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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ux Jun 21. 2024

날개를 활짝 펴고

그리운 금강산

 먼 옛날, 화진포 탄생에 심성이 사나운 이화진이 일조했다면 송지호 탄생에는 구두쇠로 이름났던 정거재가 일조했다. 이화진에게 벌로써 청천벽력을 내린 건봉사 승려와 달리, 시주를 거절한 정거재에게 노승은 쇠절구를 벌로써 내린다. 무겁디 무거웠던 쇠절구는 정거재의 기름진 밭을 저 밑바닥까지 푹 꺼뜨리는 것도 모자라 끊임없이 물을 솟아나게 했고, 이는 곧 송지호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화진포만큼의 확 트인 면적을 자랑하진 않지만, 송지호는 대신 겨울에 천연기념물 제201호인 고니가 수없이 찾아와 장관을 이룬다. 2007년 송지호 철새관망타워가 개관하여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으며, 이보다 2년 전인 2005년에는 해양심층수 연구센터가 전시홍보관을 운영 시작하여 수심 605m 아래에서 끌어올린 청정 자원 해양심층수를 활용한 지역 특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송지호가 가진 자원은 고니와 해양심층수 말고도 또 있다. 언젠가 꼭 가봐야 할 전통마을, ‘왕곡마을’이 다름아닌 그것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전통 마을은 양반이 거주하던 마을이라 커다란 대들보와 기와지붕 및 현판을 갖춘 건물들이 반드시 한두 개는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왕곡마을에는 주로 평민들이 거주했기에 집이나 건물에 특정한 의미를 담아 부여한 ‘당호’가 없다는 게 특징이다. 말하자면 왕곡마을에는 건물에 ‘여유당’, ‘희락당’, ‘독락당’ 같은 이름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여타 전통 마을보다 덜 딱딱하며 보다 정겹다. 


 지리적으로 오음산을 중심으로 한 5개의 산봉우리가 마을을 둘러싸고, 마을 앞에는 송지호가 있어 왕곡마을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를 띤다. 14세기 고려 말, 양근(강릉을 달리 이르는 말) 함씨 함부열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데에 반대하여 간성으로 낙향하였다. 그리고 그의 손자 함영근이 현재의 왕곡마을 자리에 정착하여 집성촌을 형성한 이후, 강릉 최씨와 함께 두 성씨의 후손들이 대대로 왕곡마을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왕곡마을의 주민들은 조선 시대 내내 관직에 나가지 않았으며, 남한 최북단에 위치한 관계로 19세기 전후에 건립된 북방식 한옥과 초가 군락이 원형을 유지한 채 보존되어 있어 2000년에는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강추위를 피하기 위해 뒤로 뚫은 창호와 집 안에 마루와 외양간이 들어가 있는 폐쇄적인 구조가 자못 흥미롭다. 또한 대체로 가옥들의 입구 쪽에 대문과 담장이 없는데, 바람과 눈이 많은 지역이라 고립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왕곡마을에서 북쪽으로 한참 지나 만날 수 있는 동해선의 제진역은 건설만 되었을 뿐 선로를 통해 열차가 들어온 적이 없어 더욱 고요하다. 오래되어 운행이 종료된 디젤 기관차와 무궁화호 객차가 전시관 형태로 꾸며져, 사전 예약된 학교 단체 관람객에게 한시적으로 공개되고 있을 따름이다. 심지어 이 전시관조차 대책 없이 선로 위에 그냥 세워져 있어, 현재 국가철도공단이 강원특별자치도 교육청에 전시관 철거 또는 이전을 통보한 상태다. 파주 권역 백마고지역은 열차 운행이라도 해봤건만, 고성 권역 제진역은 2006년 3월 15일 완공된 이래로 시험운행 말고는 정식 운행을 해본 바가 없다. 남북출입사무소와 전시용 폐열차만 덩그러니 있고, 역은 금강산 관광에조차 쓰이지 못했다. 1998년 11월 18일부터 2008년 7월 13일까지 약 10년 간, 현대그룹의 대북사업 계열사인 현대아산의 주도로 금강산 관광이 이루어질 시점에도 동해항에서 배를 타고 가거나 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갔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싼 값과 복잡한 절차를 거쳐가며 제한적으로라도 금강산을 여행하던 우리나라 국민들은,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직후부터 여태까지도 금강산을 여행하지 못하고 있다. 대북 관계와 상관없이 향후 강원도 개발의 일환으로 동해선 강릉-제진 구간이 2027년 완공될 예정이라 하니, 그저 머지 않은 미래의 제진역에 정말로 열차가 다닐 날을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지금으로선 대부분의 관람객들에게 딱히 제진역을 둘러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므로, 바로 인근의 DMZ 박물관만 관람하고 바로 통일전망대 방향으로 올라간다.


