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베카 Jun 07. 2022

하나의 유령이 우리 마을을 떠돌고 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9시 20분, 나는 좀 더 뭉그적거린다. 그러다가 벌써 9시 25분. 이제 슬슬 내 방으로 가야 한다. 방 문 앞에 서서 컴퓨터 바로 옆 침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얕은 한숨이 나온다. 그러다가 다시 모니터를 몇 분 간 쳐다본다. 그래, 해야지. 무거운 다리를 힘겹게 움직여 몇 걸음 걸어가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곤 부팅이 되는 사이 창문을 열고 방 옆 베란다로 나간다. 괜히 하늘도 한 번 쳐다보고.      


“그럼에도 매일 오전 9시 30분이면 용기를 내서 조금이라도 쓰려한다.”     


출간된 책날개에 실린 작가 소개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은 독자들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겠지. ‘아아, 이 작가는 9시 30분이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나 보다.’라고.      


그래서 나는,

“매일 오전 9시 30분이면 용기를 내서 조금이라도 쓴다.”

라고 하질 못했다. ‘쓴다’라는 현재 진행형은 내가 글쓰기를 몇 년간 지속적으로 해 왔음을 상상케 한다. 흠..., 이건 거짓말이고. 게다가 이 말은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글쓰기를 하고 있을 상황이 그려지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또한 아니기에, 나는 과감하고 멋들어지게 ‘쓴다’라고 쓸 순 없었다.      


대신 나는 ‘쓰려한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좀 더 에둘렀다. 이 말에는 여지가 있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약속이 있거나 그냥이라도 쓰기 싫은 날에는, 글 좀 안 써도 된다. 의지가 안 나는데 어떻게 의지를 내나요? 여지를 남기는 헐렁한 표현 ‘쓰려한다’, 이렇게 쓰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그럼에도 나는 9시 30분이면 용기를 내서 글을 써 본다. (비코즈 아임 코리안.) 물론, 안 쓰는 날도 있다.      


3년 전,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글이 이렇게까지 내 삶에 전방위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과거에 내가 써 왔던 글들은 내가 행동하기 전에 나에게 제약을 가하곤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나는 독서 모임 혹은 동네를 오다가다 말을 섞게 되는 아줌마들의 신상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저분 도대체 몇 살이지? 처녀 때 무슨 일을 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면 여지없이 내가 쓴 글이 나타난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 그녀의 과거 신상 정보를 안다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되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녀의 과거나 정보를 모르면 그런 생각을 안 가질 텐데, 괜히 그것을 알게 되어 그 사람을 한 방향으로만 이해하게 만드는 프레임처럼 작용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했다. 나는 선아 엄마와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써 두었던 내 글이 유령 캐스퍼처럼, 만화책 말풍선처럼, 혹은 문 뒤에 숨어있다가 ‘왁-’하고 나를 놀래키곤 하는 장난꾸러기 우리 아들처럼 훅 하고 튀어나와 나를 말린다. 내 눈에만 보이는 그것은 내게 계속해서 속삭인다.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말란 말이야...’     


나는 윤언니와 글이 전방위적으로 내 삶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반대로 글을 내 삶에 좀 이용해 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 스스로가 좀 더 괜찮은 엄마로서 살기를 원하기에     


“언니, 이거 어때. ‘나는 좋은 엄마다. 아들에게 짜증을 내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등짝을 한 번씩 때린다니. 어우, 망측스러워라.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소리를 지르지 않고 아주 상냥하고 친절하게 아들에게 말한다. 그리고 때로는 단호하게 아들을 잘 훈계한다. 나는 멋진 엄마다.’라고 글로 써 두는 거지. 그럼 내가 그런 엄마가 되도록 내 글이 나를 도와주지 않겠어?”

윤언니는 말했다.


“너 그러다가 미쳐.”     





