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비우고 있습니다_5
냉장고가 식재료 보관용이었다가 창고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소비를 부추기는 주변 상황 덕분에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식재료를 소비하고 있다.
코스트코와 트레이더스와 같은 창고형 마트가 저렴함을 압세우고 우리의 지갑을 열게 만든다. 그램(g) 당 단가를 생각하면 훌륭한 가격이지만, 실질적으로 그것을 다 소비했을 때만 그 가격일 뿐. 어쩌면 집에 갖고 와서 보관하느라 드는 에너지 비용, 예를 들면 전기세나 소분하는 데 들이는 에너지, 그리고 장보고 정리하는데 드는 시간을 생각해 보면 그게 더 알뜰한 행동일지는 모르겠다.
대용량으로 음식과 식재료를 구입하다 보니, 대용량 냉장고도 좁게 느껴지고 더 큰걸 사야겠다는 소비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왠지 더 큰 용량을 사서 쟁여둬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요즘의 소비 분위기. 텔레비전을 틀면 다양한 채널에서 이 제품을 꼭 사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홈쇼핑이 우리를 유혹한다. 스마트폰을 켜면 다양산 소셜 미디어 라이브 커머스에서 구매욕을 자극한다. 이뿐만 아니라 SNS를 보면 왜 이리 사야 할 것들이 많은지. 왜 사야 하는지를 꼼꼼하게 설명하며 직접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플루언서들을 보면 안사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래저래 해서 점점 늘어가는 식재료들과 가공식품들. 냉장고가 편안할리 없다.
물론 냉동실은 안의 내용물을 80% 이상 채워야 더 냉동이 잘 된다 말한다. 하지만 냉장실은 내용물의 40~50%만 채워야 냉기가 돌아서 좋다고 하는데 이리 생각하면 냉장고가 가득 찬 건 우리가 과식을 해서 배가 가득 찬 것과 진배없는 상황이다.
냉장고는 안에 내용물들의 신선도를 위해 자주 모터를 돌려 냉기를 유지하려고 할 테고, 그렇다 보면 당연지사 전기세라는 비용이 추가된다. 게다가 냉장고에 내용물을 많이 넣어두면 무엇을 넣었는지 알 수 없을 터. 복잡해지고 신선도는 떨어지고 귀찮아질 뿐이다.
어쩌면 마트에서 주는 시식코너에 홀려서,
영상에 먹고 있는 먹방러의 모습에 홀려서,
라이브 방송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의 언변에 홀려서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닌데 산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나의 냉장고 건강은 내 몫이다. 냉장고가 뚱뚱 해지만 내 몸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오랜 시간 보관했던 것을 먹을 테고, 오랜 시간 상하지 않고 보관된다면 당연히 보존제나 유지제가 가득 들어 있을터. 어쩌면 냉장고의 건강과 나의 건강은 직결될지도 모르겠다.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해서 잠시 머물러 가는 휴게소 같은 냉장고, 건강한 냉장고와 함께 사는지.
오랜 시간 머물러서 음식물이 체류하는 냉장고, 답답하고 무거운 냉장고와 함께 사는지는 나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