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도 좋아하는 것을 일로하고 싶어 했다. 왜냐면 내가 싫어하는 건 관심도 없으니까. 적어도 하루의 반이상을 보내는 회사에서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건 엔프피에겐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다.
그래서 대학생 때부터 주구장창 난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할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누군가는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는 순간 더이상 좋아하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남들과는 다르고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들을 지금껏 해왔으니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들을 해갈 거야!라고 다짐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고 일로 어떻게 연관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특별하다는 핑크빛 상상들이 여행업을 거치며 와르르 무너졌다. 여행을 가는 이유는 한국에서 느낄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이국적인 공간에서 일상을 벗어나는 그 느낌을 받기 위해서다. 그런데 여행사에서 내가 하던 일은 그저유명 관광지를 점 찍듯이 후다닥 찍고, 시간에게 멱살이 잡혀 끌려다니는 빡빡한 일정으로 구성된 여행 상품을 관리 하는 것이었다. 물론 해외에 나가는 것 자체가 좋은 사람이라면 이런 여행 또한 좋다고 할테지만 나는 이게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인가에 대한 혼란이 있었다. 게다가 남들 여행 가는 것을 보고 있자면 너무 배가 아픈 것도 한몫했다. 이런 것을 깨달았을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여행사 인턴 경험은 현실을 직시하며 마무리되었다.
그 이후로 내가 일한 곳은 지역 문화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 여행 콘텐츠를 기획하는 곳과 한복 문화 체험을 콘텐츠화하는 곳이었다. 단순히 여행 상품을 기계처럼 팔지 않는 곳이라 이 정도면 괜찮아라며 나를 토닥였지만 여행업 특성상 낮은 마진율을 영끌하여 높이기 위해 부끄러운 퀄리티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습에 1차 현타가 오고, 과연 내가 이것을 원했던 것인지 고민을 했다. 회사를 다니며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좋아한다는 것을 일로 하는 건 핑크빛의 아름다운 길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하며, 오히려 좋아했기에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여행을 좋아해 여행업을 선택했지만 사실 내 꿈은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항상 나를 포함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싶었다. 그렇기에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문화를 경험하며 시야를 넓히고 그것이 곧 추억이 되어 일상을 살아가는 힘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한국에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는 한국 문화의 경험을 통해 좋은 추억을 주고 그렇게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지속 가능한 여행을 꿈꿨다. 그렇지만 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서울은 그 어떤 도시보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매일 바뀌는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 경쟁이 일상화된 곳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소위 인기 있는 여행지는 점점 괴물처럼 파괴되어 가는 것을 보며 나의 말도 안 되는 생각은 빨리빨리와 함께 호다닥 사라진 채 영혼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일이 진짜 내가 원하는 걸까? 여행을 좋아하는 거지 여행하는 일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상태로 다른 곳에 이직을 해도 뫼비우스 띠 같이 똑같은 상황을 만나고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이번생은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망하면 내 인생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각종 커리어와 삶에 대한 워크숍 들으며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모든 워크숍이 그러하듯 내 안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야 하기에 당장 뚜렷한 답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제일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지?
대학생 때가 제일 행복했었는데 그때 왜 행복했지?
그렇게 시작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세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고 싶다였다. 이건 우연일까? 인스타그램에 "내 인 가장 찬란한 1년 코이카 해외봉사단" 광고가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란 별 기대 없이 모집 공모를 봤는데 관광직종이 있었다! 심지어 르완다에서는 내가 그토록 하고 싶어 했던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 문화 관광 프로젝트가 가능한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내 버킷 리스트에 있었던 [해외에서 일해보기], [아프리카에 살아보기]가 가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익, 매출, 마진에 질렸던 내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남을 위해 살아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이 뫼비우스 띠 같은 상황도 도피할 수 있었다! 무엇을 고민하겠는가. 앞, 뒤 생각하지 않고 결심했다. 떠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