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brarian Pia Apr 05. 2021

서울책보고,진실로 서울의 보물이 되다

도서관장의 업무 일기

  2017년 1월, 도서관장으로 업무를 시작하면서 ‘헌책보물섬’ 사업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들었다. 서울에서 사라져 가는 헌책방을 돕기 위한 ‘헌책 정거장’이라는 것이다. 이미 사업을 시작한 지 2년 가까이 되었지만, 조성 공간이 유수지인데, 제출된 설계안이 하부구조 보강 공사를 필요로 하여 당초 예산을 초과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시 투자심사를 받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니, 이게 뭐야?’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새로운 조직에 적응할 틈도 없이 그날 이후 투자심사를 위한 행정 준비를 시작으로, 추가 예산 편성을 위해 한해를 다 보냈다. 

  한편 헌책방 지원을 위해서 어떻게 사업을 다듬어야 할지 막막하였다. 내 손에 놓인 ‘책벌레’가 지나간 모양의 서가에 책방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 조성할 공간에서 어떤 활동이 일어나게 할 것인지 구체화하는 것은 엄청난 과제였다.

 철근이 삐죽 튀어나오고, 서가 선반이 고작 철근 4개인 양면 서가에 책을 엇갈리게 꽂으라는 설계자의 구상은 그야말로 창고 같은 모습이었다. 도서관 운영을 십수 년간 해본 나로서는 그런 불안정한 서가는 이용자의 안전에 직결되어 훗날 큰 문제가 될 것이 눈에 선했다. 도서관을 개관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지. 서울책보고는 도서관이 아니고 공공 헌책방이었지만, 그와 다름없었다. 설계자와 거의 싸우다시피 하여 서가 설계를 변경하고, 출입구 위치를 옮겼다. 우여곡절 끝에 공사하고, 입점할 헌책방을 모집하고, 운영을 위한 자문회의를 하고, 명칭을 공모하고, 운영할 업체를 선정하고...글로 쓰면 몇 단어 되지 않는 일들을 하느라 우리 직원들과 고민을 많이 하였지만 시간이 되니 어느덧 개관할 시기가 되어 있었다.

 시민들이 정해주신 이름, 서울책보고(寶庫). 2019년 3월 27일, 세상에 없던 책문화공간이 시민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다단계 판매업체의 물류창고가 책으로 만들어진 보물창고로 변신하였다. 누군가는 도서관이냐고 했고,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얘기도 들었다. 어떤 이는 저작권이 이미 소멸된 헌책을 서울시가 판매까지 한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기존의 중고서점을 운영하는 민간영역 침범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서울책보고 조성의 취지를 공감해주는 출판․서점계 인사들이 늘었고, 무엇보다 시민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청계천을 비롯하여 서울에 흩어진 헌책방의 책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는 편리함이 있고, 헌책방 사장님이 슬쩍슬쩍 내놓는 귀한 헌책들의 전시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진기함이 있었다. 또한 유익하고, 즐거운 책 프로그램도 한몫하였다.

 개관 첫해에는 30만 명이 다녀갔으며, 2020년 코로나 19로 140여 일 밖에 개관하지 못하였지만 온라인 북콘서트 등은 물론 온라인 판매 플랫폼을 만들기도 하고 생년 문고나 절기 문고, 블라인드 책 판매 등 다양한 실험을 하며 헌책방과 시민의 연결고리가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

  2021년 3월 27일, 서울책보고의 두 번째 생일이다. 서울책보고는 독특한 설계로, 이 공간을 인스타그램의 성지로 만들어주신 서현 교수와 31개의 헌책방 사장님들과 함께 다양한 의견을 주신 자문위원들, 그리고 책임감 있게 업무에 임한 서울도서관 담당 직원들, 개관 이전부터 지금까지도 열정적으로 서울책보고를 운영하는 직원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만든 공동 작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공간이 빛이 나게 해 주시는 분은 역시 서울시민일 것이다. 

 서울책보고, 지금의 사랑이 계속 이어지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다.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