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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Apr 04. 2024

절친 김범준

2024. 03. 09. 

우리는 주말마다 만난다. 주중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영상통화를 하며 수다를 떤다. 그래도 보고 싶으면 핸드폰에 저장된 그의 사진을 본다. 내가 그에게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나를 보는 즉시 그 얼굴에 미소가 만개하고, 환호성이 터지는 걸 보면 일방향의 우정은 아닌 것 같다. 


범준은 한국인이지만 종종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로운 외계 언어도 구사한다. 메시지를 이해하고 싶어 답답할 때도 있지만, 누구도 해석할 수 없는 언어를 거침없이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모습이 매우 신비롭고 매력적이다. 


공룡은 우리의 친구다. 티라노, 스테고, 브라키오까지는 쉬운데 나는 아직 나머지 공룡들의 이름은 잘 모른다. 그는 매번 안간힘을 쓰며 공룡들의 이름을 알려주지만, 이름들은 길고 그의 발음은 불분명해 나로선 학습이 쉽지 않다.


공룡이 없어도 우리는 즐겁다. 몇 주전 그가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나는 거실의 납작한 의자가 '배'이며 배 밑에 상어와 악어가 있다고 주장했다. 놀랍게도 그는 나의 말을 즉각 믿어주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어서 배에 올라!' '조심해 점프!' 놀이를 했다. 오늘은 견과류 봉지가 보이길래 건포도 개미 기차, 아몬드 기차를 만들어 먹었다. 건포도를 개미라고 주장해도 믿어주는 그의 무한한 신뢰가 내 자신감과 포부, 상상을 자극한다.   


그의 인품은 예측불허다. 지난 주말, 여느 때와 같이 우리는 그의 조부모 집이자 나의 부모님 집에서 만나 놀고 있었다. 소파에 누워 낮잠을 자던 나의 언니가 갑자기 "시끄러워!"라고 외쳤다. 거실은 공동의 장소이므로 잠자고 싶은 사람은 방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논리정연한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범준은 평온한 얼굴로 제안했다. "우리가 저기로 가자" 우리는 공룡들을 우르르 이끌고 옆방으로 옮겼다. 나의 논리정연함을 압도하는 그의 융통성과 너그러움에 나는 크게 감동했다. 하지만 그는 키위를 먹고 싶은데 사과 밖에 없다고 울거나, 놀고 싶은데 잘 시간이 되었다고 역정을 내기도 한다. 그의 인품의 깊이는 아직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정신없이 놀다가 그가 기저귀를 갈 시간이 되면 나는 문득 작은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와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온갖 공룡의 이름들을 외우고 있으며, 너그러운 인품(가끔 아닐 때도 있음)을 가진 절친이 아직 기저귀를 차고, 잠잘 때마다 배가 동그스름하고 다리가 가느라단 오리 또또를 품고 잔다니. 


참으로 놀랍고 알 수 없는 존재 김범준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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