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구글 번역도 잘 나오던데.. 일본어 능력시험이 굳이 필요할까요?'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나에게 일본어 능력시험을 강조하시는 대표님의 말에 궁금함이 생겨 사수 분께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았다.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검색 툴에서 이미 기계번역 기능을 제공하고 있고, 의미 전달을 좀 더 매끄럽게 하기 위한 AI번역의 경우에도 점점 보강이 되어가던 터라 단순한 일본어 해석 때문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일본 업체들과 거래를 위한 일인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 또한 확실하지는 않았다.
아무 의미 없는 행동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질문을 던졌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통해 내 업무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들의 개념을 잡을 수 있었다.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리해보자면, 10 ~ 15 페이지 분량의 가장 간단한 보고서에도 사실관계의 비교를 제외하고 순수한 의견을 쓸 수 있는 영역은 많아야 반페이지 뿐, 이 반페이지 분량의 '분석 의견'이 작성자의 전문성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내가 작성하는 보고서는 새로운 발명에 관련된 선행기술의 유무와 그들 간의 결합 가능성에 대한 분석을 다룬다. 이 중 특허 간의 결합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특히나 중요한 개념이 두 기술이 같은 기술분야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일본어는 이 기술분야를 판별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특허기술분야 분류에서 미국과 유럽,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은 정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세세한 기술분류를 가지고 있고 일본어로만 표현되는 기술용어들은 기계번역이나 AI번역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결국, 일본어는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여러 수단 중 하나이며 다른 방법들보다 익히기 쉬운 편에 속하는 일이니 일을 시작한 사람이 가장 하기 쉬운 일이기 때문에 추천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후에도 업무 프로세스를 정리하고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문성을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태도 : 오랜 업무경력이 반드시 실력을 대변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업무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는 실력 향상에 필수적인 요소이며 중복된 일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태도'에는 많은 요소들이 포함되지만 그중 한 가지를 뽑아보자면, '의식적 노력'을 들 수 있다.
단순히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목표지점을 설정하고 결과를 만들어 보는 경험을 쌓았을 때 효과적인 복기를 할 수 있었다. 단순히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빠르게 처리하자고 마음먹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일정한 목표치를 설정하고 실천했을 때, 비로소 기준치를 달성한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2. 지식 : 정말 다양한 기술분야의 새로운 발명을 접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적되는 지식은 있다. 평소 전공과 관련된 기술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던 기술은 업무를 진행하기 훨씬 수월하다. 이 세상 모든 분야에 대해 통달할 수 없지만 내 전문분야에 해당하는 몇 가지 기술들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탐구가 필요하다.
3. 기술 : '검색'에 대한 비중이 굉장히 높은 직업이기 때문에 효과적인 키워드들을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 또한 애써 찾은 기술문헌들이 버려지지 않도록 내가 생각하는 바를 명확하게 기술할 수 있는 표현들을 정리해두어야 한다.
4. 커뮤니케이션 : 일을 하면 할수록 중요하게 생각되는 요소이다. 불필요한 업무들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반드시 필요하다. 조사범위를 확정하는 일, 조사 결과를 정리하는 일,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일 모두 내 의사 표현이 명확하지 않으면 한번 할 일이 두 번 세 번으로 늘어난다. 일적인 커뮤니케이션 일 외적인 커뮤니케이션 모두 중요함을 깨닫고 있다.
5. 매니징 : 발명에 대한 분석 이외에도 업무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룹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업무 프로세스를 간소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회사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이 분야의 힘을 굉장히 크게 느끼고 있다.
6. 언어능력 : 지식과 기술,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능력과 부분적으로 중첩되지만 독립적으로 다룰 만큼 중요한 요소이다. 내 전문분야에서 가장 강력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국가의 언어는 배워둘 가치가 충분하다.
드라이퍼스 모델에 비추어 살펴보자면, 현재의 내 전문성의 레벨은 한두 가지의 영역을 제외하고는 '고급 입문자' 단계에 머물러 있다. '지식' 분야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과 매니징의 영역 역시 기본적인 틀은 알고 있지만 변칙적인 사례들에 완벽하게 적응하진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내 업무를 구성하고 있는 전문성을 드러낼 수 있는 영역들을 발견하고 각각의 영역을 발전시키기 위해 '의식적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수험서만 붙들고 있던 지난 세월이 너무나 아까워 하루빨리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어디를 향해 힘을 쏟아야 하는지 몰라 허탈하게 시간을 보내던 때는 이제 끝났으니, 명확한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려 나가려 한다. 일 년 뒤의 내 모습은 얼마나 발전해 있을까? 기대에 찬 하루를 보내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