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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latan May 04. 2021

Contemporary Music은..

동시대의 음악에 대하여

해군 군악대에서 편곡병이자 피아노 병으로서 꿈같은 시간들을 보냈다. 윈드 오케스트라 곡들은 현대에 발표되는 곡들 마저도 소위 말하는 ‘현대스러운’ 느낌이 없지만 신선한 작품들이 많았고, 내 업무는 편곡이자 캄보밴드의 피아노 파트 담당이어서 빅밴드 편곡이나 재즈 연주, 가요 연주가 거의 주가 되었다.(트로트를 많이 했지)

23개월, 줄어서 거의 22개월 동안 가요와 재즈 윈드 오케스트라만 접하다 보니 내가 속해있던 대한민국 클래식 작곡계의 지향점을 잊어버렸다. 그런 것 따위는 나중에 고민하면 되겠지 하면서.. 전역을 하고 보니 나중이 지금이 되더라. 하도 20세기 중후반, 21세기의 클래식을 들은 지 오래되어서 마침 흥미가 가기도 했고 이런저런 음악을 들었다. 심지어 학교에서 추천 감상 목록이 나와 그걸 쭉 들어봤다. 2학년은 ‘Anorld Scheonberg - Pierrot Lunarie’나 ‘Edgard Varèse - Inoisation’, ’John Cage - Bacchanale for prepard piano’, ‘Henri Dutilleux - Anisi la nuit’ 등 수많은 음악들을 들었다.


​https://youtu.be/NZzGkrjwgbU

추천 감상목록 중 하나인 ‘Helmut Lachenmann - String Quartet No.3 “Grido”

이미 한 세기를 지나온 비교적 ‘옛날’ 곡들이지만, 이런 곡들은 지나온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클래식 음악계에 Contemporary Music - 동시대의 음악, 소위 현대 음악이라 불리는 - 에 대한 고찰, 말 그대로 음악에 대한 ‘시야’를 넓혀 준다. 4학년의 감상 목록들이 훨씬 더 시야를 넓혀주기는 하지만, 어떤 맥락에서는 시야가 너무 넓어진 탓에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글쎄, 나는 클래식 음악이 비교적 주류로 다뤄지는 유럽 사회에 사는 것도 아니고, 미국 사회에 사는 것도 아니라 전 세계의 클래식 음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겠다. 고작해야 온라인으로 접하는 것이 다니까. 때문에 대학교 작곡과에서 가르치는 새로운 것, 대한민국 작곡계가 말하는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나의 무지함에 복학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작곡가인 ‘Bernhard Lang’의 말을 빌리자면 ‘새로움에 지루해진 청중들’이 느끼는 공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물론 필자가 ‘새로운 음악’들을 다 들어 봤다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이나 아르코 창작 음악제 등의 음악회를 가면 현존하는 대한민국 작곡계의 현주소, 속된 말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 수가 있다. 선생님들께서 작곡하신 음악들은 나 따위는 어디 감히 흉내도 못 낼 만큼 비범하다. 어떤 곡들은 조금이라도 이해를 할 수가 있겠는가 하면 어떤 곡들은 음악에 대한 나의 무지함에 공포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공포를 마주할 만큼 강한 사람이 아닌지라 나의 한심한 무지를 탓하고는 그냥 그런 음악들을 안 듣게 되고 만다. 어떤 의미에서는 흥미가 안 간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절대 그런 작품들이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길 바란다.)

나는 현대의 클래식 음악이 어느 시점을 넘어서인가부터 ‘청중’이 아닌 ‘작곡가’의 숭고한 전유물이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그런 작품들은 음악계에 지대한 발전을 끼치기도 했을 것이다. 틀림없이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음악은 숭고한 것임과 반대로 미천한 것이기도 하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예술은 인간을 넘어설 수 없다.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의 음악이 위대한 이유는 그들이 위대한 작품을 쓰기도 했거니와 수백 년을 넘어 많은 연주자들이 연주하고, 수많은 청중들이 들어준 탓이 적지 않을 것이다. 좋은 작품은 많이 듣게 되는 것이 옳지만, 많이 듣기에 좋은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클래식 공연장을 가보시라. 재즈, 팝, 락, 가요가 발달한 탓도 있겠지만 너무 적은 관객 수에 조용한 음악 감상을 할 수 있어 감사할 지경이다. 그럼 클래식 ‘현대 작품’이 연주되는 연주회장을 가보자. 일반 클래식 공연의 반절도 안 되는 청중 숫자에 작곡 공부하는 사람들이 반 이상이라는 것에 내 손목을 걸겠다.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작곡가가 만드는 음악을 작곡가만 듣는다니, 조선시대 선비들의 현학적인 시 짓기가 생각난다. (지나친 비유임을 인정한다.)

