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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정 Feb 04. 2022

신선한 혼란스러움을 느끼다

새로운 달리와의 만남 : 살바도르 달리 전 관람기

  살바도르 달리의 국내 최대 규모 원화전에 다녀왔다. 그 유명세만큼이나 평일에도 전시장은 입구부터 북적거렸고, 전시장 안은 달리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려 한참 동안 그림을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신비하고도 난해하고, 또 혼란스러우면서도 신선했던 이번 전시는 내가 지금까지 알던 달리와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전시는 시대순으로 10개의 섹션에 걸쳐 유년시절부터 그의 작품 특성을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는데, 나는 새롭게 알게 된 달리의 모습을 중심으로 후기를 남겨보고자 한다.




하나. '달리는 초현실주의 작품 이외에도 여러 화풍의 그림을 그렸다'

  흔히 '달리'하면 시계가 흘러내리고 기이한 건물들이 있는 등 꿈에서 볼법한 조금은 어두운 분위기로 가득 찬 초현실주의 작품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달리의 초현실주의 작품들이 탄생하기 전 그가 보인 다양한 화풍들을 엿볼 수 있었는데, 아래 두 작품이 대표적이다.


  달리는 유년시절 인상주의와 입체주의 화풍에 매료되었고, 이는 전시 초기 작품들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15세에 그렸다는 '스튜디오에서 그린 자화상'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달리의 작품들과는 달리 따뜻한 색감과 굵은 붓터치가 눈길을 끌었는데, 순간적인 빛의 모습과 인상을 느낀 대로 담아내는 기존 인상주의와는 달리 자신의 옆모습의 정확한 각도를 그리고자 거울 세 개를 두고 반사된 모습을 비춰가며 그렸다는 비하인드 스토리 또한 달리의 남다름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길게 드리워지는 햇살 아래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자신의 모습을 그리던 달리가 느꼈던 감정을 잠시 상상해 보게 되는 그림이었다.


  '에스 야네르의 목욕하는 사람들'은 달리가 입체파의 영향을 받은 시기에 그린 작품으로, 달리에게 이런 화풍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기에 처음 그림을 마주했을 때 너무 새로웠다. 무엇보다 목욕하는 사람들의 신체를 점묘화로 마치 자연의 일부분인 것처럼 표현해 낸 접근법이 좋았고, 그림을 보고 있으니 인간의 신체를 이루는 곡선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피카소에게 엄청난 존경심을 드러냈다는 달리가 어떻게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해 가는지 그 과정을 담은 작품이기에 매우 의미 있게 느껴졌던 것 같다.


살바도르 달리, 좌 <스튜디오에서 그린 자화상, 1919> / 우 <에스 야네르의 목욕하는 사람들, 1923>




둘. '달리의 세계는 캔버스 밖에서도 계속되었다'

  달리의 넓은 작품세계를 마주할 수 있었던 것도 이번 전시의 묘미였다. 달리는 단순히 그림만 그린 것이 아닌, 무대 디자인, 책의 삽화, 디즈니 합작의 애니메이션, 영화감독 등 자신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매체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전시장 내에 마련된 영화와 미디어 아트 등 모든 작품을 천천히 감상해보기를 추천한다.)


  무대 디자인, 영화 등으로 다양하게 풀어낸 달리의 작품을 보고 있자니 그림과는 또 다른 느낌에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슨 의미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이 난해하고 혼란스러운 그림에 사람들은 왜 열광할까 궁금해졌는데, 전시장 안에 적힌 한 미술사가가 달리의 작품을 보고 남긴 "달리는 비현실적인 세계를 극사실적으로 표현하여 그림 속의 진실과 타당성에 대해 전혀 의심조차 들지 않게 한다." 라는 말을 보며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았다.

  사람들은 현실에 살아가지만, 누구나 현실 이면의 비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에 대한 궁금증을 지니고 있는데, (프로이트의 언어로는 무의식이라고도 표현하며 이것이 꿈을 통해 표출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가장 허구인 비현실을 눈앞에 가장 실제적으로 생생하게 표현해 냈기 때문이 아닐까. 떠올리고 싶지만 떠올릴 수 없는 꿈속의 느낌과 순간을 재현해 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이것을 다양한 매체로 사람들이 체감할 수 있게 하는 그의 능력은 전 세계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이런 달리의 눈으로 본 문학작품의 삽화 작업 또한 매우 새로웠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데 라만차',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한 번쯤 들어본 작품의 장면 장면을 달리만의 생각과 감성으로 표현해 냈는데, 어릴 적 동화책에서 봤었을 법한 그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삽화에 처음에는 "엥?" 했지만, 볼수록 소설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 더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흥미롭게 감상했던 것 같다.


살바도르 달리, 좌 < 돈키호테 데 라만차 삽화 연작 중 > / 우,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삽화 연작 중 >




셋. '달리는 거장들의 영향을 받아 더욱 깊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슈거 스핑크스', 이번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작품이다. 비교적 앞쪽 섹션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이 작품은 그 분위기가 보는 사람을 압도했고, 제목처럼 스핑크스를 연상시키는 주황빛 거대한 구름과 작품 중앙에 앉아 있는 작은 여인이 대비되어 고독함, 외로움, 두려움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떠올리게 했다. 실제로 이 그림은 달리가 밀레의 '만종'이라는 작품을 처음 보고 불안감에 휩싸여 다양한 해석을 주장하며 그렸던 여러 작품들 중 하나로, 그림 하단을 자세히 보면 사이프러스 나무 두 그루 사이로 만종에 등장하는 두 인물과 수레를 찾아볼 수 있다.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여인은 달리의 평생의 뮤즈였던 부인 '갈라'인데, 달리가 불안함을 느꼈던 만종을 갈라와 함께 녹여낸 모습을 통해 달리는 갈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를 완벽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늘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혹은 때때로 느껴지는 불안감을 갈라에 대한 사랑으로 이겨내고자 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말년으로 가면 달리는 미켈란젤로, 벨라스케즈 같은 거장에 대한 깊은 경의를 표하며 고전주의 거장들의 작품을 그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그중에서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재해석한 '지질학적 메아리'는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리아와 예수를 바닷가의 암석처럼 표현하고, 마리아의 가슴속에 고향 바닷가 풍경과 예수의 얼굴을 담아낸 이 그림이 자신의 부인 '갈라'의 건강 상태 악화로 그녀의 끝을 예견한 달리의 슬픔이 담긴 작품이라는 해설이 있었는데, 나에게는 괴짜로 불리던 자신을 지지하고 감싸주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그로부터 느꼈던 편안함을 담아낸 것처럼 느껴졌다. 그 대상이 누구였든지 달리에게 갈라, 혹은 어머니는 바닷가의 변하지 않는 암석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달리의 피에타는 그가 꿈속에서 만난 갈라, 혹은 어머니의 모습을 엿보는 기분이었다.


살바도르 달리, 좌 < 슈거 스핑크스, 1933 > / 우 < 지질학적 메아리,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재해석, 1982 >




  무의식, 꿈과 같은 주제로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만들면 우울하고 어두운 느낌이 들만도 한데 그렇지 않은 달리의 모습이 놀라웠다. 같이 전시를 본 동생과 창조적인 예술을 수많은 방식으로 재해석했던 그의 모습이 요즘 시대가 원하는 열정 넘치는 능력 있는 젊은이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느낌을 공유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달리가 정말 과거 인터뷰에서 했던 말처럼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달리는 그가 만들어낸 초현실의 세계 그 어딘가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을지도!


평균 이상의 내가 되기 위해,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남기 위해,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술에서도 삶에서도 모든 것에 있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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