삼십 대 중반, ‘감이당’에서 글쓰기와 인문학을 1년 과정으로 배운 적이 있다. 10주 동안 여러 책을 읽고 나서 마지막 10주 차에 9주간 읽어왔던 책을 기반으로 에세이 한 편을 써서 제출하는 과정이다. 이 10주가 한 학기이고 이렇게 4학기를 하면 1년이 지나간다. 첫 번째 학기 과제 주제는 ‘나는 왜 글을 쓰는가?’였다. 흠, 이 정도쯤이야. 나는 자신 있었다. 같이 공부하는 학인들에게는 ‘너무 힘들다, 이런 거 왜 시키냐, 당최 글 진도가 안 나간다.’고 툴툴거렸지만, 왜 글을 쓰냐고? 이거 왜 못 써. 일단 글쓰기 자체가 주는 몰입의 즐거움이 있으며, 하나의 주제에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서 쓰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파악하게 되고, 해당 주제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 책을 읽고 정리하고 공부하는 그 과정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하얀 백지에 글이 생산된 것을 보면 스스로 ‘생산자’로써의 보람도 느낀다. 흠... 이 정도면 꽤 괜찮네, 하며 나는 자신 있게 과제를 제출했다.     


하지만 감이당의 수장 고미숙 선생님의 피드백은 단호했다.

“이거 뭐 서론 그래 넘어가자. 본론 1까지는 괜찮은데... 본론 2부터는 왜 썼는지 모르겠네. 기만 있고 승, 전, 결이 없는 글이야!”     


나는 합평 이후, 여지없이 합평의 수순을 밟았다. 제1 감정 분노, ‘다들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 제2 감정 인정, ‘맞다. 나는 글재주가 없다’. 마지막 제3감정 재기, ‘다시 해 보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간 잘 써지겠지.’ 그렇게 10달이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꽤나 공을 들여 다니던 감이당을 4학기 중반 즈음에 그만두게 되었다. 어렵게 성공한 임신 초기였고, 이곳에서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감이당까지 왕복 이동 또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함께 공부했던 선생님과 학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감이당을 그만두었다.     


“왜 글을 쓰는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질문이 내게 다시 다가왔다. 혼자서 글쓰기를 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차에 지인 미정쌤이 글쓰기에 열심히인 것을 알게 되었다. 여차저차 우리는 서로의 글을 주고받으며 합평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너무 궁금했다. “미정쌤은 도대체 왜 하고 많은 일 중에서 글쓰기를 할까?” 사실 이건 나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나는 미정쌤이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불쑥 이렇게 말했다.


“근데 쌤, 진짜 확실한 거 하나는 글 하나 붙잡고 있으면 시간이 엄청 잘 가요.”


뭐야. 이게 내 진심이었나. 이토록 심플하다니. 어떤 때는 머릿속으로만 돌고 있었던 생각이 말을 하면서 정리되는 경우가 있다. 연애할 때, 별 생각 없이 일상을 보내다가도 상대방을 보자마자 ‘너무 보고 싶었어’라고 말 하는 순간 알게 된다. 내가 이 사람이 정말 보고 싶었구나.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내 과거의 시간들은 연인을 그리워했던 시간으로 상정되어 버린다. 나는 설명하고 싶었을까. 내가 왜 글쓰기에 이토록 공을 들이는지를. ‘이거다!’하고 나 스스로 내 과거의 노력에 대해서 설명을 해 둬야, 자기 자신을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직도 글쓰기를 잘 하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이 가끔은 낯설고 가끔은 신기하고 그리고 자주 버겁다.     


하지만 말 그대로 나에겐 ‘시간을 보낼’ 그 어떤 것이 필요했다. 동네 친구들과 노는 것을 시도해보았지만 심드렁했고, 운동도 시도해보았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았다. 잠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해 보았지만 오 이건 정말이지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다. 그런데 글쓰기는 욕심이 났다. 잘 하고 싶었다. 자랑하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구독자도 많았으면 좋겠고. 어떻게 하면 이 난국을 타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르고 읽고 필사하고 글을 썼다. 정말이지 혼자 노는 데, 이만한 게 없다는 것 만큼은 확실하다. 글 쓰면서 울지, 또 웃지, 어디다가 쉼표 찍을지 고민하지, 문장을 뜯을까 연결할까 고민하지. 그러다보면 2시간 3시간은 잘도 지나갔다. 그렇게 나는 시간을 보낸다.     


글을 쓰다보면 느끼는 한계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바지런해지곤 한다. 째째한 나의 테두리를 미세하게라도 확장해야겠다고 느낄 때면, 나는 다른 작가들의 책을 읽는다. 요즘은 아주 많이 읽으려고 노력한다. 문장을 적재적소에 쓰는 작가들의 책을 읽을 때면, 사실은 좀 멈칫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은 화도 난다. 그러다가 부러워서 그 문장들을 파일로 저장해 둔다. 어떤 때는 읽고 또 읽고 또 읽어서 외워버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런 일들만으로도 하루가 꽉 차 바빠지고 나 홀로 마음만 동동거려진다.     


