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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그릇 Sep 18. 2023

#5. 당신은 후회라는 것을 하는 사람인가요

후회라는 것은 만회할 수가 없는 것들에 대해 느끼는 것 아니겠는가. 후회를 해서 무언가 달라진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어디에도 가닿지 못하는 감정이다. 돌이킬 수가 없는 것들은 그저 감당하며 지나갈 수밖에. 과하게 자책하거나, '아팠기에 난 성장했다'라고 손쉽게 괜찮은 척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불완전한 존재로서 얼마든지 겪을 수 있는 실패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빨리 결론 내리기보다 내 안에서 가만히 소화시키며 그 과정을 감당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받아들임'은 그 문제에 대해 여러 각도로 사유하는 힘을 길러준다. 근본적인 변화나 성장은 그렇게 천천히 찾아올 것이다. 사유하고 고민하고 행동하면서, 건전한 자기 의심을 곁들인 선택들을 거듭 내리면서, 내 인생을 자율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란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 임경선





짜증과 화가 잔뜩 담긴 단어는 그게 비록 온라인 상의 텍스트라도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할 말을 감정을 빼고 전달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싸우자는 건가요?" / "정신 챙기세요"

라는 말로 상대방이 나의 말을 되받아쳤던 경험에서 나는 무엇을 얻고 배웠는지 살펴본다.

그건 아마 그쪽이 챙겨야 할 정신이 잠시 궤도 이탈했기 때문일 수도.


심지어 나의 직업적 윤리성을 따지는 당신은 결국 그렇게 윤리적인 사람인가. 를 되묻게도 된다.  물론 그렇게 물고 늘어지지 않았고 그 공간을, 그 직업을 상당히 아꼈던 나로서 마지막으로 건넨 말은



"의미 없어요".



정말 그랬다. 더이상 잘 해보고 싶은 마음도, 되돌이키고 싶은 의지도 없었고 일말의 노력이라는 것을 하겠다는 다짐도 생기지 않는 관계.  확언컨데, 그녀는 저렇게 내게 한 말에 대해 일말의 '후회'라는 것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라해도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세상에는 내 식대로 해석해도 괜찮은 것들이 있는 법이다.  




내가 같이 일해왔던 상사들과 끝에 가서 잘 맞지 않는 이유는 불합리함을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인데 참을 때까지 참아보다가 이후에는 나의 평판이야 어떻든 해야 할 말은 하고 말아버리는 성질 때문인 걸 나는 잘 안다. 그런데 이런 속사정을 일일히 알리가 없는, 나를 잘 안다고 했던 사람들이 주로 해주었던 말들을 보면 "너는 남 밑에서 일을 하기 보다 너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사업을 해야해. 곧 죽어도 너 일을 해야할 성향이야." 사실 내가 얼마나 게으르고 한편으로는 야망이 없는지 알게 되면 정말 놀랄텐데.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왔었고 특히 직업적 선택 앞에서 결혼 생활 중 좌절된 것 말고는 정말이지 내가 하기 싫은데 돈 때문에, 간지 나보여서, 안정적이라서 선택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실제로 직업 외의 많은 부분들에서 그래왔다. 그래서 나는 <후회와 선택>이라는 화두를 누군가 던진다면 나는 결코 후회를 '잘 하지 않는' 편인 사람이다. 내가 가진 신념으로 내린 선택으로 인한 결과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쨌든 다변적이기 때문이다.


오늘 몇 주에 걸쳐 두껍지도 않은 이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한 자리에서 완독을 하는 게 어려운 요즘은 그저 틈을 내서라도 글을 읽으며 조각을 이어보고 느낌을 담아보는 편이다. 새로운 곳으로 이직하고 좋은 점은 어느 정도 의무적인 것을 마치고 나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배경으로 틀어두고 글을 짬짬히 읽고 쓸 수 있다는 것.  심적으로 나를 방해하거나 훼방놓는 요소도 없는 편이고 4대 보험이 적용되고 적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고 놓지 않아야 하는 영어를 업무용으로 써야해고 여전히 학생들을 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이 직장으로 전향하기 전에 물론 큰 선택을 해야했다. 프리랜서로서 부당하게 당해야 했던 대우 - 일하는 대로 받아도 턱없이 적은 수입, 계약상의 xx% 비율제에 소득세 3.3.% 공제. 그 어떤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던 일용직 저소득 전문직으로서의 고만 고만하게 알량한 자존심. 그 환경에서 결국은 모멸차게 박차고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건 어쩌면 1년 반이라는 시간 가까이 진작 떠나지 못했던 용기 없던 내 모습을 인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최근 아니 어쩌면 내가 후회하는 종류는 이거 하나다. 더 빨리 선을 긋지 못했던 것. 더 빨리 떠나오지 못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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