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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za Dec 28. 2023

외국인과 일은 처음 해봅니다만


OJT(on-the-job training)
임지에 정식 파견되기 전 일할 기관과 지역에 방문하여 업무 조율과 현지 지역을 파악하는 기간. 주로 현지 기관 직원 또는 기관장의 집에서 머물며 10일간의 생활. 10일간 해야 할 일은 업무 조율과 앞으로 살아갈 집을 알아보는 것!!


코이카 단원이라면 현지 교육기간 중 앞으로 1년간 일할 임지에 방문하여 OJT 기간을 가진다. 나라마다 OJT 기간은 다르지만 르완다에서는 10일이었다. 수도 키갈리에서 부족함 없이 행복하고 천국 같은 생활을 하다가 냔자에 딱 도착했을 때 느꼈던 것은 '이곳이 진짜 아프리카다'였다.


와이파이 안 되는 건 애교이고,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나오는 건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고, 베드버그는 죽여야 하는 벌레가 아닌 동침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문이나 대문이 없는 집들도 있는데 나의 미션은 창문과 대문이 모두 있는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생황에서 10일의 OJT 기간 중 일할 기관에 방문하여 기관장, 코워커와 업무 협의를 해야 하고 앞으로 살아갈 집을 구해야 했다.



냔자 행정업무의 중심지, Nyanza District Office


심심해서 그려본 냔자 군청: )


봉사단원을 파견할 때 기관에 수요 조사를 하지만 1년간 머물며 느낀 바로는 수요 조사가 그렇게 세세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알고 있던 업무와 실제 업무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수요 조사 당시엔 그 업무가 필요했을지도 모르지만 봉사단원을 뽑고 파견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그 사이 해당 업무가 필요 없어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은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할 기관과 의논하며 어떤 부분이 필요하고 어떤 업무를 할 수 있는지 근무 시간은 어떻게 할지 조율이 필요하다.


나는 Nyanza district office(냔자 군청)에 파견되었다. 평생 인복이 몰빵 되었나 싶을 정도로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정말 친절하고 시장님도 현지 지역 발전을 위해 생각이 많은 분이었다.



냔자는 관광 전담 부서가 없어서 business development부서에 소속되어서 냔자의 문화관광개발을 위해 일했다. 내 코워커는 지역 개발 담당이라 나와 같이 일했고 다른 두 명은 회계 담당자였고 다른 한 명은 무슨 전문가라고 했는데 기억은 안 난다.. 그렇지만 모두 좋았던 동료들!


냔자는 예전 왕이 살았던 궁이 있어서 왕궁의 흔적들이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주같이 전통과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관광 중점지역으로 발전을 원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왔나 보다: ) 관광 전문가는 나뿐이었는데 코워커가 지역 커뮤니티를 관리하고 있어서 함께 파트너로 같이 일을 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항상 신경 써주면서 해주고 본인 일이 아닌데도 챙겨주는 것이 진짜 감동이었다. 르완다 아니,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사람이란 걸 나중에 파견된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방인으로 현지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데 같이 일하는 코워커가 힘들게 한다면 일이 몇 배로 힘들어진다. 진짜 진짜 중요한 부분이지만 좋은 코워커가 있다는 건 정말 드문 경우다. 같이 파견되었던 선생님들 중 몇몇은 현지 동료들이 코이카 단원들을 무시해서 기관을 변경하는 경우도 있었다.




업무 조율하기

다들 공무원이다 보니 7시부터 5시까지 근무를 한다. 아프리카 특성상 일찍 일을 시작하고 일찍 끝난다. 그렇지만 기본 8시간인 한국 시간에 비해 기본 9시간 근무다. 오마이갓...@.@ 근무 시간을 어떻게 조율해야 할지 몰라서 기관에서 근무하는 시간에 맞췄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9시간 일을 안 하는데 무급으로 9시간 너무 하다 싶어 월-금 하루 6시간씩 근무하기로 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일주일에 2번 나가고 하루에 2~3시간 근무하는데 나는 월-금 출근에 주 30시간을 일해서 르완다에서 활동하는 단원중에서 제일 많이 일하는 단원이 되었다. 역시 일복이 많은 사람은 어디서든 일복이 많나 보다. 사실 하루에 2시간씩 일했으면 마음 불편해서 사무실 나갔을 것 같다. 하하.



10일간 코워커를 따라다니면서 지역에 어떤 장소들이 있고 어떤 업무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코워커한테 어떤 일을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는데 코워커가 관광개발을 위해서 너가 할 수 있는 거면 다 좋다고 한다. 사실 코워커도 관광 전문가가 아니라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소개했던 것 같다. 덕분에 냔자 지역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어떤 프로젝트를 하면 좋을까 계속 생각할 수 있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뭘 할지 떠오르지도 않고 막막했는데 계속 현지인들을 만나면서 생각하다 보니 한두 개씩 할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코워커한테 제안도 "이런 거 해볼까? 어때?"라고 물으면 OK맨처럼 다 좋다고 한다.