그렇게 쓰고 책 한 권이 나왔고 거의 1년간 매일 세 시간씩 써왔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이야기가 나의 멱살을 잡고 모니터에 앉혔’거나, 혹은 내가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나를 ‘선택’하여 재능이 운명으로 이어졌다고 말할 정도로 반짝하는 그 무엇이 나를 끌어당기지는 않았다.   

   

“저는 심심해서 씁니다. 시간이 잘 가거든요.”     


누군가 내게, 집안일하기 싫어서 글쓰기로 ‘도망’ 간 것이 아니냐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생산적인 돈벌이도 아니고 ‘고상한 취미’ 정도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만 그럼에도 지금 내 일상에서 시간을 잘 보내는 것 중 내게, 이만한 게 없기에.          






글을 쓰는 일은 종종 위험하기도 한 일이다. 독자들은 나라는 사람의 배경을 일일이 알고자 하지 않는다. 나를 모르는 상태에서 나의 글을 읽는다. ‘아니 이 글은 그런 뜻이 아니고요, 사실은 이렇게 쓰려고 했는데요.’라고 독자들에게 일일이 변명할 수도 없다.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으며 온기를 전달할 수도 없다. 글은 글로써만 전달된다.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글쓴이의 의도가 명료하게 전달되도록,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지도록 ‘잘’ 써야만 한다. 하지만 내 아무리 적확하게 쓰기 위해 노력했다 하더라도, 나의 글은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투정이라고 읽힐 것이고 누군가에는 연민이나 동정을 자아낼 것이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조소거리가 될 것이고, 반대로 부러움이나 질투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상황을 고려하고 배려해야 한다면 그 어떤 작가도 단 한 줄도 쓸 수 없는 것이 글이기에, 나는 알면서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위험하고 귀찮고 고단하고 어렵고 쓰면 쓸수록 한계는 느끼게 하는 글쓰기.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제친 글쓰기의 가장 큰 위력이라 함은, 내가 쓴 글이 나에게 가장 센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좀 많이 징글징글하다. 나는 남편에게 ‘나 이제 매일 글쓰기에 충실할 거야.’라고 하고선 그러지 않았다. 친구 윤언니에게도 ‘나 글쓰기에 진심이야. 매일 해 보려고.’하지만 하지 않았고, 아들에게도 ‘엄마가 글 잘 쓰고 책 많이 팔아서 까까사줄게.’해 놓고선 침대에 누워버렸다. 하지만 책날개에 이렇게 쓴 내 책이 서점에 깔리고 불특정 독자가 본다고 생각하니, 이건 좀 무섭게 다가왔다. 내가 박혜란이라는 것을 동네 사람 그 누구도 모르지만, 10시에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있으면 누군가 내게 다가와, “저기요, 지금 10시인데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라고 물어볼 것만 같은 상상이 든다. 나는 나를 믿을 수 없기에 9시 30분에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저 문장을 작가 소개에 넣은 것일 게다. 아무도 관심 없고 강요한 적 없는 나만의 철칙을 무식하게 지켜나가고 싶어, 스스로를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강제한 것이다. 나는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좀 더 괜찮은 작가..., 작가라는 타이틀이 무겁다면, ‘쓰는 사람’ 정도면 좋겠다.      


2주 전, 내가 쓴 글을 몇 번이고 탐독하면서 생각했다. 과거에 내가 이런 고민을 했었구나. 나는 관계 맺기에서 선긋기를 연습해왔다. 관계란 서로를 길들이는 것이다. 어디까지는 허용하고 어느 부분은 곤란하다고 말할지 분명히 해야 한다. 내가 미흡했던 것은 ‘곤란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순둥순둥한 얼굴로 곧잘 참았고 그래서 폭발했다. 참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알았다. 요즘의 나는 ‘곤란하다’고 곧잘 한다. 말로 하기도 하고, 내가 듣기 싫은 이야기를 상대가 너무 길게 이야기하면 눈을 피해 허공을 쳐다보거나 응수를 하지 않고 눈을 피한다거나 하는 비언어적 메시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야 상대와의 관계가 오래 유지되곤 했다. 그렇게 상대에게 나 혼자 폭발하지 않고 적절하게 거리를 두며 오래 만나다 보니 내 맘 속에 걸렸던 상대의 단점 또한 받아들이게 되기도 했다. ‘저 사람 스타일인가 보다.’하면서 말이다. 내가 이렇게 되기까지 내가 과거의 써온 나의 글들이, 내 고민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나의 글들이, 나를 조용히 응원하고 지지해 주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글쓰기를 해 보라고 지인 지주씨에게 권하자, 그녀가 내게 물었다.

