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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고 못하고는 문제가 아니에요!

의사선생님께 또 혼나다 … 두 번째 바보 인증

by 강호연정

의사선생님과 정기상담을 받고 왔습니다.

그리고… 제목처럼 또 혼났습니다.


요즘 상담을 받으며 느끼는 것이 하나 있어요.
제가 생각보다 훨씬 바보라는 사실입니다.
일에 대해 정말 많은 착각을 하며 살고 있었더군요.


― 선생님: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짤리나요?”

― 나: “아니요. 뉴스에 나올 정도로 사고를 치지 않으면 자를 수 없대요.”

   (자발적 퇴사는 실업급여를 못 받기에 침울)

― 선생님: “그럼 일을 마구 망쳐버려요. 더 이상 일을 시킬 수 없을 정도로.”

― 나: “…….”


저는 알아서 일을 만드는 ‘자발적 노예’.

선생님 말씀처럼 일부러 일을 망친다는 건

저에겐 밥을 굶는 것만큼이나 충격적이고 힘든 일이에요.


그래서 진료 때마다 ‘괜히 열심히 해서 스스로 에너지 빼지 않기’ 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 나: “선생님 말씀대로 일을 망치고 있어요.

   보고서를 최대한 늦게, 마감시간에 맞춰서 내고 있거든요. 마음이 많이 상쾌해졌어요.”(뿌듯)

― 선생님: “……. 본인이 편하다면 됐습니다.” (할말못)


이번 주는 보고할 일이 많아 내심 긴장했습니다.

지난화에서 제가 펑펑 울었던 이야기를 소개했잖아요.

그 사건을 선생님께 얼마나 이야기해야 하나,

너무 주절주절이 되지 않을까 걱정됐거든요.


역시나 ‘펑펑 울었다’로 시작한 저의 주간 브리핑에

선생님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습니다.


‘역시 내가 너무 수다스러웠구나…’ 반성하며

그래도 과장님이 편을 들어주셨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회사에 돌아가 이성적으로 좋은 결과를 냈으니 칭찬 한마디쯤은 들을 줄 알았죠.


그러나 저의 주치의 선생님은 범상치 않다고 했었죠?

선생님의 분위기는 점점 심각해져 갔습니다.


― 나(속마음): ‘아이고… 또 열심히 일해버려서 혼나겠구나.’ (긴장 중)

― 선생님: “지금 핵심은 그게 아니지 않아요?”

― 나: “……???”

― 선생님: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문제가 아니죠.

   일을 못한다면 그건 인사팀이 사람을 잘못 뽑은 거고요.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소리를 지른다는 거죠!”

― 나: “아하!” (돌이 튀는 소리)

― 선생님: “여기가 무슨 군대도 아니고요. 군대에서도 요즘엔 이렇게 못해요!

   내 딸이 이런 일을 당했으면 가만두지 않았을 겁니다!” (흥분)

― 나(속마음): ‘우리 아빠도 알면 안돼요.’

   (몇십 년 전, 학폭당한 친척 오빠를 위해 아빠 포함 삼촌들 대출격 사건 있었음)

― 선생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고 말고는 본인 선택이지만,

   이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 나: “아! 이제 깨달았어요. 저는 완전히 포인트를 잘못 잡고 있었군요!”

― 선생님: “그럼요! 일을 못해도 괴롭히면 안 되죠!”


이렇게 저는 바보임을 또 한 번 인증하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병원문을 나왔습니다.


여러분, 일을 못하든 잘하든 남을 괴롭히면 안 됩니다.


일을 못하는 직원이 들어와서 답답하다?

인사팀을 탓하세요.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많은 직원들이여,

우리 탓이 아닙니다!

그들이 못 돼 처먹은 거라고요!

힘을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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