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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윤의 해피레터 May 04. 2023

스물 두번째 레터 : 이렇게 말하면 좋았을걸

2023-04-23 발송 레터 : 중요한 건 지속성 


그동안의 해피레터를 보면, 아이들과 문제없이 수업을 잘 진행한 것 같지만 당연히 그러지 못한 날들도 있었다. 처음 겪는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얼렁뚱땅 대처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아, 그때는 이렇게 말하면 좋았을걸!’하고 더 좋은 방안이 떠오르곤 했다. 실수했던 당시의 상황과 미래에서 생각해 본 더 좋은 방안을 기록해서 남기고 싶었다. 그래야 다음에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더 능숙하게 잘 대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의 레터는 일명 ‘후회 특집’이다.



공감도 좋지만, 오해는 끊어줬어야 했는데


우리 학원은 책을 읽고 감상문을 적는 게 가장 중요한 수업이다. 하지만 독해력 향상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짧은 지문에서 답과 답의 근거를 찾는 ‘독해력 훈련’을 한다. 독해력 훈련 책은 난이도에 따라 1, 2, 3, 4권까지 있다. 아이들이 ‘독해력 훈련’ 책을 한 권씩 끝낼 때마다 책을 아이를 통해 보내고, 부모님께 카톡으로 알려드리곤 했다.


그런데 원장님께서 아이들이 독해력 훈련 책을 열심히 끝냈는데 부모님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게 아쉽다고 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아이가 끝낸 책과 함께 아이 사진을 찍어 주고 그 사진을 함께 부모님께 보내드리자고 제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독해력 훈련 책을 다 끝내서 사진을 찍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책 한 권을 마친 걸 축하해 주고, 기념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말했다. 아이가 자랑스럽게 책을 들고 내가 사진을 찍던 찰나였다.


“선생님 뭐예요! 제가 독해력 훈련 책 끝냈을 때는 사진 안 찍어주셨잖아요!”


그걸 보던 다른 햇살이가 억울하다는 목소리로 분통을 터트렸다. 그 햇살이는 이 학원을 다닌 지 꽤 오래된 아이였기 때문에, 독해력 훈련 책은 이미 3권을 끝낸 아이였다. 자기가 학원을 오래 다닌 동안엔 사진을 한 장도 안 찍어줬다가, 다른 친구는 책 한 권을 끝냈다고 사진을 찍어 준다고 하니 억울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끝난 책들로 다시 사진을 찍게 할 수도 없고 참 난처했다.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햇살이는 더욱 화가 나 씩씩대기 시작했다. 햇살이는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나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게 분명해. 그러니까 안 챙겨주고 쟤는 챙겨준 거지. 여기 학원 선생님들은 다 나를 안 챙겨줘! 진짜 화나! 이 학원은 정말 별로야. 이 학원 안 다닌다고 엄마한테 말할 거야! 끊어야겠어!”


그렇게 햇살이는 불만을 한꺼번에 쏟아낸 뒤엔 결국 분을 못 이겨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걸 보며 머릿속으로 ‘햇살이 너를 일부러 안 챙긴 게 아니라, 전만 해도 이렇게 책을 끝냈을 때 사진을 찍어 주는 규칙이 없었단다.’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예전 일이 생각났다.



 해피레터 2편 : 마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서

https://stib.ee/jiL5


해피 레터 2편(마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서)에 글로 적은 적이 있었던 일이었다. 아이가 슬플 때 이성적으로 설명해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일단은 그 아이의 슬픔에 먼저 공감해주는 게 좋다는 걸 느낀 일이 떠오른 것이다.


‘독해력 훈련’ 책을 3권이나 끝냈는데도 사진 한 장 찍지 못한 아이에게, ‘전에는 사진 찍는다는 규칙이 없었어’라는 타당한 말이 과연 얼마나 아이의 마음에 와닿을까? 그래서 일단 아이를 교실 밖으로 따로 불러내 간식을 챙겨주며 달랬다.


