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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코선생 Aug 22. 2019

양성애자가 부르는 슬픈 노래  

안데르센.1 인어공주

주제넘은 사랑을 쫒다 물거품이 돼버린 비련의 주인공.


안데르센을 세계 최고의 작가로 만들어준 효녀.


전 세계 바다 위에 가장 많이 떠있는 조각상.


망해가던 디즈니 프로덕션에 애니메이션 왕좌를 되찾아준 소녀가장.     


동화 해부학 첫 번째 주인공 인어공주를 만나보겠습니다.          




스토리부터 털고 갑시다.     


지난 200여 년 동안 서적, 영화, 연극, 뮤지컬,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브컬처에서 쉼 없이 우려먹어온 사골 셀러 인어공주는 1836년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이게 애들 보라고 만든 작품인가 싶을 정도로 슬프고, 때로는 참혹스러운 이 이야기는 동화가 맞긴 맞습니다만, 안데르센 특유의 감수성과 섬세한 묘사가 버무려지면서 어른들이게 더 인기가 있는 작품이 되어버렸죠.     


본격적인 해부에 들어가기에 앞서 디지털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른이 여러분들을 위해 줄거리부터 살피고 가겠습니다.     


신비한 바닷속 나라 그곳에 인어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체가 생선 지느러미인 이들은 인간과 똑같은 상체를 가지고 있으나 신기하게 아가미 없이도 바닷속에서 잘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신께서 300년이라는 긴 생명을 약속해준 대신 영혼을 주지 않아 인간과 달리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내세가 없습니다. 별 이야기 아닌 듯싶지만 이 대목은 엔딩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으니 꼭 기억해두세요.     


바닷속 나라에도 왕이 있었더랍니다. 왕에게는 6명의 딸이 있었고, 소녀들은 15살이 되면 물 밖 구경을 나갈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첫째 둘째 셋째... 차례로 물 밖 구경을 다녀오고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인 막내딸에게도 기회가 왔습니다. 15살이 되자 민증 대신 세상 구경권을 받아 든 인어공주는 설레는 마음으로 물 밖으로 힘차게 튀어 올랐습니다. 지는 해와 별들을 보며 감격하고 있을 무렵 배 한 척을 발견하게 됩니다. 조명이 휘영 찬란한 배에는 왕자님의 생일파티가 한창이었는데요, 인어공주는 처음 보는 풍경이고 나발이고 왕자에게 꽂혀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한참 멍을 때리고 있을 찰나 느닷없이 어디서 인가 폭풍우가 몰아치더니 삽시간에 배가 두 동강이 나고 말았습니다. 인어공주는 배 쪽으로 쏜살같이 헤엄쳐가 그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던 말 던 내팽개치고 오직 잘생긴 왕자만 구해내죠.      



용궁으로 돌아온 인어공주는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왕자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그럴 만 도하죠. 사춘기의 정점을 달리고 있던 15살 소녀는 고심 끝에 무엇이든 들어준다는 마녀를 찾아갑니다. 인어공주의 고운 목소리가 탐이 났던 마녀는 두 다리를 만들어주는 대가로 목소리를 요구합니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이 딴 여자와 결혼하면 물거품이 돼 버린다는 무시무시한 조건도 붙었습니다. 그러나 무서움을 모르는 15살 중2병 소녀는 별일 아닌 양 거래를 승낙해버립니다. 마녀에게 물약을 받아 든 인어공주는 그 길로 왕궁으로 향했습니다. 왕궁 계단에 다다르자 마녀가 준 물약을 입에 털어놓고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 많은 궁궐 직원들은 뭘 하고 있었는지 인어공주는 하필이면 왕자에게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곤 그녀가 그토록 꿈에 그리던 인간의 왕궁에서 왕자의 사랑을 받으며 함께 지내게 됩니다. 왕자와 함께 산책도 가고 노닥거리면서 뭔가 러브러브 한 앤딩으로 가나 싶을 무렵,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이웃나라 공주로부터 왕자에게 혼담이 들어온 것입니다. 애초부터 인어공주에게 별 마음이 없던 왕자는 맞선 자리 나갔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웃나라 공주가 폭풍우 속에서 자신을 구해준 여인이라 근거 없는 확신까지 하게 됩니다. 인어공주는 이게 동화냐? 하며 홀로 애간장을 태우며 막장의 시간을 보내야 했고 아무것도 못해보고 어리바리하는 동안 결혼식 날이 와버렸습니다. 보통의 동화 같았으면 어디선가 마법사가 나타나 마녀를 혼쭐 내주거나 얘가 진짜 널 구해준 여자야 하며 왕자를 찾아가 기적적으로 오해라도 풀어줬을 텐데, 동화의 못된 아버지 안데르센은 인어공주를 혼자 내버려 뒀습니다. 늦은 저녁 배 위에서 홀로 눈물을 쏟아내고 있을 무렵 물속에서 언니들이 나타났습니다. 언니들은 마녀에게 엿가락 대신 자신들의 긴 머리카락을 주고 바꿔온 칼 한 자루를 건넸습니다. 이 칼로 왕자의 심장을 찌르면 인어공주는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나라도 살고 보자 하는 심정으로 칼을 집어 든 인어공주는 신혼방으로 향했습니다. 왕자를 향해 칼을 치켜들었지만 차마 찌를 수 없었습니다. 대신 신부의 품에 잠든 왕자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한 뒤 바닷속으로 칼을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곤 자신도 함께 바다로 뛰어들고 말죠. 


