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의 나는 맛있는 음식을 평가할 수 있는 혀와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이라면 세상 끝까지 갈 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있었지만 맛있는 걸 살 수 있는 돈은 늘 부족했기에 어머니를 졸라 간식을 살 용돈을 받곤 했다. 하지만 그 용돈이라는 것도 얼마 되지 않는 것이라 그 돈으로 슈퍼에 가서 자신 있게 과자를 산다면 금세 강제로 금욕의 시간의 시간이 될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머리를 굴려 가장 저렴하게 행복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어떤 현명한 사람이 말하길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 하지 않았던가. 적은 용돈을 효과적을 사용하는 방법은 더 저렴한 것을 자주 사 먹는 방법이었고, 그렇기에 문구점 앞에 진열되어 있는 그 작은 과자들은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었다. 이유는 잘 몰랐지만 우리는 그런 과자를 불량식품이라고 불렀다. 몸에 좋지 않은 것이니 자주 먹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 하고 막연히 상상할 뿐이지만 나에게 대안은 없었다. 딱딱하지만 오래 먹을 수 있는 밭두렁, 커다란 캔디가 네 개나 들어있는 네거리캔디, 아직도 이름을 잘 모르는 동그란 캔디, 그리고 꾀돌이 등등 내 어린 시절은 그런 온갖 불량식품으로 가득하다.
그 불량식품을 먹던 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요새 내 아들은 젤리에 꽂혀있다. 다이소에 가면 한가득 걸려있는 그 젤리는 굳이 아들 눈이 아니라 내 눈까지도 충분히 사로잡을만하다.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알기에 사주지 않으려 하지만 어쩌다 한 번씩 젤리를 사주는 날은 젤리 한 봉지에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는 아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 기쁨 가득한 얼굴을 보노라면 아들에게 젤리를 사주는 게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를 고민하는 나를 발견한다. 문득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 녀석이 뻔히 불량 식품을 사 먹을 걸 알면서도 용돈을 주셨을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