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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latan May 04. 2021

클래식 음악의 유산

화성과 대위에 대하여

프랑스 파리의 파리음악원 ‘Conservatoire National Supérieur de Musique(CNSM)’에는 Ecriture 과정이 전공으로 존재한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쓰다’라는 뜻인데 이는 Soprano, Alto, Tenor, Bass 성부를 기본으로, 4성부 작법을 통해 여러 고전적인 작곡가들의 화성적, 대위적 작곡 기법을 모작함으로써 그들의 작곡 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말한다. Ecriture 과정은 그들의 음악을 악보로 분석하는 것 뿐 아니라 소리로 기억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음’으로 학습하여 학습자가 생각치못한 순간에도 감각적으로 몸이 기억할 수 있도록 음악을 ‘체득’하게 하는데, 이는 프랑스의 작곡가들이 어째서 그토록 감각적인 소리와 화성을 다루는데에 익숙한지를 대변해준다.

사실 CNSM뿐 아니라 프랑스의 대부분의 음악원에는 Ecriture과정이 존재한다. 물론 요즘 프랑스에서는 화성과 대위적 틀에 갇혀 작곡을 더 혁신적이지 못하게 한다고 여겨 아예 CNSM의 입학 시험에서도 기본 작법의 비중을 크게 줄였다고 하는데, 그 탓인지 Composition(작곡)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Ecriture 과정을 공부하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화성과 대위를 다루는 것은 여전히 매력적이며 기본적인 음악 소양을 쌓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고, 아직까지 프랑스 인들이 음악을 ‘음’악으로 대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유서깊은 교육 과정이다.

필자는 몇년 전 파리 국립 도서관 페이지에서 1896-1905 동안 파리음악원 원장을 지낸 테오도르 뒤보아 ‘Théodore Dubois’가 직접 해설해놓은 화성법 문제(pour etude l’Harmonie)를 보게 되었는데, 그가 다룬 4성부의 대위적 화성적 기술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작곡 학도들에게 익히 알려져있는 기초 음악 작법 교재 380 BASSES ET CHANTS DONNÉS의 저자 ‘Henri Challan’이 직접 해제한 화성법 문제보다 훨씬 대위적으로 정교했고, 4성부가 전개되는 기술이 매우 조화로웠다. 테오도르 뒤보아의 ‘Symphony française’를 보라. 프랑스인들의 음악적 미학이 그대로 담겨있다. 대위적인 선율과 계류되는 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절묘한 소리. 불협화음과 협화음 사이에서 벌어지는 아름다운 긴장과 이완! 그것은 Maurice Ravel에서 Olivoer Messiaen 까지 이어지는 프랑스의 음악 미학일 것이다.


https://youtu.be/VxnxGXmFShY

Théodore Dubois - Symphonie français in f-minor(1908)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은 작곡중일 때나 아닐 때나 언제나 푸가 작곡을 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Ravel의 곡 쿠프랭의 무덤 (le tombeau de couperin)에는 아예 Fuga까지 있을 정도이니 대위에 대한 그의 사랑과 애정이 얼마나 컸을지를 짐작케 한다. 20세기를 뛰어넘어 아직까지도 적지 않는 영향을 끼치고 있는 화성과 대위의 미학, 21세기로 넘어올 수록 그 고전적인 화성적 대위적 틀은 점점 등외시 되고 있지만 여전히 네 성부의 조화로운 미학은 매력적인 음악적 방법론으로 남아있다.

고전시대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 현악 4중주의 편성은 Violin1, Violin2, Viola, Cello의 각 악기들이 서로 ‘대화’하며 ‘노래’하는 것으로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사랑받는 실내악 편성이다. 또한 그 노래는 화성학과 대위법에서 다루어지는 4성부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준다. Bach부터 시작해 18세기를 지나 19-20세기, 21세기 까지 남아있는 화성과 대위의 미학. Beethoven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Grosse Fuga’, Gabriel Fauré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작곡한 현악 4중주인 ‘String Quartet in e minor’ 모두 극한의 대위와 화성을 다룬 음악으로, 비화성음과 화성음, 계류되는 음들의 조화로 이루어진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이다.


https://youtu.be/HYHSPAgxs4I

Gabriel Fauré - Messe Basse

요즘 대부분의 대한민국 음악대학 작곡과에서는 점점 더 화성과 대위의 기술을 익히는 것을 지양하는 추세이다. 수업을 없애야 하면 제일 먼저 없어지는 과목이 대위법이고, 학기 수를 줄일 수 있을만큼 줄이거나 이름을 바꾸어 20세기 음악을 함께 가르치는 것이 화성법이다. 물론 20세기에서 Dominant에서 Tonic으로 이루어지는 옛 조성음악은 죽었다. 21세기로 넘어올수록 옛 음악 작법보다 새로운 방법으로 작곡하기를 원하는 분위기가 다분하며, 조성음악을 다루는 것은 현대음악을 작곡하는 데에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닌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음악을 처음 시작할 적에 바흐와 베토벤의 음악으로 화성과 대위를 배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대위에서 출발해 화성으로 이루어지는 클래식 음악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며, 재즈, 팝, 대중음악 어디서도 엿볼수 없는 정제된 성부, 선율의 미학이 깃든 유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르간 반주에서 이루어지는 각 성부들의 조화로운 선율선을 보라. 각 선율이 욕심없이 양보하며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세계최초로 설립된 유서깊은 음악원인 CNSM에 아직까지 Ecriture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릇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려면 대위와 화성의 기초 교양을 탄탄히 쌓아 기성 작곡가들의 음악 작법을 꼭 익혀야 하기 때문에? 아니다. 내 생각엔 그저 화성과 대위를 다루는 것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것에 발판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규 교육과정이기 때문이 아닌 그저 ‘듣기에 좋아서’ 공부를 하던 것이, 함께 공부하면 더 좋을 것 같아서, 함께 듣기 좋은 음악을 탐구하는 것이 즐거울 것 같아서 만들어 진 과정일 것이다.

음악을 만드는 방법에 정도(正道)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있다. 따라서 다양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모작하며 화성과 대위를 공부하는 것이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아닌 것임은 아주 당연하다. 하지만 필자가 이토록 Henri Challan의 화성법 문제를 풀어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엔 그저 기초를 탄탄히 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던 4성부 놀이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 작법이 클래식 음악의 뿌리깊은 유산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각각의 선율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해결되는 이 과정이 마치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때때로 다툼과 갈등이 있을 지라도 결국 조화를 이루며 화음을 만들어가는 것. 너무나도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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