마침내 동이 타올랐습니다. 인어공주는 거품이 되는가 싶더니... 거품 속에서 기체가 되어 하늘로 떠올랐습니다. 하늘로 향하는 동안 기체의 정령들을 만나 나누고 어떻게 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앤딩 실화입니까?     


자, 여러분들이 알고 있던 인어공주 이야기가 맞나요? 아마 대체로 맞을 겁니다. 엔딩 부분만 빼고 말이죠. 다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고 하니, 결말만 한번 짚어보고 가겠습니다. 바로 물거품으로 끝난다는 부분인데요, 아동청소년용으로 각색된 대부분의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인어공주>는 ‘주제넘은 사랑 = 물거품’이라는 연애 공식의 대명사로도 회자되기도 합니다.     


안데르센은 도입부에 인어들은 300년을 살 수 있지만, 인간과 같은 영혼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동화의 스토리와 크게 상관없을 듯 보이는 내용입니다만, 엔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짠한 의미가 숨어있죠. 비록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 택했지만, 인간들에게만 허락된 하늘나라로 갈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는 건, 다리를 가진 인어가 아닌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데르센은 빨간 구두처럼 종종 무서운 소재를 작품에서 다루지만 끝까지 읽어보면 해피엔딩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어린아이의 눈에는 슬픈 결말일지도 모르나 ‘눈의 여왕’처럼 어른이 되어서 보면 살짝 미소 짓게 만드는 매력 넘치는 작품들도 많습니다. 안데르센은 인어공주에서처럼 동화 말미에 후일담을 넣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린 시절 읽었던 각색 본에는 후일담이 빠진 경우가 대부분이죠. 때문에 우리는 엄지공주를 꽃의 왕자에게 데려다준 제비가 작가에게 날아와 어떤 이야기를 전해주었는지, 성냥팔이 소녀는 죽은 다음날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안데르센의 진짜 작품세계와 만나고 싶고 또 진 엔딩이 궁금하다면, 삽화가 화려한 아동용 보다는 성인용으로 출간된 완역본 도서를 권하는 바입니다.          



동시 발동 양성애자     


안데르센의 동화 속에는 미운 오리 새끼나 엄지공주 그리고 성냥팔이 소녀에 이르기까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투영한 작품이 많습니다. 세상 누구보다 찌질한 인생을 살다 간 그는 이야기 속에 자신의 찌질함을 잘 포장해서 걸작들을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 중에서 인어공주만큼 작가 자신을 깊게 성찰하고 녹아낸 작품은 없을 것입니다.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인어공주 스토리에 어떤 뒷이야기가 숨어있는 걸까요?

