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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그릇 Feb 15. 2024

#10. 온온하고 고통스러운 혼자의 일상


퇴근 후 집으로 곧장 가지 않는 날들이 늘어난다. 그렇다고 뚜렷하게 운동 같은 생산성 있는 활동을 하는 건 아니다. 사람을 만나는 건 더더욱 아닌 시간. 무언가를 계속해야겠고 하고 싶다는 마음속 외침에 혹은 당위감으로 무장한 불안감에 휩싸여 몸을 어디론가 향하고는 있다. 뭐 사실은 늦은 시간까지 하는 카페, 학교 도서관의 반복이다.


지금 직장으로 옮긴 지는 꽉 찬 3개월에서 1주일이 빠지는 기간이다.

재 진행 중인 석사과정 공부와 향후 이어서 할 박사과정까지 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환경이고 무엇보다 함께 하는 사람들의 적당한 거리가 좋다. 애써 나를 개방하지 않고 애써 숨기지 않아도 되는 적당한 이해관계 안에서 적당히 온온한 거리. 그리고 그만큼의 온도.


곧 나만의 사무실도 생길 예정이고 나에게는 내 시공간이 너무나 중요한 만큼 기대가 된다.

여전히 울면서 퇴근한 날도 많다. 걷다가 눈물이 주르륵., 때로는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강렬한 통증. 때로는 서럽고 애달픈 마음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순간에.

저 이유 없이 서러워서 그저 아파서 우는 것 같지만 아니 사실은 숱한 이유가 있다.

버림받은 느낌, 아니 버림받았다는 기정사실. 여기서 여전히 허덕이고 있는 모습을 스스로 직면하고 있기 때문에 참 옹골차게 아프다. 하지만 직면할 수 있는 용기, 이만큼이라도 버텨내고 있는 단단함에 또 스스로 감탄을 하기도 한다. 고통이라는 정서 경험이 아무리 주관적인 영역이라 하더라도 이만큼의 고통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고통은 아닐 거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의 생생한 감정에 나는 너무나도 열려있다. 고통의 강도가 올림픽 양궁 수준의 스피드로 내 심장에 수평으로 꽂힐지언정, 피하지 않는다. 오로지 받아들일 뿐이다.


내 문제 이긴 하지만 내게 주어진 혹은 감당해야 하는 사실을 꽤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인 게 한없이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에 자기 객관화 작업도 자주 할 수 있는 환경에 스스로를 담아둔다.

나이 대비 초라한 현재 수입이나 경제력 혹은 자산을 곱씹을 때마다 갑갑함이 올라온다.

사실은 이혼 후로 계속 금전적으로 마이너스 인생으로 살아온 지난 몇 년을 회상하면

서럽기 그지없기도 하고.,,


그러다 또, 부모님 덕으로 얼마큼의 현금, 전세금이라도 쥐고 있으니 그만큼 애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는 또 감사하다. 딸들에게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해주고 싶지만 그게 되지 않는 현실이 마음에 걸릴 뿐이지. 사실 이게 가장 크다. 나는 물욕도 소유욕도 거의 없는 편이라, 누군가에게 무엇을 줄 때, 요리 같은 걸 해줄 때의 기쁨이 참 크다.

20대에 원 없이 여행하고 많은 나라를 경험해 본 덕에 보헤미안적인 삶에 대한 로망은 내게 밋밋한 그림일 뿐이다.


40대 중반을 향할수록 내외적인 안정감, 평안함, 온온함을 꿈꾼다.

글을 쓰는 작업은 분명 어지러운 내 마음과 머리를 씻어내는 정화 작업이고 더 나은 인간으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의 산물이다. 현재의 나에 대한 점검표이자 나아가야 할 방향을 친절히 안내하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나를 어지럽히는 산물을 부지런히 도 치워 나가고 있다.

새해를 맞으면서 쓰던 폰이 깨져버려서 예전 구닥다리 폰에 유심을 끼우고 카톡을 깔지 않았다. 조금 번거롭긴 해도 카톡이 깔린 탭을 들고 다니면서 와이파이 환경에서만 온라인 연결을 허락한다.

내가 살아가는데 크게 도움 되지 않는 남의 사생활이나 트렌드를 여과 없이 흡수하게 되는 인스타그램도 삭제해 버렸다. 그동안 얼마나 시간 낭비를 했던지... 그렇게 쓴 시간이 교통 부과금보다 훨씬 아깝다. 

넷플릭스를 보면서 단순한 쾌락에 의존하던 시간도 함께 삭제했다. 넷플을 지우고 아시안게임 시청을 위해 쿠팡플레이를 잠깐 설치했지만 이 글을 올림과 동시에 지울 예정이다. 최근까지 나는 솔로 프로그램을 보면서 대리 감정을 느끼기도 했지만 사실 아무 소득도 의미도 없다.

역시 글을 쓰다 보니 너무나도 소모적인 일이었다는 자각을 한다.

글쓰기 덕분에..,,,,


그만두고 털어내는 것들이 참 많다. 그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지에도 욕심은 없다.


클래식 음악, 귓전명상, 아침 시간 활용, 출근 후 바로 하는 1분 그림 작업, 고양이에게 더 친절하기, 논문 주제 명료화하기, 선행연구 미친 듯이 읽기,
평일 평균 3.5시간 공부. 주말 5.5시간 공부.
조금 더 걷기. 덜 말하고 더 자주 웃기.


요즘 관심 있는 것들이다. 이 정도면 되겠다.


내가 선택해 온 길들 덕에 고통도 기쁨도 누리는 거라고 그러니 나는 직면할 힘과 배짱이 있는 거라고,

나에게 어울리는 주도적인 사고를 한다.


이 정도면 참, 온온하게 고통스러운. 그럼에도 잘 기능하고 있는 혼자만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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