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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Jun 17. 2022

책 나오고 기분이 어때요?

안갯속에서 나는 울었어. 사랑받고 싶어서.

       

“아..., 네. 음.... 좋긴 좋죠. 근데 뭐랄까. 잘 모르겠어요.”     


친구와 지인들에게 대면으로 책을 전달하면서, 전화통화를 하면서, 카톡을 하면서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라 하면 “책 나오고 기분이 어떠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좋긴 좋은데... 아... 일단... 음... 뿌듯하다. 검색하면 내 책과 내 이름이 포털에 나온다는 건 너무나도 신기한 일이다. 근데... 뭐랄까. 너무 업 되서 신난다거나 일상에 큰 변화가 생겼다거나 그렇지는 않기에, 그냥 좀 얼떨떨 덤덤하다. 그러다가 스스로 ‘책이 나왔는데! 이렇게 무덤덤할 일인가, 일부러라도 좀 신나 보자.’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을 업 시켜 보려다가도 어느새 다시 스르륵 무덤덤해지곤 한다.     


그런데 책이 나오는 과정, 그것은 참 재밌었다. 한컴 파일 A4 80여 장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출판사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나의 책을 내어준 마시멜로(한경 BP) 출판사는 작가인 나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주는 분위기였다.      


우선 책 제목. 글을 쓰면서 자주 책 제목을 고민했었다. 여자의 인간관계를 베이스로 한, 아줌마들의 인간관계... 뭐라고 해야 할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처럼 강렬한 한방! 나는  여러 개의 가제를 만들어서 편집자에게 메일을 드렸고, 답장이 왔다. 책 제목은 출판사에서 정한다는 것이다. 처음엔 내 책의 제목을 출판사가 만들어주는 것이 좀 의아했었다. 하지만 출판도 시장인데 어떤 제목의 책을 내어야 시장성이 있는지는 현업 종사자들이 가장 잘 알 터. 게다가 나는 책 제목 고민을 안 해도 되니 사실 좀 편하기도 했다.      


책 인쇄 예정일 3주 전, 책 제목 - 가제 3개가 왔다. 편집자는 회사 구성원들이 대부분 미혼인지라, 1번이 가장 괜찮을 것 같은데 예상 독자인 엄마(아줌마)들의 의견이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는 문자를 내게 남겼다. 나는 친언니와 올케까지 포함한 내가 아는 열댓 명의 아줌마들에게 카톡으로 의견을 물어보았다. 의견은 분분했다. 거의 5:5:5로 3개의 제목이 다 각각의 이유로 ‘좋다’는 표를 받았다. 흐음... 편집자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다 비슷하게 좋다고. 그리고 저는 가장 직관적이고 자극적(?)인 1번 ‘아이 친구 엄마라는 험난한 세계’가 가장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다음 날, 표지 디자인 시안이 왔다. 이번에도 아줌마들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이번엔 조용히 디자인에 관심 있는 몇 명과 남편에게만 물어보았다. 문이 그려진 디자인, 맘에 들었다. 왠지 험난한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인쇄소로 책 넘기기 직전의 마지막 PDF 파일이 넘어왔다. 출판사 쪽에서는 그저 확인 차원에서 내게 보낸 것이었겠지만 이 파일을 보는 순간, 나는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발동했다. 그래서 2박 3일을 열과 성을 다해서 읽고 고쳤다. 그렇게 하고 싶었다. 10여 년 전, 회사를 다닐 때처럼 한 번 해 보고 싶었다. IT 개발 업무는 대부분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되곤 하는데, 아무리 초반에 일을 미리 당겨서 해 둔다 하더라도 마지막에 항상 일이 몰리곤 했었다. 특히 버그를 잡기 위해서 QA(Quality Assurance 품질 보증) 팀에 소스코드를 넘기면 QA팀 사람들은 귀신같이 버그를 잡아서 몇 장의 엑셀 파일에 구문 구문 정리를 참 잘도 해서 넘겨주곤 했었다. 그러면 1차 QA, 2차 QA, 3차 QA에 이를 정도로 버그를 잡고 또 잡았다. 마지막에 이제는 되었다고 QA팀에서 인증을 해 주어야 비로소 소스 코드가 서버로 전송될 자격을 얻을 수 있었고, 그때서야 비로소 서비스 론칭이 되곤 했었다.     


그 당시 버그를 잡듯이 나는 비문을 잡고, 별 필요 없이 많이 들어간 ', '를 잡고, 좀 더 자세히 쓰기 위해서 단어를 바꾸고, 그 단어를 바꿈으로 인해서 틀어지는 문장을 바꾸고, 또 문단 전체를 바꾸기도 했다.   

 

“시간을 하루만 더 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 네. 작가님 목요일 저녁 늦어도 금요일 오전까지는 주셔야 인쇄소에 넘길 수 있어요.”     

미안했다. 그러게. 평소에 내 글을 좀 봐 두었어야 했다.      


