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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day Jan 25. 2021

좋은 일을 업으로 하기 위해

계약직과 열정의 온도

작년 말쯤 몇 번의 이직 잡 오퍼를 받았던 적이 있는데,  결국 어느 오퍼에도 응하거나 시도하지 않았다.
물론 면접까지 봐야 하는 절차가 있었고, 그들이 최종에서 나를 반드시 뽑아준다는 보장도 없었더랬지만 말이다.

기관 U는 국제기구였지만, 국제기구 특성상 1년마다 계약을 해야 하는 구조였고, 반면 기업 C는  정규직에다 급여는 아주 많이 주지만, 급여 외에 매력적인 것이 없었다. 특히 NEXT STEP이 애매했다.

고로, 나의 일터를 정하는 기준에는 인지도나 급여 외에 중요한 것이 아주 많다는 것이고, 현 일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 : 그것들이 나의 3년간의 현 직장 생활의 모토와도 같다는 것이다.

그중 첫 번째는, 내가 성장할 수 있는 회사이며, 이 회사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기회들을 잡을 수 있느냐이다.
주니어 입장에서 현 회사 현 직무는  아주 그 요건들을 잘 충족하고 있다. 늘 새로운 것들을 할 수 있고, 그 업무를 리딩 할 수 있기 때문. 두 번째는, 함께하는 사람이다. 내가 ‘나의 일터를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함께 일하는 선배들과 동료들이 5할 이상을 차지한다. 함께 일하는 이들이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고, 이들과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어 행복한 회사생활이 가능했던 건 명백한 사실이니까.


마지막 하나는, 바로 고용형태와 양질의 일자리의 조건(흔히 말하는 복지)이다. '양질의 일자리'에서, '양질의 급여'를 받으며  안정적인 고용형태로, 업무에 매진할 수 있느냐이다. 이 역시 업계에서는 거의 제일 좋은 편이고, 일반 영리 기업과 비교해서도 복지는 꽤나 만족스러운 편이다.


하지만 해당 사항은 ‘정규직’에 해당할 때만이다.

그게 문제다.

3년 전 현 회사로 이직하던 때, 그 당시  입사 때 만 해도 대부분의 신규 인력은 계약직이었고, 나 역시 계약직으로 시작했다 (물론 나의 경우는 동종기관 경력 때문에 감사하게도 입사 몇 달 만에 정규 TO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 나와 같은 해에 입사한 친구들 중 마지막 남은 한 명의 동료가 정규직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기관 인사 규정상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는 계약직 퇴사 후 재입사 시험에 응해야 한다)


계약직과 정규직, 사실 우리는 ‘신분’과 상관없이 똑같은 업무와 책임을 다 해왔다.  조직 내에서 ‘ 계약직’으로 받은 차별도 크게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고질적인 ‘계약직'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가슴이 답답해지며 정말 할 말이 많아진다.  

대부분 소위 말하는 명문대, 해외 경험, 타회사 근무경력들을 포함한 과다 스펙들을 가지고 계시지만, 우리 회사처럼  큰 기관에는 모처럼 정규직 티켓을 가지고 첫 입사하는 것은 매우 드물고 어려웠다. 함께 일하는 10년 이상된 차장님들도 4년의 계약직을 하셨으니 예로부터 그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지원자들, 우리는  기관의 네임과 메리트와 복지, 그리고 이 일에 대한 사명과 열정으로  인턴을 거쳐, 계약직 입사를 거쳐, 정규직 입사에 도전해왔다.
(동료 A는 계약직 지원 3번, 정규직 지원 2번의 도전만에 정규직원이 될 수 있었고, 동료 B는 최종면접 3번의 낙방 끝에 정규직이 될 수 있었다. )

이 일의 가치 때문에 이 일을 한다고들 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안정적이고,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갈망으로, '정규직'이라는 티켓을 따기 위해 불안 속에 지내야만 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업무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있기에 야근도 마다하지 않으며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해야만 했고, 그 과정의 희로애락 가운데 부서는 다르고 하는 일은 다르지만  우리들의 관계는 두터워질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오는 동안, 동기들 대부분은 결국 '정규직' 티켓을 획득하게 되어, 계약직의 열정의 온도를 유지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여전히 열심을 다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 상처를 받고 기관을 떠난 직원도 수두룩하다. 그 동료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겪는 우리들 역시 상처를 받곤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이 시점, 기관 내의 계약직 포션도 줄어드는 걸 보면, 기관도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구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기관의 입장을 아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기도 하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려면, 인력이 필요한데 기존의 인력은 이미 풀로 업무가 차있으니 어찌어찌 예산을 끌어모아, '프로젝트 계약직'을 채용해야만 하고, 아기를 출산하는 엄마들의 일자리를 지켜주기 위해선  '육아휴직 대체 계약직'이 불가피하니까.

그럼에도, 사명과 마음을 다해 일하는 직원들에게, '양질의 일자리'가 처음부터 주어졌다면,
그들은 조금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순수히 업무에 대한 열정의 온도를 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인턴과 계약직으로 시작하는 게 어느 시점부터는 당연한 인식처럼 되어버린 세상.

좋은 일을 하고자 하는 이들, 이 일의 사명을 가진 이들이 '고용의 형태' 때문에 포기하지 않도록 지치지 않도록 양질의 일자리들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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