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고, 본 것들의 기록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공정’ 일 것이다.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어도’ 참을 수 없는 것이 불공정, 불평등한 일을 당하는 것이다. 공정은 얼마 전 있었던 20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각 후보들이 이를 강조할 만큼 우리 사회의 큰 과제이다. 대통령 당선자는 대통령인수위원회를 구성할 당시 위원들을 지역이나 성별, 연령 등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능력만으로 발탁하겠다고 하였다. 얼핏 생각하면 이것이 공정한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능력 중심의 인사가 오히려 특정 학교 출신, 여성 배제 등의 문제를 나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과연‘능력주의’가 공정한지 의문을 낳게 하는 사례이다.
2021년에 출판된 박권일의 책, <한국의 능력주의>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담고 있다. 저자는 한국이 능력주의 중심인 사회라고 진단한다. 능력주의란 업적의 지배, 지금까지 해온 것에 대한 대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 대해 차등적 우대를 말한다. 그는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우리나라만의 특성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시험’이다. 대개 시험은 형식적인 공정성을 담보하는 합리적인 방식이다. 학교, 기업 등에서 시험을 통해서 공정하게 능력 있는 사람을 뽑는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시험은 준비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 불평등을 가리고, 실질적 불평등이 만들어낸 실질적 불공정을 정당화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죽을힘을 다한다. 우리 사회는 이 시험을 통과했는지의 여부가 능력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저자는 한국의 능력주의에서 시험이 지니는 또 다른 특징으로 지대추구(地代追求)의 경향을 꼽는다. 지대추구란 생산성의 향상이나 효용 없이 개인이 이득을 가져가는 성향을 뜻하는 경제학 용어이다. 시험이 능력을 검증하는 수단이 아니라 합격이라는 자격을 통해 시험과 무관한 영역에서 이득을 얻어가는 수단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대학 입시를 비롯하여 공무원 시험, 각종 고시나 입사 시험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학 입학 성적이 좋다고 회사에서 업무 능력이 탁월하다는 보장은 없지만, 대입 시험에서의 좋은 성과가 취업 시장에서 유리한 잣대로 작용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취업 시장에 블라인드 채용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는 정기 채용시험을 통해 입사한 정규직과 면접 정도의 상대적으로 쉽게 보이는 방법으로 채용되는 비정규직 간의 갈등이나 공직사회에서 공무원 시험을 거쳐 입사한 사람들과 전문성을 갖고 서류와 면접으로 공직사회에 진입한 임기제 공무원 간의 갈등도 첨예하다. 실제로 이런 문제로 각자의 불만을 갖는 사람을 수없이 많이 보았다.
2018년 한국리서치가 전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사회의 공정성 인식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 다수는 분배에 있어 산술적 평등보다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에 따라 차등 분배하는 것을 공정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수의 클수록 좋다는 입장이 66%로, 이러한 응답은 전 계층 및 사회집단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능력이나 성과보다 근무태도와 같은 노력 요인에 대한 보상을 중시하며, 학력이나 가정형편, 부양가족 수는 임금 격차를 둘 요인이 아니라는 응답이 69%로 높았다. 필요에 의한 분배는 한국사회에서 소수 의견에 불과하다. 또한 조사 결과는 한국사회는 경쟁의 기회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불신을 보여주는데, 입시나 취업의 기회가‘가진 자’에 집중되어 있고, 그 결과 소득이나 자산의 분배가 불공정하게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법 집행의 불공정에 대한 응답 74%, 소득 분배나 취업 기회의 불공정을 지적하는 의견은 71%였다. 직장 내 승진이나 진급 기회도 65%가 불공정하다고 대답하였으며, 한국사회에서 계층 상승의 기회는 닫혀있다는 의견이 73%에 달한다. 이러한 불공정 인식은 결국 성공한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작용한다. 스스로 성공했다는 사람은 자수성가의 결과로 이해하지만, 실패했다는 사람은 한국사회에서의 성공이 배경과 연줄과 힘에 의한 불공정의 결과로 보고 있다.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혐오를 부른다. ‘멸시하는 능력주의자가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벌레 투성이’이다. 지역균형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한 학생을 ‘지균충’, 월수입 2백만 원 이하인 사람을 ‘이백충’, 임대아파트에 살면 ‘임대충’ 같은 혐오표현을 서슴없이 말한다. 천박하기 짝이 없다. 알랭 드 보통도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진다”라고 하였다.
저자는 한국인이 대체로 불평등한 분배 원리를 선호하며 노력과 능력에 따른 차등 분배로서 이른바 능력주의 원칙과 사실상 동의하다고 하면서도, 한국사람 개개인이 이기적이거나 탐욕스럽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능력주의의 대안은 곧 불평등의 대안이라고 하였다. 불공정이 아닌 불평등 자체를 환기하여 시민적 관심사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이를 풀어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차별과 불평등의 사회에서는 나 자신도 불평등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정부, 곧 있을 지방선거에서 선출될 지방자치단체장 등 행정가, 정치인들은 아파하는 한국사회의 치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눈 떠보니 선진국’인 대한민국이 아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선진국 국민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불평등의 격차를 줄여 나가야 한다. 인생이라는 달리기에서 뒤따라오는 친구를, 동료를 팔꿈치로 밀치면서 나 혼자 질주하는 ‘팔꿈치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번이라도 친구들과 나란히 달려 승리의 기쁨을 함께 한 특별한 경험의 환희를 맛본 사람이라면 우리 사회가 어떠해야 할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