OJT기간과 키갈리에 돌아와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A4용지 빼곡히 채워봤다. 내가 지금까지 해오고 할 수 있는 일들, 이 지역에 필요한 일들,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을 A4 용지 양쪽 가득히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이렇게 작성해 보니 무엇을 해야 할지 대략 감이 왔다.  




집 구하기

업무 조율 외에 OJT 기간 동안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내가 살집을 구하는 것이다. 이때 집을 구하지 못하면 현지 적응 교육을 받으면서 키갈리와 냔자를 오가며 집을 알아봐야 한다. 한국에서는 교통시설이 잘 되어 있어 2~3시간 거리를 오가는 것이 편하겠지만 르완다에서는 쉽지 않다. 코이카 현지 사무소에서는 OJT기간 동안에만 현지 기관을 통해 머무는 장소를 알아봐 주고 임지로 파견이 되면 그 이후의 모든 생활은 나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OJT 기간은 정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움직여야 한다. 모든 것이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계속 툭툭 튀어나온다. 마치 영화관 매점에서 만드는 팝콘처럼



개인적으로 1년 동안 살 집을 구하는 건 업무 조율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업무 조율이야 사실 기관에 파견되고 나서 다시 하면 되는 건데 집은 다시 계약하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집이 편안해야 마음이 편안하다. 타지에서 이런저런 힘든 일들이 많은데 집에도 편하게 휴식할 수 없다면 진짜 중도 포기하고 돌아갈 정도로 힘들 수 있다. 나도 초반에 베드버그 공격을 당했을 때 정말 돌아갈까 수백 번 생각했었다.


르완다에서 집을 알아보는 방법은 총 3가지다.

1. 중개자를 통해서 수수료를 지불하고 알아보는 방법

2. 지인을 통해 건너 건너 알아보는 방법

3. 괜찮아 보이는 집들 문을 두드리며 빈집 있냐고 물어보는 방법

그중 냔자에서는 1번의 방식은 불가능하고 2번과 3번이 필요한 곳이다.


한국이야 어플 열면 손가락 하나로 모든 집 정보 확인할 수 있는데 르완다 특히 냔자 지역은 직접 문을 두드리면서 빈집이 있는지 알아봐야 했다. 키갈리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중매자가 있어서 수수료를 지불하고 조금 편하게 알아보기도 하는데 냔자는 모든 것이 쉽지 않은 곳이었다. 지인을 통해서 알아보려고 시도했으나 나의 일이 아니면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은 것처럼 현지 지인들도 많은 정보를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같은 동네에 파견되었던 선생님과 직접 문을 두드리며 빈집 있냐고 물어보고 다녔다.


집 그냥 대충 구하면 안 되냐고 생각하지만, 아프리카의 집은 상당히 창의적이다. 창문과 지붕이 모두 달려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창문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냔자 지역을 돌아보며 봤던 몇몇 집은 창틀에 유리 대신 천을 달아 생활하는 곳도 있다. 무엇보다 나는 외국인이라 가만히 있기만 해도 모두의 시선을 받기 때문에 집 앞에 항상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그래서 안전한 집을 찾아야 하고 가능하다면 어떤 이웃인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다행히 우리 이웃은 근처 대학교의 카메룬 학생들이었고 모두 좋은 친구들이었다.


이런 흙집들이 아주 많다.


냔자는 가족 단위로 살기 때문에 혼자 살만한 작은 집이 거의 없다. 혼자 사는데 너무 큰집이면 무서워서 그나마 작은 집에 창문이 잘 달려 있는 집 위주로 둘러봤다. 선택사항이 많지 않아 3개 중에서 선택해야 했는데 그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하나 있었다. 냔자에서 보기 드물게 샤워기도 있고 집주인이 냉장고도 넣어준다고 했다! 냔자에서는 냉장고를 호텔에서만 사용하기 때문에 아주 귀하다. 마당도 있고 집주인이 텃밭에 원하는 채소를 키워도 된다고 했다. (사실 난 채소 키우는 것에 관심은 없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냔자 군청과 거리도 가까워서 걸어서 사무실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되는 것은 조금 외진 곳이었다. 도로 옆에 있는 집이 아니라 도로 옆 샛길로 2~3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밤에는 다니지 않을 거라 괜찮겠지만 혹시 모르는 것이니까. 너무 구석진 곳은 피하라는 코이카 사무소 지침도 있었는데 냔자에는 워낙 집이 없어서 고민이 되었다. 조금 더 집을 둘러보고 나서 결국 고민하던 이 집으로 결정했다. 뷰 하나는 정말 끝내줬다.


집 마당에서 바라본 밭 뷰.  집에 들어오기 위해 저 긴 길을 쭉 내려와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얻은 텅텅 빈 나의 집. 핸드폰을 두 번이나 잃어버려서 사진이 많이 없는 것이 아쉽지만 우리 집을 소개해본다.

텃밭과 마당이 있는 빨간 대문집


미니멀 라이프 추구가 가능한 거실: )
유리가 있는 창문!! 그리고 방범창까지 있어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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