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 텐동
나는 밥순이다. 빵보다 밥이 좋다. 하루 한 끼는 쌀을 먹어야 기운이 난다. 국수, 파스타, 분식으로 끼니를 해결한 날은 배가 불러도 왠지 허전하다. 저녁에 집에서 치킨을 먹는다면. 살짝 밥 한 덩이를 곁들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의 취향에 찬성표를 얻은 건 일본에 머물던 시절이었다.
거주지 등록을 위해 들린 시청의 게시판에서 또박또박 한글로 쓴 메모를 읽었다. <저는 재일교포, 김창자입니다. 저와 언어 교환하실 분 없을까요?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요.> 하단에 적힌 그녀의 번호로 메시지를 보내면서 우리의 인연이 시작됐다. 일본어 이름은 마사코, 하지만 한국식으로 창자라고 불러주길 바랐다. 재일교포 2세인 창자는 대학교 때 일 년간 이화여대 어학당을 다녔다고 했다. 나의 일본어 실력보다 그녀의 한국어는 월등히 뛰어났다. 우리는 매주 한 번씩 만나 한 시간은 일본어로, 한 시간은 한국어로 천천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의 양념치킨 맛있어.”
“난 후라이드가 더 좋은데. 떡볶이도 좋아해?”
“응! 튀김을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거 좋아.”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을 그리워하는 그녀를 위해 셰어하우스에서 종종 요리를 했다. 오오쿠보의 한인마트에서 떡볶이 떡을 사서 고추장과 어묵을 듬뿍 넣었다. 떡볶이를 먹으며 조심스레 그녀에게 고백했다. 사실 나는 떡볶이보다 남은 양념에 볶아 먹는 밥을 더 좋아해. 나는 밥순이야. 후라이드 치킨이랑 밥이랑 먹으면 정말 맛있어.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은밀한 취향이었다.
“불가사리, 너 텐동 먹어봤어?”
“가츠동 같은 거야?”
어느 날, 셰어하우스 1층 부엌에서 차를 마시던 우리는 바로 밖으로 나왔다. 4월의 봄이었다. 어두워진 밤거리에 하얀 벚꽃 잎이 흩날렸다. 앞장서는 그녀의 뒤를 따라 체인점 <텐동텐야>에 갔다. ‘매월 18일, 오늘은 텐야의 날’이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펄럭였다. 기존의 텐동을 할인하여 390엔의 상큐(땡큐 thank you의 일본어식 발음) 텐동을 주문했다. 고슬 고슬 지어진 하얀 쌀밥 위에 새우, 연근, 호박, 오크라 튀김을 얹고 특제 소스를 뿌렸다. 젓가락으로 밥과 튀김을 함께 입에 넣었다. 튀김만 먹었다면 느끼하다는 신호를 감지했을 나의 위에 하얀 쌀밥이 들어가 감싸준다. 창자가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오이시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완벽한 일본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