 

그 시절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랬듯, 안데르센에게도 후원자가 있었습니다. 덴마크의 재무부장관급인 요나스 콜린은 땡전 한 푼 없은 거지와 다를 게 없던 안데르센을 거둬주는 것은 물론 기초교육에서부터 대학까지 시원하게 밀어주었는데요, 안데르센에게 그는 후원자라기보다는 아버지에 가까웠습니다.

안데르센과 인어공주의 실제 주인공 에드바르 콜린

인어공주를 집필할 무렵 안데르센은 후원자인 요나스 콜린의 아들과 딸을 동시에 사랑하고 있었더랍니다. 처음엔 딸인 루이제에게 자신의 자서전까지 써 바치며 사랑을 고백했으나 대차게 차이게 됩니다. 시련에 슬퍼하던 그를 위로하던 그녀의 오빠인 에드바르에게도 연민을 품었지만 그 역시 도루묵이 되고 말죠. 뜻하지 않게 남매 그것도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니 그의 멘탈이 어땠을지는 안 봐도 4K비디오 입니다. 그 무렵 안데르센은 애절하고도 시린 자신의 마음을 담아 동화집을 발표하는데요, 동화집의 메인 작품이 바로 <인어공주>입니다. 그가 남긴 일기장과 훗날 에드바르의 아들이 공개한 편지 등을 종합해보면 인어공주는 안데르센 자신이며, 이루어질 수 없는 대상인 왕자는 에드바르일 것이라는 추측은 거의 확정적입니다.


아, 여기서 잠깐! 안데르센이 활동했던 코펜하겐에 가면 관광코스 중에 인어공주의 동상 있습니다. 이 동상엔 빨간 페인트 뿌리기, 목 잘라내기 등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테러가 발생한다고 하는데요, 대부분 극단적인 여성운동가들의 짓이라고 합니다. 분명히 말해둡니다.


 인어공주의 모태는 남자 안데르센 자신이라고!


남매에게 동시에 사랑에 빠지는 다소 황당한 애정행각은 놀랍게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대학시절 동문이었던 한 사내와 그의 누나를 동시에 연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특히나 누나인 리보트 보이그트는 안데르센의 첫사랑이었는데요, 프러포즈를 하러 가는 길에 졸도를 할 정도로 리보트는 그에게 어려운 상대였다고 합니다.

테러가 일상인 인공공주동상

고심 끝에 애절한 마음을 담은 장문의 편지로 사랑을 전하게 되지만, 돌아온 답장은 고작 두 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대차게 거절당해버린 것이죠. 안데르센은 이 두 줄의 편지를 죽는 날까지 몸에 지니고 다닐 정도로 첫사랑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그의 남동생을 사랑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사랑에 빠질 때 마음을 줄 두 사람,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을 필요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성적 취향을 넘어 그들의 가족이 되고, 상류층의 일원이 되길 바랐던 그의 열망의 분출은 아니었을까요?  

             


어릿광대의 사랑 그리고 쓸쓸한 말로     

노년의 안데르센

열다섯, 무일푼으로 코펜하겐에 상경한 시골 출신 안데르센은 구걸에 가까운 어릿광대짓을 하며 도시생활을 시작합니다. 돈이 떨어져 거지가 될라치면 어디선가 구원의 손길이 나타나  도시생활을 연명하게 되죠. 그러던 중 왕국의 재무부 장관인 요나스 콜린이라는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게 됩니다. 순전히 후원자 빨로 국왕의 장학금을 타내 정식 교육을 받게 되고 그토록 그가 열망하던 상류층들과도 친근한 관계를 맺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일원이 되고, 또한 사랑을 얻는 데는 실패합니다. 그의 작품 속 인어공주역시 기적적으로 왕자의 곁에 머물고 또 친근한 관계를 맺지만 이성적 사랑은 얻지는 못하고 끝을 맺죠.


안데르센은 70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작가로 유명세를 탄 후 비밀리에 관계를 가져온 남성이 몇 있었으나 연인관계로 발전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이성 관계조차 짝사랑 외에는 기록된 스토리가 전무합니다. 노년에 이르러 사창가를 자주 찾았다는 기록만 전해지고 있죠. 이렇듯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은 단 한 번의 사랑도 꽃피우지 못하고 평생을 혼자 외롭게 살다 죽음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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