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고 본 것들의 기록
눈웃음이 매력적인 한 아기가 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안타깝게 이 아기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아이의 이름은 정인이. 2021년이 1월 2일 한 방송 프로그램은 양부모의 학대로 죽음에 이른 ‘정인이 사건’을 세상에 알렸고, 우리는 분노와 슬픔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와 유사한 사건은 이전에도 종종 있었고, 최근에도 일어나고 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과 SNS 등에서 원인과 해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오가지만 뾰족한 방안이 나오지는 못하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오래전부터 눈여겨보았던 책,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을 읽었다. 이 책은 2016년에 출간된 책으로 한겨레신문 탐사기획팀 다섯 명의 기자가 학대 피해 어린이의 죽음 앞에서 뒤늦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기록한 아동 학대 사망 보고서이다. 저자들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학대로 사망한 어린이의 실태를 꼼꼼하게 조사하고, 정부와 기관의 부실한 통계를 교정하였고 아동 학대 사건의 사례와 사건 기록과 판결문, 언론보도 등을 분석하였다. 신체 학대와 방임으로 인한 사망 외에도 신생아 살해, 동반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왜곡된 ‘살해 후 자살’도 다루었다. 그렇게 희생되어 사라져 간 263명의 아이들을 확인하였다. 피해 어린이들의 죽음 앞에서 또다시 뒤늦은 후회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쓴 이 책이 발간된 지 5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이 서글픈 현실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무력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언론에서 아동학대 기사를 접하면 일시적인 관심과 단편적인 해결책이 제시되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우리 사회가 우리의 범죄를 직시하기를 꺼린다’는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저자들이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가해자가 확인된 아동학대 사망 사건 107건 중 친모가 저지른 사건은 39건, 친부는 32건이며 친부 또는 친모가 공범인 경우는 9건으로 아동학대의 대부분이 친부모에 의한 것이다. 가정에서 발생한 아동학대가 전체의 83,8%를 차지한다고 한다. 또 여섯 살이 되기 전에 사망한 경우가 76명이며 그중 돌도 안 된 아기는 43명이다. 가해자인 부모들은 아이들이 보채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여 혼냈을 뿐이라는 변명을 하였지만, 훈육을 명분으로 학대가 자행되었다. 또한 사망한 아동의 절반 정도는 부모가 실직이나 경제적 궁핍으로 인한 가정불화, 질병 상태에 있었다. 부모의 화풀이 대상으로 아이들은 죽어갔으며, 함께 살던 형제나 자매의 죽음을 겪은 ‘살아남은 아이들’도 고통을 겪고 있었다. 학대 피해를 경험한 아이의 17년에 걸친 치료와 회복 과정도 소개하며, 아이들이 보낸 메시지를 번번이 외면한 우리 사회의 무심함과 신고 의무자들의 책임 방기 등을 고발하였다.
기자들이 뒤늦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펴낸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을 출간하였지만 여전히 우리의 아이들은 학대로 죽어가고, 한국이 OECD 국가 중 학대로 사망한 아이가 많기로 거의 최고 순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들은 그 원인으로 한국사회가 가진 가족구조와 폐쇄성을 들고 있다. 한국의 가족구조는 남성과 여성이 만나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것을 정상적인 가정으로 여기고 있으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타인은 간섭하기 어렵다. 아이를 학대하여도 부모의 훈육이라는 명분에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기 쉬운 구조가 아니다. 아이를 살해하여 감옥에 수감된 가해자에게 살아남은 다른 아이의 친권은 유지되며, 아이를 살해하고 자살한 부모를 언론에서는 ‘일가족 동반자살’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동학대가 계부나 계모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아동학대 사건의 80% 이상이 친부모에 의해 이루어진다. 어린이집 등 보육기관에서 일어나는 학대도 전제의 4%에 불과하다. 이런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착각을 하고 있는 이유로, 책에서는 언론 보도를 들고 있다. 언론이 아동학대의 경우가 계부나 계모일 경우 크게 다루고, 보육교사 사건이 터질 경우 보육기관의 문제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 시스템도 부실하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여 아빠에게 맞아 죽은 아이의 경우, 어른들이 목격했음에도 신고하지 않았다. “아는 사이라서”, “이번 한 번만”하며 외면하고 회피하였다. 어른들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었다. ‘정인이 사건’의 경우는 어린이집 교사를 비롯해 소아과 의사 등이 세 번에 걸쳐 아동학대 신고를 하였다. 그러나 경찰의 부실수사로 인해 정인이의 격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관할서인 경찰서에 아동학대 신고를 세 번이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서 측에서 혐의 없음 처리를 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아동학대 신고는 공익신고이며, 「공익신고자 보호법」로 신고자는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 그러나 신고자의 노출, 신고 뒤의 아동의 상황 등을 이유로 신고를 꺼릴 수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가 존재한다.
이 책은 신고의무자가 신고를 외면하는 이유, 아동학대 및 복지 관련 예산 등에 대한 문제도 제시하였다. 학대당하는 아이들, 학대로 형제자매를 잃은 ‘살아남은 아이들’을 보호하거나 돌볼 장소나 전문 인력이 부족한 현실의 개선도 제안하였다.
우리는 어느덧 아이들이 귀한 사회가 되었다. 2018년 이후 출생아수가 급감하고 있으며 작년의 경우 코로나 19로 30만 명이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세상의 빛을 본 아이들을 더 이상 잃지 않는 정책도 필요하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은 흔한 말이 되었다. 온 마을의 일은 결국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라는 것, 나라의 일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아이의 생명을 저해할 전근대적인 가족에 대한 인식을 타파하고, 공동체와 사회가 시스템으로 뒷받침하여야 할 것이다.
‘정인이 사건’ 이후 아동학대의 관심이 커졌다고 하나, 또 다른 아이들의 슬픈 소식이 연이어 전해진다. 5명의 기자가 ‘뒤늦은 후회’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썼다는 이 책을 언제까지 가슴에 담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것은 미완의 책이다. 글을 마감하려 할 때마다 또 다른 우주가 파괴된다. 봄여름이 그러하고 가을 겨울이 그러하며 2016년이 그러했고, 2017년이 그러하다. 그 지옥을 빚은 자 누구인가. 꽃 피는 첫 들녘 모든 어른들이 서 퍼붓는 비를 맞고, 사라진 우주를 하나하나 ‘잊지 않을게”호명하기까지 아동학대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그 들판의 초입이다.” 다시 읽어보는 이 책의 서문이다.
* 2021년 2월 독서 IN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