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나라 프랑스에 대하여
낭만, 자유, 예술가들의 도시, 패션, 미식 등등.. 프랑스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단어들. 낭만적이고 아름다우며 또한 우아한 문화적 자산을 가진 나라, 프랑스. 빼어난 예술가들의 도시 프랑스. 패션과 미식의 나라 프랑스. 그러나 프랑스를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쁘긴 한데.. 생각보다 지저분하고, 사람들도 친절하지 않고 자기 잘난 맛에 살더라~, 프랑스는 그리 낭만적인 나라가 아니야’라고 이야기한다. 내 생각에 그건.. 완전 엉터리이다. 프랑스에는 ‘그들이 생각하는 낭만’은 없다. 그러나 프랑스에는 편안하고 느린, 혼돈스럽지만 우아한 ‘프랑스의 낭만’이 있다. 그 낭만은 결단코 한국이나 미국이 말하는 ‘편리함’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프랑스는 빛과 어둠을 모두 품고 있는 추하지만 아름다운 나라다. 프랑스혁명을 보라. 로베르 피에르가 타락한 왕정을 타도하기 위해 빛의 혁명을 주도했지만, 장 폴 마라가 부르짖은 ‘피의 혁명’으로 일순간 공포정치로 변모했다. 자유를 위해 뭉쳤지만,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순간 반역자가 되어 혁명의 처분 대상으로 취급, 즉시 기로틴으로 끌려가 머리가 몸 밖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애초에 파리의 국민들이 원한 것은 혁명도 아니었고, 그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왕정의 관심이었지만,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분노는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켰다. 그들의 분노와 혁명, 광기 등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부패한 왕정을 타도하게 되었고, 그 영향은 유럽 사회에 지대한 파급력을 일으켜 현재의 자유주의 사회가 되었다. 틀림없이 프랑스 대혁명은 혼돈이자 광기였지만 그 혼돈이 바로 오늘날의 아름다움의 근원이 되지 않았는가.
프랑스는 관용의 나라다. 이민자가 많았던 탓도 크겠지만, 애초에 뿔뿔이 흩어져 자기들끼리 독자적인 문화를 일구며 살아갔던 켈트족(갈리아인)이 문화적 뿌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들은 갈리아의 후손답게 다른 문화를 딱히 억압하려 들지 않는다. 예로부터 프랑스 파리는 예술가들의 도시였다. 그럼 어째서 혁신을 일으킨 수많은 예술가들은 프랑스 파리에 머물렀는가. 아마 프랑스 파리는 어떤 예술가들에게도 적어도 문화적인 핍박을 가하지 않았던 이유가 가장 컸으리라. 실제로 동성결혼을 가장 먼저 합법화한 나라가 프랑스다. 마치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어떤 실패라도, 어떤 취향이라도 긍정받을 수 있는 문화적 탄탄함이 구성된 곳이라면 혁신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곳 프랑스를 유토피아라 여기진 마시길.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긍정하고 인정해주는 곳은 이 세상 밖에 있을 테니까.
프랑스는 느린 나라다. 유럽이 대체로 느린 템포로 사는 나라들이긴 하지만 프랑스는 특히 느리다. 프랑스 인들의 평소 식사 시간을 보라. 2시간? 평균 식사시간 30분 내외인 우리나라가 보기에는 턱없이 많은 시간이다. 그렇다고 식사 시간이랑 성격만 느린가? 아니다. 문화도 느리다. 프랑스는 꾸준히 고전을 공부하고 또 그것을 중요시하는 나라이다. 그들은 과거의 유산들 에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제시된다고 믿는다. 수많은 혁신가들은 고전이 되었고, 그 고전은 프랑스에 굳은 문화적 자산으로 남아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어쩜 그렇게 수많은 예술가들이 프랑스에서 혁신을 일으켰을까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어렴풋이 드뷔시의 선율이 들려온다. 새로움은 과거로부터 온다. 고전 없는 혁신이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수많은 혁신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고전, 그리고 혁신을 인정할 수 있는 관용.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진 아이러니한 나라가 바로 프랑스이다. 고전과 혁신이 공존하는 혼돈의 나라 프랑스. 아름답지 않은가.
프랑스는 성공을 장려하지 않는 나라다. 어감이 이상할 수 있으나, 이 말은 사회적으로 ‘성공’하라고 부추기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사는 문화를 가진 나라라는 뜻이다. 프랑스는 교육 평준화를 이루기 위해 수많은 대학들을 파리 1, 2. 3 대학 등으로 변경했지만 사실 프랑스는 우리나라보다 더 어려운 대입 제도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 최고의 고등 교육기관인 그랑제꼴에 들어가려면 아주 어릴 적부터 ‘프레빠’에 들어간 다음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그랑제꼴에 들어간 약 2%의 학생들 만이 사회적 성공의 길이 열리게 되고, 그 기관을 졸업한 이들 중에 프랑스의 유명인사들이 많다. 우리나라만큼, 아니 그 이상의 치열한 교육열을 뚫고 좋은 대학에 입학했으면 마땅히 사회적으로 부러운 시선을 받아야 함이 응당할 터인데 프랑스는 아이러니하게도 딱히 그렇지 않다.
조승연 작가의 ‘시크하다’(조승연 작가가 프랑스에서 유학하면서 겪은 프랑스의 문화에 대해 쓴 에세이/와이즈베리/2018년)라는 책에는 그랑제꼴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인식이 나오는데, 그 관점이 아주 신선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20명이 넘는 조승연 작가의 친구들 중에는 그랑제꼴에 입학한 이후의 삶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것이 치기 어린 질투의 다른 표현인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을 좋아한다. 성공에 목이 마를수록 개인의 시간을 줄여야 함은 필연적이기에, 프랑스의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는 문화에서는 그것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바쁘게 사는 것’을 장려하고 좋게 여기는 우리나라와 너무 대비되지 않는가? 심지어 이 책에서는 그랑제꼴을 졸업한 사람도 자신의 삶을 가여워한다. 이미 여기까지 왔으니 어쩔 수 없는 일”C’est la vie~(이게 인생이야)”하면서. 성공을 장려하지 않는다는 게 적절한 어휘 일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프랑스의 문화는 프랑스 인들이 자신들의 삶을 중요시하게 여기게 만들고, 타인의 눈을 무심할 정도로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프랑스 문화의 큰 자산이다.
프랑스의 국기에 담긴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 그것은 프랑스의 문화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나는 프랑스가 낭만적이고 우아한 나라라는 것에 깊이 동의한다. 그것은 19세기 이전의 건물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파리 시가지의 모습에서 느끼는 고풍스러운 아름다움도 아니고, 매일 밤마다 에펠탑에서 뿜어 나오는 화려한 조명의 아름다움도 아니고, 예술의 도시답게 패셔너블하고 우아한 멋을 지닌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아름다움도 아니다. 다만, 외면적인 아름다움 이전에 탄탄한 문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면적 아름다움. 문화 깊이 뿌리 박힌, 포장하지 않아도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 그것이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