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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녘 Jul 25. 2019

오늘은 명란 볶음밥

참기름 적당히 묻힌 명란을 조금씩 떼어내서 따뜻한 밥 위에 올려 먹으면 고소하고 짭조름하니 밥도둑이 따로 없다. 처음에는 이렇게 명란을 참기름에 찍어먹을 줄만 알았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던가. 이제는 엄마가 명란을 대여섯 개 담긴 한팩을 사 와도 어떻게 해먹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명란으로 할 수 있는 요리가 생각보다 많았다. 맑은 명란 알탕, 명란 볶음밥, 명란 오일 파스타, 명란 계란찜, 명란 계란말이, 명란 비빔밥, 명란 무침 등. 조금만 넣어도 짭짤하기 때문에 어디에 넣든 간을 굳이 하지 않아도 돼서 손쉽고, 깔끔한 맛이 나는 것 같다. 내가 봤을 땐 참치캔만큼이나 무난하게 뜯어서 넣어먹기 좋은 것 같다.

명란젓을 처음 먹은 적이 언제였을까. 언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였다. 아빠가 명란젓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그때 밥상에서 처음 명란젓을 접하게 되었는데, 일단 생긴 것부터가 내키지 않았다. 분홍색에 표면이 탱탱하고 둥글 길쭉하고 통통한 명란젓. 젓가락으로 살짝 뜯어내려 하면 투명한 껍질이 질겨 여러 번 젓가락질을 해야 했다. 그렇게 뜯어내면 안에는 알들이 빼곡하게 차있었다. 어린아이의 시선에선 징그러워 보였기 때문에 아무리 맛있다고 한들 다시 먹고 싶은 비주얼은 아니었을 것이다. 비주얼 때문이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첫 명란의 맛이 그렇게 맛있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젓갈을 먹을 줄 아는 사람이야 밥 한 숟갈에 어느 정도의 명란이 딱 적당한지 알겠지만, 어린 나는 그 적당함을 찾지 못해서 짜고 비릿한 맛만 본 것 같다. 그때 나는 아마 명란젓의 그 맛이 어른의 맛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십여 년이 흐르고 명란의 맛을 알게 된 나는 명란젓 하나로 삼시 세끼를 먹어도 안 질릴 수 있게 되었다. 아무래도 좋은 재료일수록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되어 오늘은 명란을 넣어 볶음밥을 해 먹었다. 내가 정말 귀찮을 때 최소한의 노력으로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볶음밥이다. 재료도 언제나 냉장고에 들어있는 것들이어서 더 만만하게 할 수 있다. 우선 파를 썰어서 기름 적당히 두른 팬에 넣는다. 볶음밥을 할 때 파 기름은 생각보다 풍미를 더하는데 훨씬 도움이 돼서 꼭 넣어주는데, 파 대신에 마늘을 슬라이스 해서 한번 볶아줘도 맛있다. 파가 금방 익기 때문에 노릇해지기 직전 명란의 알만 칼로 긁어내서 팬에 넣어준다. 알이 구워지면서 살색이 될 텐데, 그 타이밍에 밥을 넣어 같이 볶다가 한쪽 편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다른 편에 공간이 생기면 기름을 살짝 더 둘러서 계란을 깨뜨려준다. 불을 세게 하고 젓가락으로 잽싸게 계란을 휘젓어서 스크램블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스크램블 된 계란을 밥과 함께 합쳐준다. 그리고 간은 이미 명란으로 되어있긴 하지만, 부족하다면 프라이팬 한편에 간장을 살짝 부어 끓여주듯 한 다음 밥과 섞어주면 불향이 나서 더 맛이 있다. 개인적으로 매운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청양고추를 썰어 넣어주면 특별한 간은 더 필요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후추를 뿌려주면 완성! 이렇게 하면 원 팬으로 조리할 수 있어 설거지거리도 나오지 않고, 명란 외에 특별한 재료도 필요치 않아 여러모로 수월하게 한 끼를 할 수 있다.

이렇게 밥을 먹으면서 넷플렉스나 못 본 예능을 보는 편인데, 확실한 건 배가 어느 정도 차서 든든해지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웃고 나면 방금 전까지 우울했던 마음이 훨씬 나아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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