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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Oct 26. 2022

돼지 엄마와 물귀신 - 2편

- 일단 튀어.

         

  “현민이랑 놀아도 돼요?”

  어어 잠시만. 현민이를 불렀다. 현민이는 내 핸드폰을 낚아채듯 가져간다. 모르는 번호인지라 받을까 말까 하다 받았더니만 현민이 친구였구나. 핸드폰이 없는 현민이가 내 번호를 알려준 모양이다.      

  “당연히 놀 수 있지.”

  현민이는 ‘엄마 빨리빨리’를 외치며 작은 크로스 색에 카라멜, 몰랑이, 종이 접기한 미니카 등을 후다닥 챙겨서 나간다. 나는 현민이 뒤통수에다 물어본다.     

  “어디서 놀기로 했는데?”

  “아, 학교 놀이터.”

  현민이는 내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자전거를 타고 사라졌다.     


  휴우... 윤재라고? 나는 아이의 친구가 너무 궁금했다. 3월 개학 이후 딱히 친하게 지내는 친구라곤 없어 보이던 현민이었다. 그냥저냥 가야 되니까 가는 학교와 학원이었다. 아이들이 마실 물과 과일을 좀 챙겨서 학교 놀이터로 향했다. 그러곤 아이들이 노는 것을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았다. 윤재에게서 어쩐지 현민이의 모습이 보였다. 비슷한 키에 살이라곤 없는 깡마른 몸매. 행동할 때 살짝 어정쩡한 것이, 무슨 생각을 하고 저러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만들곤 하는 9살이 가진 어설픔. 달리기는 둘 다 어찌나 빠른지. 차분한 듯 산만한 것이 어째 현민이랑 비슷하네. 비슷한 녀석 둘이 서로를 알아본 것인가. 배울만큼 배우고 살 만큼 산 사람이 재고 따지고 하여 친구가 된 것이 아니라, 인생 경험 별로 없는 어린이들이 서로를 본능적으로 알아보고 친해지는 게 나로서는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      


  윤재도 몰랑이를 좋아하는지 몰랑이 20개 정도를 들고 나왔다. 몰랑이 모래성을 지어서 의성어인지 의태어인지 “하아-”, “뀨우”, “힝힝” 이러면서 노는 데 둘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듯했다. 9살 남자 어린이들이 노는 모습이란. 나는 윤재가 내게 보내는 멋쩍어하는 눈빛과 현민이와 코드가 맞는 것에 감사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잘 놀겠지. 다 때가 있나보다. 1학년에 비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다. 나는 스스로의 힘으로 잘 커 주는 현민이에게 고마웠다. 한 시간만 더 놀다가 돌아오겠다는 약속도 받았겠다. 집에 가서 미역국이나 끓여야겠다.


    그 후로도 윤재와 현민이는 서로 약속 시간이 맞으면 잘 놀곤 했다. 현민이 학원과 윤재 학원 시간이 다르기에, 9살 어린이들이지만 하루 중에 놀 수 있는 시간이 충분친 않았다. 그래도 주말이면 서로의 집을 오가며 해가 지도록 놀곤 했다.     






  “현민 엄마, 저 윤재 엄마예요.”

  “아, 네~”

  윤재 엄마가 윤재 전화로 내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실내 놀이터로 갈 생각인데 함께 하겠냐는 것이었다. 이제 날씨도 슬슬 더워지고 해서 애들이 야외 활동하기엔 너무 더울 것 같다고. 주말에 남편도 출근하기 일쑤고 별다른 계획이 없었던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토요일 오전부터 윤재랑 놀러 간다고 들떠있는 현민이. 현민이와 다르게 나는 살짝 긴장되었다. 윤재 엄마 캐릭터도 잘 모르는데... 윤재로 미루어 보아 엄마도 차분한 분이지 않을까 하고 예측만 해 보았다. 시간이 되어 막상 실내 놀이터에 도착해 보니 윤재의 형과 형의 친구들도 여러 명 와 있었다. 아이고 이 녀석들. 윤재의 형은 11살로 4학년이었다. 왜 윤재만 데리고 가냐며 따라붙었단다. 전화를 돌려 올 수 있는 친구들도 다 불렀고. 무엇이 되었든, 한 바탕 신나게 놀면 되는 것 아니겠나. 토요일인데. 그리고 어린이들인데.     