 제진역이나 DMZ 박물관, 통일전망대 모두 민간인 출입통제선 북측에 있어, 출입하려면 남쪽의 통일안보공원 안보교육관을 먼저 거쳐야 한다. 통일전망대를 기준으로 하여 출입방법을 설명하자면, 우선 통일안보공원 주차장에 도착하여 주차비용을 내고 출입신고서를 작성한 뒤 입장권을 구매하면 된다. 그리고 국가보훈처에서 제작한 8분 남짓의 영상으로 안보교육까지 받은 뒤 자동차를 출발시킨다. 안보교육관에서 출발하여 전망대 쪽으로 이동할 때 검문소가 나오는데, 이때 입장권과 출입신고서를 제시하면 민통선차량출입증을 받아 들어갈 수 있다. 이후 통일전망대 관람은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나올 때 검문소에 민통선차량출입증 및 출입신고서를 반납, 제출하면 된다. 관광 시간은 3시간 이내로 준수해야 하며, 도로변의 주정차가 금지되고 휴대전화를 항상 켜두어야 하는 유의사항이 존재한다.


 통일전망대 주차장에 도착하면 왼편에 6.25 전쟁체험 전시관이 있으며, 전시관을 보고 나서 계단을 오르면 기존 전망대 옆에 새로 건설된 높은 통일전망타워가 보인다. 통일전망타워는 높이 34m 규모로, 금강산 관광 당시 사용되었던 도로 및 금강산으로 이어진 철도가 보인다. 날씨가 맑으면 멀리 금강산의 구선봉과 국지봉, 해안선 우측 끝으로 해금강을 볼 수 있다. 극히 일부만 보일 뿐이지만,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금강산의 봉우리들과 해금강의 생김새가 남한에서 보던 산들과 확실히 차이가 있어 실제로 보면 괜스레 가슴이 웅장해진다. 재미난 점은 전망대 2층의 기념품점에서 북한의 특산품과 술, 지폐를 판매한다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만찬 때 건배주였다는 그 유명한 들쭉술도 구매 가능한데, 이 모두는 16년 전 2008년 햇볕정책으로 북한과의 교류가 한창 활발하던 때에 들여온 물품들이라 하며, 술은 식품이지만 알코올 함량이 높아 여지껏 상하지 않고 판매가 되는 모양이다. 황해도나 평안도를 고향으로 하는 실향민들이 보통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나 임진각 망배단을 찾아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데, 함경도를 고향으로 하는 실향민들은 그곳 대신 고성 통일전망대의 망배단을 찾는다고 한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과 해금강. 출처: 고성군청 홈페이지

 드디어 국토의 서쪽 끝에서부터 시작된 DMZ 권역 투어가 국토의 동쪽 끝을 만나면서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파주에서 멀리 송악산을 바라보며 아쉬워했던 우리는 이제 고성에서 멀리 금강산을 바라보며 아쉬워하고 있다. 개성 관광도, 금강산 관광도 한때 우리에게 허용되었던 것이었던 만큼 더욱 안타깝고, 불과 얼마 전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한 데 이어 담배꽁초, 천조각, 비닐 등이 든 오물풍선을 몇백 개씩 날려보내고 있는 이 상황이 또한 답답하다. 1948년 남북 정부가 분리되어 수립된 이후로 벌써 76년이 흘렀다. 부디 빠른 시일 안에 경색된 남북 관계에 다소라도 훈풍이 불기를 바라며, DMZ 권역 투어의 마지막인 고성 이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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