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의 일이었다. 어떤 사람이 나의 사정을 모른 채, 무조건 나의 잘못이라며 나무랐다. 그 사람은 도대체 나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길래 무조건 내 잘못이라 단정 지었던 걸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4년 전, 어느 회사에서 사무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때 밀린 업무 때문에 잠깐 다른 팀에서 몇 주 간 일을 했었다. 나는 출근 시간이 9시 30분이면 항상 9시 전에 도착해서 업무를 준비하곤 했다. 컴퓨터를 켜서 메일을 확인하고, 양치질을 하고, 이래저래 주위를 손 보면서, 가장 일찍 왔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을 시작했다. 자주 지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을 한심하게 바라봤다. 나이도 많아 보였는데 매일 지각이라니, 불성실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 나는 일주일 뒤쯤 담당자와 그분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는데, 그분들은 두 시간 거리에서 통근을 한다고 했다. 6시 전에 일어나 준비하고 7시 20분쯤 출발한다고 한다. 한 번 버스나 지하철을 놓치면 시간이 꽤 많이 지연된다고 한다. 나는 그제야 그분들이 왜 지각을 자주 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사람들을 ‘불성실하기 짝이 없는 사람’으로 규정해버렸다.
어제,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떤 중년의 아주머니 두 분이 음식도 쩝쩝거리며 시끄럽게 먹고, 스마트폰으로 영상 통화를 하는지, 되게 시끄러운 소음이 계속되었다. 나는 속으로 ‘아무리 카페가 이야기하는 곳이지만 저 정도 소음은 너무 하지 않나.’ 신경이 쓰였다. 집중을 하다 보니 잘 들리진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주기적으로 기괴한 웃음소리도 들렸다. 스마트폰도 벨소리가 아주 크게 울리고, 시끄러웠다. 이제 집중력의 한계다 싶어서 그 교양 없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내가 참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분들은 손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분들의 스마트폰 소리, 영상 통화, 쩝쩝거리는 소리, 기괴한 웃음소리가 다 이해가 되었다. 그분들은 농인이었다. 너무나도 즐겁게 손으로 대화를 하는 그분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참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들을 ‘교양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나이를 먹으면 지금 가지고 있는 신념, 상식, 정의를 가진 채 좋은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의 상식과 정의를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정작 남들이 날 이해하지 못할 때 꼰대라며 욕하고, 내가 남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저 사람들의 문제라 합리화했다. 누군가의 사정을 모른 채 함부로 단정 짓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걸 다시 한번 반성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