밝을 것이다. 흐린 날이 있으면 맑은 날도 있기 마련이고.
만약 지금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고 눈을 뜨기 버거운 날이 이어지고 있다면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한다. 서둘러 벗어나려고 힘을 주면 줄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 것이고 억지로 눈을 뜬 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에 더욱 절망할지도 모른다.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반드시 어둠이 걷히고 새벽이 찾아올 것이다. 동이 트는 새벽녘이 되면 눈을 그대로 감고 있어도 훨~씬 밝아졌음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니 시간의 힘을 믿고 오늘 하루만, 지금 이 순간만 잘 살아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