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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 Nov 14. 2021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얼마 전, 외장하드에서 나에게 쓴 편지 같은 것을 발견했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제목을 쓰다 말았나? 괜히 찜찜한 마음으로 파일을 열어봤다.



나는 항상 과거의 나보다 더 발전된 나를 꿈꾼다.

아마 모든 사람이 그렇듯 미래에 나는 더 잘 될거야. 나중에 크면 나는 더 멋진 사람이 될거야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씩 과거의 나에게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어릴 적 내가 쓴 오글거리지만 깊이있는 글귀를 발견했을 때, 학창시절에 받은 우수한 성적표를 보았을 때, 각종 대회에서 쓸어모은 상장 꾸러미들을 책장에서 꺼내어볼때 특히 그런 기분이 든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내가 예전에 쓴 글을 읽고 충격을 받은 날에 해당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역시 과거에 충격을 받고 쓴 과거의 글을 읽고 또 충격을 받았다.)

과거의 나는 늘 나와의 약속을 정하고, 나에게 다짐하고, 의지를 다잡고, 용기를 건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나보다 과거의 내가 훨씬 더 나를 챙길 줄 아는 사람이었고, 내면을 가꾸는 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겉치장에 전혀 욕심이 없었던 만큼 내면에 온 정신을 기울였던 것 같다.

과거의 나는 그렇게 내가 어떻게 하면 단단해질 수 있는지, 속이 알찬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하고 노력하며 실천한 여력이 분명히 보인다. 노래실력과 글쓰기 실력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며, 많은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식 역시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고, 삶에 대한 고민 또한 갑자기 하게 된 것이 아니다. 모두 어제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 현재의 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어떤 감정과 생각이 들면 글로 풀어내는 습관 덕에 나는 과거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 내면이 어떠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심지어 누군가와 싸웠을 때 그 감정이 글에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나의 과거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몹시 놀랐고, 그 글을 읽으면서도 정말 내가 만든 문장과 내가 했던 생각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이렇게 살아온 사람인데 지금의 나는 왜 이 모양이 되었는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아 정말 나는 어릴 적부터 열심히 살아오려고 노력했구나 하는 뿌듯함이 들기도 하면서 지금도 예전처럼 열심히 살아야 겠다 아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이 든다.

이렇게 갑자기 나의 감정을 자제하는 데 있어 혼란이 왔던 오늘 밤. 이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것도 아마 어떤 깨달음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내일은 이제 속상한 마음 모두 잊고 나를 토닥여주며 긍정적으로 웃음 지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나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현재도 그렇게 나를 발전시키려 노력하고 있고 미래에는 더 아름다고 발전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을 기대해본다.                                                                      

(2020년, 1월 31일, 임용공부를 막 시작한 추운 겨울날)



이 당시, 나는 임용공부를 막 시작해 스스로에게 실망이 많았던 것 같다. 갑자기 안 하던 공부를 하려니까 머리에 과부하가 왔겠지.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이 쌓여 푸념 아닌 푸념을 적어 놓은 것 같다.

지금은 그로부터 약 2년 정도 지났지만, 훨씬 '나'에 대해 이해하고 인정하는 범위가 넓어졌다. 즉, 과거의 나로부터 뒤통수를 맞는 일이 적어졌다는 뜻이다.


이제는, 쓰다 만 제목을 이렇게 고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도 나, 현재도 나>

우리 모두, 한 때는 내가 말이야~ 라는 레파토리로 할 수 있는 말이 가득하다. 소싯적에~로 이야기를 한 번 시작하면 아마 대부분의 어른들이 제 흥에 겨워 이야기를 멈추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과거의 나는 누구보다 화려했고, 멋있었고, 그래서 더 그립고, 씁쓸하고 착잡한 그런 기분이 들 것이다. 이야기 자체는 각색과 미화가 더해져 막 신이 나지만, 이야기를 함과 동시에 느껴지는 괴리감. 우리는 자주, 현재를 과거의 가장 빛났던 순간과 비교하면서 고통스러워한다.


그 때는 아마 인생에서 꽤나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노력했을거고, 또 조력자와 운이 잘 따랐을 것이다. 그런 순간은 살면서도 쉽게 경험하기 힘들고, 막상 그 순간에는 그렇게 값진 순간임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 그땐 그랬지. 하고 회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가장 운이 좋았던 그 시기를, 평범하게 흘러가는 지금의 하루와 비교하며 좌절감을 느낀다. 그때도 나고, 지금도 나인데 말이다. 우리는 '과거의 나'를 마치 다른 사람인 냥 이야기하며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자기 자신임을 부정하는 경우가 있다.  


현재의 내가 그럴듯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 같고, 별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면 그건 현재의 내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의 렌즈는 시시각각 방향이 변한다. 때로는 지극히 우호적으로, 때로는 지극히 부정적으로, 때로는 지극히 희망적으로. 만약 내가 자꾸 과거의 나와 비교하며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타인과 비교하는 방식을 나에게 적용한 것이다. 즉, 마음의 렌즈를 바깥에서 안쪽으로 비춘 것이다. 우리는 '나'를 안에서 감싸주고 따뜻하게 바라봐주어야 하는데, 가끔 이상하리만치 나를 남보다 못한 취급을 해줄 때가 있다.


이렇게 스스로를 '나 자신과의 비교감옥'에 종종 가둬놓는 편이라면, 스스로 탈옥하기를 권유드린다. 좁은 방안에서 끙끙거리며 얻게 되는 교훈도 의미는 있지만, 결국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똑같은 '나'이기 때문에 그만한 정신적 고통을 받을 필요가 없다.


대신 이제부터는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평범한 노력들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아마 예상치 못한 큰 그릇을 빚어내는 날이 올 것이다. 거기에 누군가의 격려, 응원, 행운 등이 더해진다면 인생에 또 하나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나의 빛나는 순간이었음을 아주 나중에 깨닫게 되더라도,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이 커지면 흔히들 말하는 속이 단단한 사람, 자기주관이 뚜렷한 사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아직 그 정도로 옹골찬 '내'가 되진 못했지만,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좁은 식견이지만 과거의 내가 나에게 적은 글 덕분에 깨달았고, 내일의 나 역시 오늘의 나 덕분에 더욱 힘찬 발걸음을 딛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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