   아이들은 실내 놀이터 이곳저곳으로 흩어지고 윤재 엄마와 나는 그제야 한 숨 돌리며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었다.

   “형이 있었네요. 윤재가.”

   “아, 우리 선재요. 네 제가 아들 둘 키우며 아주 그냥 늙네요 늙어.”

   그녀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에이 뭘요. 그래도 형이 있으니 좋아 보여요. 든든하구요.”

   우리는 가볍게 일상다반사를 나누었다. 현민이와 윤재 담임 선생님이 꽤나 괜찮은 분인 것 같다 이런 류의 이야기들. 그러다가 윤재 엄마가 내게 물었다.

   “현민이 학원 어디 어디 다녀요?”

   “아. 우리 현민이는 지금 영어만 다녀요. 매일 가는 곳인데 45분이니 크게 부담 없을 거라 생각돼서요. 학교 끝나고 바로 다녀와요. 다른 애들에 비하면 놀 시간이 좀 길긴 하죠. 흐. 요즘 바둑도 좀 관심 있어해서 한 번 체험 가 볼까 하고 있네요.”

   “영어 학원 어디?”

   “아. 제가 이사 오면서 알아보니 매일 가는 데가 거기밖에 없더라고요. ESJ요”

   “헉. 아 거기...”

   “아. 왜요?”

   “아니에요. 현민 엄마. 거기도 뭐 괜찮긴 한데...”

   “왜요? 거기 무슨 일 있었어요?”

   “에이... 잘 다니고 있죠? 그럼 됐죠.”

   “아, 뭔가 알고 계신 거 같은데. 뭔데요? 제가 이사 와서 잘 몰라요. 좀 알려주세요”

   “아... 거기요. 몇 년 전에 애들끼리 좀 크게 싸우는데 원어민 선생님이 자리를 비웠대나... 못 봤대나... 여하튼 선생이 애들 싸우는데 그 자리에 없었나 봐요. 남자 애들끼리 한 애를 발로 밟고 뭐 그랬나 봐. 그런데 원장은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면서 CCTV도 안 보여주고. 원어민 선생만 다른 데로 옮겼다나. 에휴 그래서 거기 이 동네에서 한참 소문이 안 좋았죠. 근데 그건 몇 년 전 일이니까. 지금은 안 그러겠죠...?”

   “아아...”


   에휴. 그래서 레벨도 간당간당한 현민이를 쉽게 받아준 거였나. 그래도 반년을 잘 다녔는데. 내가 느끼기엔 원장 선생님이 아이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고 현민이가 한 번씩 따라 읽기 싫다고 투정을 부려도 잘 구슬려서 수업을 잘 이끄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학원에 현재는 원어민 선생님이 없었다. 흐음. 그래도 왠지 집집하네.      


    아이들이 노는 두어 시간 동안 윤재 엄마는 이 동네 사람들의 사교육 열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직 2학년은 편안한 시기라고 했다. 본격적인 준비는 3학년 중반 늦어도 겨울 방학 정도부터 슬슬 시작되어 4학년 중반 즈음되면 특목고 준비가 시작되곤 한다고 했다. 현재 윤재의 형 선재도 슬슬 수학학원을 바꿀 때가 되었다며 자신도 요즘 수학학원 알아보느라고 골머리를 앓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것도 애가 어느 정도 잘해야 하는 고민이라고 덧붙였다. 4학년 말 5학년만 되어도 분수 나오고 최소공배수, 최대공약수에서 퍼지는 수포자가 꽤나 된다는 것이다. 허... 거, 참. 초등학교 고학년의 세계는 또 다른 것 같았다. 나는 윤재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초면에 불편한 표를 내기도 그렇고 하여 애먼 아메리카노만 한 잔 더 시켜서 마셨다. 카페인 발로 버텨보고자 말이다.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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