‘그동안 책을 여러 권 끝냈는데 사진을 못 찍었으니 정말 속상했구나.’라고 말해주며 눈물도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전에는 사진을 찍는 규칙이 없었다고 설명해 줬지만, 아이의 속상한 마음이 다 풀어지지는 못했다. 결국 수업이 끝나서도 햇살이는 원망의 눈빛을 거두지 않고서 하원했다.


햇살이를 보내고 나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대처했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의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왜일까? 계속 고민하다 답을 찾았다.


‘햇살이를 챙겨주지 않는다는 오해는 풀어줬어야 했는데!’


뒤이어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분노를 올바르게 말로 표현하는 법도 가르쳐 줬어야 했는데.’


햇살이를 오랫동안 지켜봤을 때, 햇살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상대를 탓하면서 투정을 부렸다. ‘선생님 저 속상해요.’라고만 말해도, 마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데도 ‘선생님이 이러니까, 선생님 잘못이에요!’라는 식으로 핀잔을 주곤 했다. 공감해 주는 것도 필요했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건 가르쳐야 했다.


이미 그 뒤로 꽤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지금이라도 상상을 해본다. 햇살이에게 간식을 주고 안아주며 슬픔에 공감을 해준 건 좋았다. 이제 그때는 하지 못했던 말을 해줄 거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 있고 분에 차 씩씩거리는 햇살이의 손을 잡는다.


‘햇살아, 그런데 일단 너에게 사진을 찍어주지 않았다고 해서 너를 일부러 챙겨주지 않았다는 생각은 오해야. 우리 선생님들은 다 햇살이와 모든 학생들을 사랑해. 단지 전에는 사진을 찍어주는 규칙이 없었을 뿐이야.’


‘그리고 햇살아 화가 나거나 속상할 때는 선생님 저 속상해요, 이 솔직한 한 마디면 충분해. 굳이 학원을 끊을 거예요, 이 학원 별로예요, 같은 말을 하면 듣는 사람의 기분이 상해서 햇살이의 감정까지 잘 못 헤아리게 될 수 있어.’


이렇게 생각을 해둬야, 앞으로 혹시나 내가 만날 수많은 햇살이들이 화를 내는 상황에 처할 때 차분하게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평소와 다르다면, 그 이유를 물어줄 걸


“선생님, 오늘 수업 5분 일찍 끝내주세요.”


평소엔 그런 말을 안 하는 아이가 그렇게 말하니 당황스러웠다. 뭐라고 답을 할지 머뭇거리는 동안 햇살이의 말을 들은 다른 아이들도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도 일찍 끝내주세요!”


“저도요, 저도 일찍 끝내주세요!”


아이들이 다 같이 일찍 끝내달라고 소리치니 조용했던 수업 분위기가 왁자지껄하게 바뀌었다. 수업 분위기는 한번 흐트러지기 시작하면 다시 잡기가 어렵다. 나는 순식간에 수업 분위기를 산만하게 만든, 미꾸라지 햇살이를 살짝 흘겨보았다.


수업을 일찍 끝내는 걸 싫어하는 학부모도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외침에 대답하지 않았다. 잠잠해지려는 찰나, 햇살이가 내가 대답하지 않자 집요하게 묻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 5분 일찍 끝내주시면 안 돼요? 제발, 제발요. 제발요. 제발!”


이대로 가다간 확답을 받기 전까진 수업 시간 내내 집중을 안 할 게 뻔했다.


“햇살이가 수업 잘하면!”


일부러 에둘러 대답했더니 햇살이는 수업 내내 자신이 5분 일찍 갈 수 있는지 확인받고 싶어 했다. 수업 중 불쑥불쑥 자기가 5분 일찍 갈 수 있느냐며 계속 물어보았다. 햇살이가 그렇게 질문을 할 때마다 주변 아이들도 자기도 일찍 끝내달라며 아우성치니 그날 수업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었다. 힘겹게 수업을 진행하니, 어느덧 거의 수업을 마칠 시간이 되었다. 햇살이는 수업이 끝나기 5분 전이 되자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이제 저 제발 끝내주세요. 저 미쳐버릴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내 안에 있는 인내심의 끈이 끊어져 버렸다. 오늘 햇살이가 내내 일찍 끝내달라고 하는 통에 힘들게 수업한 상태였다. 그런데 햇살이가 저렇게 말하니 나도 속이 상해 햇살이를 향해 정색한 뒤 이렇게 말했다.


