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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 Nov 19. 2019

오랜 고민의 끝과 시작

캣맘이 되었습니다

어미 삼색이


오랫동안 생각만 하고 용기가 나지 않아, 현실적 문제로 혹은 상황 핑계를 대며 하지 못했던 일이 있었다. 작년 가을쯤, 이사를 한 새 동네에서 여기저기 풀어헤쳐진 쓰레기 봉지와 음식물 쓰레기를 우걱우걱 먹는 젖이 불어있는 어미냥을 보았다. 내가 아이를 낳고 보니 그 모습이 어찌나 안쓰러워 보이던 지. 일단 시작은 해보자 마음을 먹고 그 무렵부터 길고양이들 밥을 주기 시작했다.



한번 주면 계속 줘야 할 텐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어디에 줘야 하나. 그릇을 계속 두는 방식으로 줘야 할까 봉지에 담아 줘야 할까. 밤에 한 번만 줘도 될까. 한 곳에, 넉넉히 두면 너무 이 사료에만 의지하지 않을까. 혹시 내가 이사라도 하게 되면 어떡하나. 밥 주는 걸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 갈등이 일어나면 어쩌나. 혹시 어디 다쳐서 나타나면 그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너무 많은 고민 끝에 '길냥이 수명이 보통 3-4년이라는데, 그냥 밥 한 끼라도 배불리 먹게 하자'라는 마음으로 밥을 주기 시작했다. 고민했던 장소에 밥을 두고는 어찌나 설레던지. 그다음 날 깨끗하게 비워진 밥그릇을 보니 얼마나 뿌듯하던지. 누가 밥을 먹고 가는지도 모르고, 내가 가능한 시간에 밥을 주다가 일이 주 만에 밥 소리를 듣고 바로 튀어나오는 냥이를 보았다.



너구나. 밥을 매일 먹고 가는 녀석 중 하나구나.



우리 동네는 길고양이가 참 많다. 주택들과 몇몇 빌라만 있는 동네여서 아파트 단지보다는 살기가 좋은 환경일 거다. 밥을 챙겨주는 사람들도 몇 있는 것 같다. 확실히 고양이가 쥐를 잡으니 고양이에 대해 적대적인 사람도 몇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가 져서 어두워지고 나서, 주위를 엄청 두리번거리며 재빠르게 밥을 주고 있다. 어두운 골목이 무섭기도 하지만 그게 내 마음이 편하다.


겨울 무렵에는 내가 밥을 챙겨주게 된 계기 중 하나인 어미 냥이 아예 밥자리 옆에 자리를 잡고 새끼냥 5마리와 함께 지내기도 했다. 새끼냥들이 어찌나 다 토실토실 귀여운지. 길에서 그만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매일 다섯이나 되는 새끼냥들에게 먹을거리를 물어다 주려고 얼마나 애썼을까. 추워지기 전에 살 좀 찌우라고 캔과 닭가슴살도 좀 챙겨주었는데 잘 먹는 걸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내 마음 편하자고 주는 건 아닐지 지금도 고민이 많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배를 곯는 고양이들이 있고 난 그 굶주림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은 잃으면 안 되니 만지거나 놀아주거나 하는 건 절대 하지 말아야지. 딱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지.'하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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