보통 부대당 한 명의 작곡병이 배치되기 때문에 난 부대에서 유일한 작곡과였다. 군악대에서 복무하며 수많은 악기 연주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항상 듣는 말이, ‘왜 작곡과는 이상한 음악만 쓰냐는 것이었다’ 물론 그 말에 전부를 동의할 수는 없다. 음악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시야는 음악을 들음에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의견도 수백 번 옳다. ‘이상한 음악’ 즉 ‘이해가 안 되는 음악 = 듣고 싶지 않은 음악’을 수많은 작곡학도들이 작곡을 하더라는 말이다. 부대의 악기를 다루는 대원들의 출신지와 학교는 다양했는데 이 정도면 거의 작곡가의 개인차가 아니라 하나의 작곡과 현상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학교를 다니면 작곡과는 몇 가지 부류로 나뉘는 듯하다. ‘이해가 안 되는(이해를 어쩌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공부하고 도전하며 알고 안 쓰는 것과 모르고 안 쓰는 것은 다르다는 부류, 애초에 ‘이해가 안 되는 것’을 파악하고 공부해서 이해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부류, ‘난 그냥 조성 음악 쓸래~’하고 뭘 모르는 사람 취급당하는 부류, 아니면 그냥 때려치우는 부류 등... ​


https://youtu.be/1Rj3tPJsYSc

Olovier Messiaen의 마지막 제자로 알려진 중국의 저명한 작곡가 Qigang Chen의 La joio de la souffrance

분명히 Contemporary Composer 인 Qigang Chen은 한국에서 지금은 없어진 ‘아르스 노바’와 ‘통영 국제음악제’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통하는 ‘현대음악’ 작곡가다. 곡을 들으면 알겠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가 들어도 ‘이상하다’라고 하진 않을 것 같다.(앞서 말한 ‘이상하다’의 맥락에서 말이다) 그렇다고 이 음악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음악은 아니다. 분명 현대적인 감성으로 풀어낸 현대의 곡이다. 20세기와 그 이전으로 이런 음악은 없었다.

얼마 전 나보다 프로코피에프를 먼저 즐겨 들었을 정도로 클래식을 좋아하는 친한 동생에게 그런 질문을 들었다. ‘형은 클래식 음악 작곡을 전공하시잖아요. 근데 왜 요즘은 클래식 음악이 작곡이 안 돼요?’ 그 말을 듣고는 나는 말문이 막혔다. ‘음.. 아니 클래식 음악은 작곡이 매일 되고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작곡이 되고 주에 몇 번씩은 현대 음악 작품이 발표되지. 요즘은 예전의 음악과는 다른 음악이 작곡이 돼.’ 같은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말할 수 없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다. 어느 작품의 스타일을 매도하고 어떤 스타일을 칭송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어느 작품 발표회를 가더라도 ‘개성 있는’ 뭔가 ‘다른’ 음악을 듣고 싶을 뿐이다. 어디를 가든 대한민국 현대음악 작곡계의 지향점에 방점을 둔 음악이 아닌, 모차르트를 모작했다고 하더라도, 존 윌리엄스 같은 영화음악 풍의 음악을 썼다고 하더라도, 그저 다양한 음악을 지향점으로 둔, 최소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도 즐거이 청중으로 올 수 있는 그런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는 음악계를 원한다. 청중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원한다. 그건 진정한 예술이 아니라고 비난할 테면 하시라, 뭘 모른다고 비난할 테면 실컷 하시라. 그럼에도 분명한 건 클래식 현대 작곡은 비슷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많이 좋아하는 음악가인 라벨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겠다.

음악은 ‘매력적’ 이어야 하고 ‘음악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즉, 음악은 철학이나 형이상학이
될 필요는 없다. 음을 생각하는 철학자가 아니라
음을 정돈하는 장인이 작곡가의 역할이다.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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