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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그릇 Feb 06. 2024

#9. 지독하게 지독한 겨울


사실은 다시 안간힘을 내며 살아가야 하는 걸 알기 때문에 벌써 숨이 가빠와요.

죽고 싶다, 죽어버릴까, 그럼 고통이 끝날텐데, 하는 생각을 작년 겨울부터 일주일에 한 두어번은 한 것 같아요.

그러다가 오늘은 꽤 구체적이게, 꽤 거세 보이던 신창리 풍차와 바다의 파고를 떠올리며 무작장 차를 몰고 바다 쪽으로 향해 돌진 운전을 하면 구조도 힘들겠지, 차가 물에 잠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흐르겠지 같은 구체적인 심상까지 떠올렸답니다.


겨우내 웅크리다 추위를 많이 타는 탓에 움직임이 확연히 줄어 티가 나게 살이 쪘어요..... 누워서 넷플릭스의 드라마와 영화를 binge watching 하면서 맛도 느껴지지 않는 배달음식을 주 2,3회씩은 야식으로 시켜 먹고 탄산음료를 그렇게 마셨어요. 다행이랄까, 술은 마시지 않아요 혼자, 아무리 슬퍼도 힘들어도. 혼자 마시는 술에 대한 대단한 철학과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게 없어서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 거죠. 혼술은 맛이 없다는 혼자만의 공식이 있어서 일지도..


이렇게 공식 혹은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성향은 아닌 편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필요성은 느껴요. 가령 글쓰기에 대한 계획 같은  것..

글을 다시 써야겠다고 마음을 몇 수십 번씩 먹어도 자꾸 며칠 안 가서 실패하는 모습만 먼저 스쳐 지나가니 계획이라는 걸 하기도 전에 지치고 포기해요.  일단 해야 하는데 일단 써야 하는데, 지금처럼 사방이 컴컴한 호텔 침대에서 갑자기 눈이 떠져 켜고서는 누워서 쓰든 어쩌든 써 내려가야 하거든요.


이렇게 쓰다 보니 조금 선명해지는 것도 같아요. 내가 나아지고 싶구나 여기서 더 성장하고 싶구나 그런데 힘에 부치는구나, 힘내라는 말도 다 지나갈 거라는 말도 어떤 위로도 되지 않을 땐 그저 혼자 있기가 최선이고 최고의 수행이라 여기며 나를 위로해요,  이렇게라도 버티고 버텨보자고 다시 나를 좀 제대로 쳐다보려고 한다 할까....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거냐고 버텨왔냐고, 버텨갈 거냐고 묻는다면 정말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고 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에요. 



바다가 보이는 도서관에서  '상실'을 키워드로 치고 나온, 마음에 든, 이런 책을 몽땅 빌려와  6만 7천 원짜리 위로 혹은 사치를 부렸습니다. 작년에 이 호텔에 왔을 땐 고층 오션뷰에 방도 조금 더 넓었는데 욕조가 있어서 너무 마음에 들었던 곳이에요. 반신욕 하면서 다음 이사 갈 집엔 비데랑 욕조는 꼭 있으면 좋겠다고 현실적인 공상도 살짝 해봤어요. 여하튼 욕조가 있고 편하게 혼자 일상의 텁텁함을 벗을 수 있는 곳이라서 좋아요, 주변이 매우 한적합니다. 2022년의 마지막 날과 23년의 첫날을 맞이한 곳이고 그때도 지금처럼 혼자, 오롯이, 나 혼자입니다.


좀 무례하게 들릴지 몰라도 위로는 사양하겠습니다. 내가 날 감싸고 위로하기가 힘든데 타인이 건네는 위로는 오롯이 위로로 닿기 전에 동정이라는 왜곡의 탈을 쓰고 나를 덮치고 말 거예요. 나를 온전히 위로할 기력도 없어 하루라는 귀한 시간에 겨우 끌려 다닌 지가 꽤 되었단 말이에요. 사실, 이별과 상실의 경험은 나를 단련시키기보다 사색하게 합니다. 자꾸 숨어들게 하고 멀어지게 합니다. 나의 책임과 생활, 매일의 굴레로부터,




생각이 이 정도까지 미치자 차를 끌고 바다로 돌진하겠다는 마음은 쑥 들어가고 책 한 권은, 내 고통을 담은 무기력한 책 한 권쯤은 내고 죽자 싶다. 이것도 동기 부여라면 동기 부여겠지. 지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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