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nnapOTZ2DrY
Pauline Oliveros 의 Sound Patterns은 인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소리의 형태들을 이리저리 구성해서 음악을 만들어 놓은 음악이다. 이 곡은 일반적인 합창곡, 인성 곡이라 했을 때에 떠오르는 서정적인 선율과 아름다운 대위와 화성의 조화 따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분명 어떤 ‘음’들은 존재하고, 음악적인 맥락도 존재하지만, 이 음악에서 주되게 사용되는 ‘소리’들에 주목해 본다면 오히려 음악회의 무대 아래에서 일어나는 청중들의 소음, 카페에서 가만히 앉아 커피를 마시면 자연스레 들리는 사람들의 소음과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20세기 초-중반 세계 대전의 여파로 세계는 크게 뒤집어졌고, 더 이상 반음계적 화성의 끝을 달리는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음악’은 현실세계를 외면하는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Pierre Schaeffer가 Musique Concrete를 통해 새로운 음악에 문을 열고, 20세기 유럽의 현대음악계는 크게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여태 음악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던 소음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음악적 맥락을 섞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당시 블루스의 단순하지만 신나는 음악이 청중들의 귀를 사로잡은 반면, 클래식 음악계는 점점 소음의 미학 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https://youtu.be/LcCs6Muljmk
Musique Concrete(구체 음악)의 핵심적인 작곡가인 Stockhausen이 전자음악을 통해 인성을 다룬 방법을 보라
Stockhausen의 Musique Concrete는 유럽에서 새로운 소리를 통해 화성과 대위에서 벗어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자 했으며, 그 과정에서 인성을 비틀고 교묘하게 짜깁기해 만들어낸 인성의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소리, 극도로 정확한 소리들을 음악으로 만들어냈다. 또 그런 음악에 영향을 받은 Luciano Berio의 인성 음악은 전자 음악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소리들을 실제 어쿠스틱 사운드로 모방하고자 했으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새로운 연주 기법, 인성 음악에서 한 번도 등장한 적 없었던 괴상망측하게 여겨지기도 하는 소리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Luciano Berio의 Sequenza 같은 곡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전자음악에서 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소리들, 인성을 비틀고 교묘하게 조절해서 만들어 놓은 소리들을 어쿠스틱 사운드로 재현해놓은 음악은 상당히 색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Helmut Lachenmann이 자신이 Concrete Instrumental 작곡가라고 주장했던 것을 보면, Concrete musique에서 파생되어온 여러 가지 유럽의 전위적인 음악들이 무엇을 모방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모방의 시도들은 현대에도 여전히 난해하게 여겨지기는 하지만, 음악의 ‘새로운 조합 가능성’에 큰길을 열어주게 되었다.
https://youtu.be/DGovCafPQAE
Pauline Oliveros의 Sound Patterns은 1961년 작품이다. 나는 이 음악을 들으면서 Caroline Shaw의 Partita for 8 voices가 생각났다. Caroline Shaw의 음악도 합창음악 치고는 상당히 전위적인 작품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만, Pauline Oliveros의 음악만큼은 아니다. 음악이 꼭 대중적일 필요는 없지만, 대중적으로 음악을 만드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본다. Caroline Shaw는 Pauline Oliveros의 음악이 남긴, 더 거슬러 올라가 Luciano Berio가 남긴 음악적 유산들을 토대로 더욱 일반적인 청중들이 ‘들을만한’ 음악을 만들어냈고, 이 음악은 어렵지만 연주자들이 좋아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미국의 유명한 합창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Eric Whiatcre의 Cloudburst를 보라. 이 음악에서 등장하는 인성을 다루는 방법론 또한, Luciano Berio 같은 전위적인 음악을 하는 작곡가들이 없었다면 결코 이렇게 새로운 소리를 창조하여 널리 들려지는 음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https://youtu.be/ab4zTQEsnBk
2013 퓰리쳐 상(Pulitzer Prize) 수상작
음악이 언제나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나 분명히 음악은 들어주는 청중이 존재할 때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음악적인 의도와 맥락은 존재하지만 거의 소음에 가까운 이 음악은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오스트리아 빈 국립 음악원에 재학 중인 친구가 학교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나름의 해답은 이런 것이었다. ‘유럽 사람들에게 클래식 음악은 국악 같은 것이다.’ 즉, 한국에서도 국악은 보존하는 것 또한 굉장히 중요하지만 발전시키는 것도 상당히 많이 중요하게 여겨지듯이, 유럽에서 클래식 음악 또한 보존과 동시에 새로운 소리를 찾는 것 자체가 상당히 중요하고, 그것은 오히려 청중 친화적인,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려는 순간 본질을 흐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 전위적인 음악을 통해 새로운 소리를 탐구하는 것은, 어쩌면 수학자들이 수학을 탐구하는 것과 유사할 수 있다고 본다. 수학자들이 여태 풀지 못한 방정식 풀이를 하면 그것을 통해 새로운 과학적 발전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우리에게 편리한 도구가 되어 삶의 질을 발전시키는 것처럼, 새로운 소리의 탐구는 Psycho의 Ost에 쓰인 특수 주법처럼, 전자음악이 Edm에 영향을 준 것처럼, 언젠가 대중들에게 새롭고 흥미로운 음악이 되어 음악의 질을 발전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