“햇살아. 우리가 언제부터 5분 일찍 끝내주는 게 당연한 거였죠? 우리 원래 수업 끝마치는 시간이 몇 시에요?”


정색한 내 얼굴에 햇살이는 많이 당황한 것 같았다. 내 질문에 어물거리던 햇살이는 갑자기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화난 표정을 짓고 있던 나는 매우 당황해서 허둥댈 수밖에 없었다. 햇살이가 울면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 오늘 학교에서 숙제를 너무 많이 내줬어요. 학교에서 수학책을 5장을 풀어오래요. 빨리 집 가서 그거 풀려고 했어요. 학원 숙제도 많이 밀린 상태여서요…….”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우는 햇살이를 보자 미안한 마음이 가득해졌다. 그래, 생각해 보면 평소엔 이런 말을 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햇살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울음을 달래주었다. 햇살이를 보내고 나서 후회가 밀려왔다.


‘햇살이는 평소에 뺀질거리는 아이도 아니었는데. 평소와 다르다면 한번 그 이유를 물어봐 줄 걸.’


다음에는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아이가 있다면, 무조건 훈육을 하는 것보다는 그 이유를 먼저 세심히 살펴주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식으로 유독 실수투성이에 엉망진창으로 수업한 날이 가끔 있곤 했다. 중요한 독해력 훈련을 빠트렸다거나, 재시험을 볼 때는 내가 함께 도와줘서 통과할 수 있게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거나, 오늘 독서노트는 마무리시켜야 했는데 끝까지 봐주지 못했다거나, 그거에 실망한 아이가 울음을 터트린 날이라던가.


그렇게 최악의 선생님으로 보낸 날, 정신이 반쯤은 나가 있는 나에게 한 아이가 갑자기 무언가를 건넸다. 나를 그려준 그림이었다. 멍하니 받아 보는데 햇살이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생님 좋아해서 그린 그림이에요. 선생님을 예쁘게 그렸어요.”


오늘 정말 최악의 날이라고 생각한 날에 아이가 준 그림 선물을 받았다. 그 덕에 실수투성이인 선생님인 것 같다는 죄책감이 조금은 가시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이렇게 실수하는 부족한 선생님이지만, 그거랑 별개로 아이들은 내가 자기들을 사랑한다는 걸 아는구나…….’


그런 확신이 들었다.


아이들은 내가 매일 매일 새로운 실수를 해도 용서해 주었다. 왜냐하면 내가 부족한 선생님이라도, 내가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걸 알아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건 ‘지속성’이었다.


이렇게 매일 새로운 실수를 하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사랑하는 걸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결국 진심은 전해졌다. 계속해서 사랑할 것이기 때문에, 더 잘 사랑하고 싶어서 실수가 있으면 회고했고 고치려고 노력했다. 내가 잘못한 상황이 생기면 부끄럽기는 해도 곧 ‘그래도 하나 배웠다’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자 처음부터 잘하는 선생님은 될 수 없었지만, 계속해서 좋은 선생님이 되려 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마음을 더 잘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안다. 1년 차가 되었어도, 앞으로도 나는 실수를 계속해서 할 것이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또 놓치게 되는 게 생기고, 누군가를 또 속상함에 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는 아이들을 계속해서 사랑할 것이라는 거다.


그러면 내가 부족하고 실수하는 상황에 처해도


그것들이 다 미래의 나를 위한 배울 점이 될 것이라는 걸 안다.



완벽하지 못하고 실수투성이인 나에게 집중하기보다는


무언가를 꾸준히 하려는 그 마음을 더 소중히 여기려고 한다.




Q. 

실수하고 부족할지라도

내가 꾸준히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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