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렌스 데이비스-<먼 목소리, 조용한 삶>
이전에도 고백한 바가 있듯이 나는 걸작과 거장은 동의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어떤 감독이 한 편의 걸작으로 잠시 반짝인 뒤 사라진다면 그 감독을 거장이라고 말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반대로 확실한 걸작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감독에 대해서 나는 충분히 거장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테렌스 데이비스를 무작정 전자의 경우에 포함시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테렌스 데이비스를 거장이라고 부르는 데 있어서 망설임이 따른다. 그가 자신만의 미학적 방법론을 완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방법론이 얼마나 성공적인지, 그 방법론을 통해 구축한 세계가 얼마나 나에게 와닿는지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그가 거장이라는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의 영화 <먼 목소리, 조용한 삶>은 걸작이며 테렌스 데이비스가 구현할 수 있는 영화적 정점에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테렌스 데이비스를 가장 쉽게 설명하는 수식어는 “영상 시인”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는 언제나 산문이 아닌 시의 방법론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시의 방법론을 차용한다는 것은 곧 영화에서 어떻게 시적인 리듬, 즉 운율을 만들어낼 것인가라는 문제와 마주한다는 의미이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시적 운율을 서사에서 만들어 내고자 한다. 그러나 테렌스 데이비스는 그러한 운율을 서사가 아닌 이미지의 리듬을 통해 구현한다. 이때 이미지의 리듬이라는 것은 단순히 쇼트와 쇼트, 신과 신 사이의 리듬이 아닌 재현의 리듬이다. 무슨 의미인가? 테렌스 데이비스는 언제나 개인의 삶의 역사, 더 정확히는 그러한 삶을 그려내는 개인의 기억을 영화 안에서 재현하고자 했다. 기억은 선형적이지 않다. 한 개인이 삶을 기억하는 방식은 하나의 이미지로부터 파생된 수많은 이미지들의 연쇄작용이다. 서사로 환원되지 않는 이미지들. 그렇기에 테렌스 데이비스는 인간의 기억을 영화가 다루기 위해서는 서사를 중심으로 하는 산문의 방법론이 아닌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는 시의 방법론으로 다가서야 한다고 믿는다. 그의 영화 속에서 이미지들은 서사의 재현을 위해 봉사하지 않고 그 자체로서 온전히 존재하며 동시에 또 다른 이미지들을 파생한다. 테렌스 데이비스는 이러한 재현의 연쇄작용을 통해 리듬을 구현하고 운율을 만들어낸다.
<먼 목소리, 조용한 삶>은 그러한 시적 리듬의 정점에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서사를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테렌스 데이비스 본인의 자전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것이 전부이다. 말 그대로 기억의 영화. 영화 속 이미지들은 기억의 흐름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리듬을 만들어낸다. 남매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를 증오하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그리워한다(테렌스 데이비스 영화 속 아버지는 보통 이러한 역할을 맡는다). 리버풀이라는 공간은 한편으로는 폐쇄적이고 억압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안식처이다. 기억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대상을 지시하는 수많은 표상. 각자의 방식으로 진실을 담은 이미지들.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아름다운 장면들은 수많은 노래 장면들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인물들은 언제 어디서나, 때로는 갑자기 노래를 부른다. 이 장면들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물들이 노래를 통해 자신만의 리듬을 구현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시적인 리듬을 통해 존재하듯이 영화 속 인물들은 삶의 고통 속에서도 끊임없이 노래를 부르며 삶의 충만함을 찬양한다. 비록 삶이 고통의 연속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을 노래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인물들은 삶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자신만의 리듬으로 삶을 견뎌낸다. 노래라는 리듬. 영화가 서사를 거부하고 시의 리듬을 구현하듯이 인물들도 그저 삶에 휩쓸려가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온전한 리듬을 통해 생의 충만함을 창조한다. 어쩌면 그것이 테렌스 데이비스가 생각하는 삶의 한 가지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영화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왜 테렌스 데이비스를 거장으로 인정하기 망설여지는지에 대해서 당신은 또다시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먼 목소리, 조용한 삶>이 걸작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 이외에 다른 영화들에서는 그러한 걸작의 힘을 느껴보지 못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먼 목소리, 조용한 삶>에서 성취한 방법론적인 성과를 다른 작품들에서는 그만큼 구현하지 못한 것만 같은 인상이 들었다. 방법론 자체는 발명했으나 그 방법론이 온전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 그의 마지막 작품인 <베네딕션>에서는 그러한 방법론이 매너리즘에 빠진 것만 같은 실망감도 들었다. 이제 세상을 떠난 그는 우리에게 새로운 작품을 들고 돌아올 수 없다. 아직까지 <먼 목소리, 조용한 삶>은 나에게 있어 유일한 테렌스 데이비스의 걸작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 한 편만으로도 나는 테렌스 데이비스를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