그렇게 꼬박 2박 3일을 집중해서 글을 고치고 수정된 PDF 파일을 넘겼다. 기분 좋은 피로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 일은 내 평생에 단 한 번 있을 일로 끝날지도 모를, 단발성 작업이다. 그래서 할 만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매일 이렇게 하이 텐션으로 일을 해야 한다면 나는 그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번아웃되어 버렸을 것 같다. 많은 직장인들이 이렇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열심히 일을 할까... 남편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열심히 일 하고 왔을 그를 토닥여주지는 못할망정, 집안일 안 도와주고 아이 돌봄을 같이 안 한다고 투정 부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튼 내가 할 일은 이제 끝! 이제 출판사가 할 일만 남았다. 인쇄소로 고고!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편집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yes24에 내 책이 검색된다는 것이다. 검색하자 책이 떴다. 너무 신기했다. 그날, 내 책의 판매지수는 ‘없음’.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yes24 앱을 열어 판매지수와 에세이-인간관계에서의 베스트 순위를 확인했다. 그리고 네이버, 인스타 등에서 내 책 제목을 검색했다. 출판사에서 맘카페에 서평 이벤트를 열어주었다. 인스타그램에 피드도 올려주었다. 그리고 팔로워가 좀 되는 인플루언서들에게 책의 서평을 부탁한 게 보였다. 그렇게 매일 아침이면 세상에 나온 나의 책이 세간에 어떤 관심과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런데 이것도 한 일주일 정도 신나게 했을 뿐. 아침이면 꼬박 들르던 yes24 지수 확인도 이제는 좀 시들해졌다. 베스트 순위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한 계단 올랐다가 두세 계단 내려가고 있다. 판매지수 또한 조금씩 상승하긴 하지만 획기적으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어, 내가 도대체 뭘 바란 거지’     


3년 전, 브런치 작가 신청할 때만 해도 브런치 작가가 된 것만으로도 세상 다 가진 것 같았는데. 그러다가 구독자가 한 분 한 분 늘 때만 해도 남편에게 자랑하곤 했었고. 어쩌다가 다음 메인에 나의 글이 걸리는 날엔 화면을 캡처해 두곤 했었지. 그러다가 책 내자는 제안을 받은 날에는 뒷산에 올라가서 ‘저 책 내요~ 야호~’라고 실컷 자랑하고 싶지 않았던가.     


책이 나와서 기분 좋아요. 맞아요. 아직 좀 많이 좋아요. 하지만, 내 일상은 그대로다. 수고했다고 누가 내게 1박 2일 휴가를 주거나 제주도 여행권을 제공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너무나도 어제 같은 하루를 보낸다. 일어나서 간단하게 애들 아침 식사를 챙겨주고 학교를 보낸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에게 수학 연산을 조금 시키면서 실랑이를 하고, 영어 학원 숙제를 독려한다. 그 후엔 놀이터에 나가 노는 아이를 따라다니기도 하다가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반찬 투정을 안 하고 잘 먹어주면 고맙고 또 투정을 하면 달래다가 그냥 내가 다 먹어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식사 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를 재운다. 저녁 자유 시간에 티브이나 유튜브를 좀 보거나 책을 좀 읽다가 잔다. 나의 하루는 책 나오기 전과 후로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이런 덤덤한 일상, 그래서 다행이다가도 못내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이 아쉬운 마음 또한 두세 달이면 잊혀질 것이다. 내 책은 조금씩 조금씩 세간에서, 그리고 좀 더 주목받기를 간절히 바람 했던 내 마음속에서조차도 시나브로 잊혀질 것이다. 그럼에도 너무 신기한 건 내게 먼저 연락을 해 오는 몇 안 되는 ‘독자’들이다.     


나는 sns를 안 하지만, 책 홍보를 위해서 인스타그램에 서평 이벤트를 올렸다. 흡, 이벤트 신청자는 노바디 노바디. 그렇게 이벤트는 종료 일자를 넘어갔다. 나 또한 인스타그램의 서평 이벤트를 잊고 있었는데, 누군가 해당 피드에 댓글을 달았다.     


“저는 제 돈 주고 읽고 있어요 넘나 재밌어요!!! 응원합니다 리뷰 꼭 쓸게요”


네? 아... 그녀가 내 눈앞에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다.  

    

“재밌게 읽고 계신가요? 어느 부분이 제일 마음에 와닿으시나요? 언제 어떻게 이 책을 알게 되셨나요? 독자님도 애 키운다고 정신없으실 텐데 언제 읽으시나요? 혹 제 글투가 걸리는 부분은 없었나요? 읽으시다가 너무 무겁거나 지겨워서 덮어버리고 싶을 곳은 없었나요? 가감 없이 말해 주셔도 되요. 다음 글에 참고하려구요. 자세히 말해 주세요. 네?”     


그리고 그녀와 헤어지기 직전엔,     

“저...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한 번 안아 드려도 될까요?”

라고 하고 싶다.     


그렇게 그녀를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고맙다고. 이렇게 나에게 닿아 주어서 고맙다고.     


책을 내나 안 내나, 내 일상의 흐름에 큰 변화는 없지만. 그래도 책을 내서 가장 좋은 점이라 하면 저 멀리 어딘가 살고 있는 모르는 점과 같았던 사람이 나와 ‘독자’로 만나게 된 것일 테다. 그리고 그 사람의 기억에 나는 박혜란이라는 작가로, 이 책의 저자로 기억되는 것이겠지.     


이래서 사람들이 책을 내나.     


세상에 나의 생각을 알리고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서. 

그들에게 기억되고 싶어서. 

사실은 사랑받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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