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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rry NoNo Feb 29. 2020

"소녀"와 취향 그리고 미감의 문제

당신의 취향은 포르노의 영역이다.

한국에서 "소녀"라는 단어가 이미지로 보이는 방식은 기괴하다. 주로 뺨이 붉거나 창백하고, 하얗고 뽀얀 팔다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길고 검은(때로는 갈색빛이나 로즈 쿼츠/세리니티 팬톤 컬러의) 머리칼을 흐뜨러트리고 있다.

로타를 필두로 국내에서 여성을 피사체로 삼은 사진들은 점점 더 유아적으로, 점점 더 변태적인 이미지들을 재생산하며 "소녀"라는 단어의 이미지를 하나로 굳혀왔다.

2016년 트위터에서는 그러한 경향에 대해 많은 지적이 있었다. 로타의 닉네임은 로리타의 준말이라고 그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가 있다. 그러나 메이저에서 자리를 굳히기 위해 그는 자신의 로리타 콘셉트 사진을 "소녀"사진이라고 불렀다. 엉덩이를 치켜들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움찔거리며 몽롱한 표정을 한 10-20대 여성의 이미지는 결코 "소녀"가 아니고, "소녀"라는 단어의 거죽을 뒤집어쓴 극동아시아형 핀업걸의 이미지라는 사실을 못 본 채 덮어둔 것이다. 의도되지 않은 노출을 통제하지 못하는 작고 여려 보이는 소녀들의 갈 곳 잃은 시선이 사진에는 그대로 담겨있다. 마치 나는 아직 성에 대해 무지해요 라고 말하는 듯한.


또 다른 논의로는 2016년 여름, 텀블벅과 트위터에서 공개된 프로젝트 "소녀혁명"이 있었다. 소녀혁명은 처음 자신들의 콘셉트에 대해 설명하며 페미니즘적 시선에서 접근한 아이돌 문화에 대해 이야기했던 바가 있었다. 그러나 순서에 맞추어 공개된 이미지들은 트위터+텀블러+인스타그램+페이스북에 범람하는 오타쿠-커뮤 자캐(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창작 세계관 혹은 동인 세계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유저들의 창작 캐릭터;개인적인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남)-소녀 이미지들이었다.
특히 아이돌로 설정된 인물들의 프로필과 세계관 설정은 커뮤 혹은 일본 성인게임의 병동 콘셉트를 떠올리게 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다. 캐릭터마다 각각의 정신병 혹은 트라우마 혹은 성지향/성 정체성에 대한 전환 치료 등이 적혀있었고, 차차 공개된 개인 사진과 콘셉트 사진 또한 창백한 소녀들/정신병/세일러복의 요소를 레이어 없이 그대로 드러내었다. (당시 프로젝트 관련 인물들의 즉각적인 반응이 더욱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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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9월 가인의 앨범 콘셉트 사진이 공개되고 나서 또 한 번의 "소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가인은 일찍이 스모키 메이크업과 가죽옷과 칼 단발머리 등으로 하늘하늘 원피스와 바디컨셔스 타입의 미니스커트에 지친 많은 여성들의 지지를 받았었다. 솔로곡"피어나"에서는 여성의 성적 결정권과 섹스의 즐거움에 대해 노래했었다. 무한한 기대를 등에 업고 컴백한 가인은 머리에 화관을 얹고, 몽롱한 눈빛으로 이가리 메이크업 (2015년 일본을 중심으로 유행한 메이크업으로 국내에서는 숙취 메이크업으로 불리며, 피부는 밝게 표현하는 대신 눈바로 아래에 분홍빛 블러셔를 칠해 술이 취해 얼굴이 붉어진 듯한 얼굴을 만드는 메이크업)을 하고 나타났다. 세부 대비는 무한히 낮추고 명도와 채도는 올린 아날로그 필터의 색감과 함께.

가인의 동그랗고 하얀 얼굴과 작고 긴 눈과 작은 코와 입 위에 뺨을 동글고 크게 붉게 칠하자, 마치 오래된 일본-중국의 아기 인형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무대 위에서 몸 좋은 남자 댄서 들위로 가볍게 춤추며 "나는 지금이 즐겁고 이 상황의 통제권은 내가 가지고 있어"라고 말하는 듯했던 가인의 이전 콘셉트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에 대해 일부는 "소녀가 사실은 가장 능동적이다. 외모는 여리고 무해하지만 속은 누구보다 강할 수 있다"는 식의 반박을 했는데, 이는 사진과 메이크업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의 말이다. 맑은 날 화사한 꽃밭에서 부드러운 인상의 모델을 찍어도, 충분히 강하거나 자신감 있는 성인 여성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당장 패션잡지를 열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웁스 속옷이 보여 버렸네 하고 애교스러운 표정을 짓는 핀업걸의 이미지도, 장미꽃덤불을 배경으로 눈을 감고 하얀 손가락 위로 새빨간 핏자국을 보여주는 검은 머리의 원피스 소녀도, 엉덩이를 치켜들고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팔다리를 늘어뜨린 부르마의 소녀도 누군가에게는 "취향저격"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무언가를 좋아하고 소비한다는 것과 그것의 구린점에 대해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은  뭐를 좋아한다는 것과 그게 구린점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이다.
자신이 소비하는 문화에 구린 부분이 있다면, 수정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구린 부분을 남겨도 소비될 수 있게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 포르노의 영역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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