“근데, 글에서 나는 좀 더 좋은 사람이게 쓰지 않나요?” 

나는 대답했다. 

“그렇죠, 하지만 내가 아닌 나, 그 이상을 쓰기가 어렵더라고요. 나 이상을 쓰다가도 나 이상을 살아보지 못해서인지, 거짓으로 쓰다가도 막혀서 돌아오게 되더라구요.”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나 이상을 많이도 써 왔다. 글쓰기는 재미있다고 섰지만 이토록 지루한 작업이 또 어디 있을까를 오늘만 해도 여러 번 생각했다. 처녀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고 이 삶을 받아들였다고 섰지만, 원피스에 구두 신고 어디론가 출근하는 젊은 여성이었던 나를 자주도 그리워한다.     

 

자전적 에세이를 주로 쓰는 나이기에, 내 삶의 부분 부분이 소재가 된다. 글에서의 ‘나’는 내 방식대로 이해하고 필터링 작업을 거친 사건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격이다. 내가 나를 최대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려 하더라도, 나는 나를 ‘좋은’ 사람이게 쓸 것이다. 이것이 내 글의 한계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현실의 나와 글의 내가 다름을 알아차리게 순간이면, 나는 홀로 자아비판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내 ‘글’과 ‘내’가 함께 공존하는 시간을 겪어가며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이것을 자기기만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한 발짝 앞서간 나정도이면 좋겠다. 글에 쓰여진 흠집 없는 자아상은 나도 잘 몰랐는데 글 쓰다 보니 알게 된, 내가 닿고 싶었던 하나의 지점 정도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데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나만 써야 한다면, 지루한 다큐멘터리만 쓰다가 중도에서 그만둘 것 같다. 살면서 필요한 건 과장과 뻥이 어느 정도 섞인 적당한 예능감 아니겠는가. 글도 그래야 쓸 맛이 나지.      


이렇게 복잡한데, 나는 왜 글을 계속 쓸까? 어쩌면 글을 쓰는 것과 ‘잘’ 사는 것은 무관한 일일 것이다. 이런 글 한 자 쓰지 않아도 잘 사는 사람들 참 많다. 오히려 글 쓰는 것에 관심 없이 자신의 일에 매진하고 또 가정을 돌보는 것에 온 마음을 다 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는 하염없이 부러워지곤 한다. 훨씬 심플하고 삶 그 자체에 몰입하고 있는 듯 보여서이다. 내가 글쓰기보다 요리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더라면 내 삶은 어땠을까. 우리 가족도 건강하고 아이의 편식도 훨씬 덜 했을 것 같다. 집안일을 잘 하는 것에 만족감을 느꼈더라면, 혹은 재취업에 성공하여 워킹맘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할 수 있었더라면, 아니면 작은 사업 아이템이라도 있어서 가게를 열어서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자주 내가 글쓰기에 쏟는 에너지를 내 삶의 다른 부분에 쏟는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다.      


‘시간이 잘 가서’라는 동네 한량이 할 수밖에 없는 대답을 하더라도, 나는 계속 쓰려한다. 내가 쓴 글과 또 앞으로 쓸 글들이 동네 어귀 모퉁이를 돌다가도, 산책하면서 갑자기 훅하고 울컥하다가도, 아들에게 화를 내다가도, 마트에서 1+1 상품과 정말 사야 할 상품 사이에서 고민하는 내적 갈등 상황에서도, 나는 나의 글을 마주친다. 그렇게 마주치는 나의 글들이 나를 아주 오만하거나, 파렴치하거나, 허영에 가득 차지는 않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내게 가장 부족한 부분, 하루하루를 활기차게 살아갈 용기를 내게 주리라 믿는다.      

이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 5일 동안 세 시간씩 붙잡고 있었다. 거봐, 시간 잘 가지.     



매거진의 이전글 편집자는 내 글에 어느 정도 손을 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