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30 발송 레터 : 한 살 더 먹는 것만으로도
내가 이 복만큼은 많이 받았다고 확신하는 복이 있는데, 바로 ‘인복’이다. 특히나 ‘자매복(?)’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내 주변에는 많은 좋은 언니들과 여동생들이 넘쳐나니까 말이다. 이 언니⦁여동생들과 시간을 보내면 해가 화창할 때 카페에 들어가서, 날이 어둑해지는 마감 시간까지 앉아있는 건 쉬운 죽 먹기요, 고민거리가 있었다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해결책을 얻고 가기도 한다.
특히 내가 힘든 시간을 보냈을 때는, 내 곁을 다양한 언니들이 함께해줬다. 그런 언니들이 있었기에 마음이 든든했다. 그렇게 힘들면서도 마음만은 든든했던 시간을 거치자. 나도 누군가에게 ‘언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의 레터는 내가 어떤 언니가 되고 싶은지 써볼 것이다.
‘대체 불가능한’ 언니
‘일터에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없구나…….’
학원에서 일하면서 내가 배우게 된 점이었다. 나는 선생님들이 각자의 여러 사정으로 2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바뀌기도 하는 학원에서 근무했다. 선생님들이 그렇게 많이 바뀌는데도, 학원은 어떻게든 굴러갔다. 아이들도 낯선 얼굴의 선생님이 새롭게 교실에 있어도, 전에 근무하던 선생님을 찾지 않고 태연히 수업에 집중했다.
이 학원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선배 선생님이 떠난다고 했을 때 나는 걱정이 앞섰다. 우리 학원의 책을 가장 많이 읽었고, 가장 오래 일하신 만큼 아이들과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오래 근무한 선생님이 떠나고 새로 온 선생님들도 각각 큰 장점들이 있었다. 한 새로운 선생님은 엑셀에 능하면서 행정 관리를 전문가처럼 해냈다. 그리고 그건 지금의 학원에 정말 필요한 능력이었다. 오래 근무한 선생님의 빈자리가 빠르게 지워지는 걸 보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일터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없다는 걸 말이다.
그 느낀 점을 친구 토순이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토순이에게 ‘내가 학원을 떠나면, 애들도 나를 빠르게 잊겠지’라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반쯤 웃으며 던진 나의 말에 토순이는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다가 슬며시 말을 꺼냈다.
“나는 학창 시절 동안 좋은 선생님을 만나보지 못했어.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속상하게 만들었던 선생님들만 기억에 남아. 그런데 해윤이 네 글을 읽고, 네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 내가 어릴 때 해윤이 같은 선생님을 만나면 어땠을까……. 그럼 내 학창 시절이 좀 더 밝아질 수 있었을 것 같아.”
그 뒤로 토순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해줬다.
“대체 가능한 선생님이 아니야. 해윤이라면 아이들에게 정말 기억에 남는 좋은 선생님이 될 것 같거든. 분명 아이들은 네가 떠나면 너를 오래도록 기억할 거야.”
토순이의 그 말을 듣고 눈앞에 스쳐 지나가듯이 생각나는 장면이 있었다. 우리 반에서 반년 정도를 함께했던 햇살이가 있었다. 의젓하게 잘하는 아이여서 인원 조정이 필요할 때 다른 반으로 이동시켰다. 역시나 햇살이는 옆 반에서도 씩씩하게 수업을 잘 적응해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햇살이가 보충이 잡혀 오랜만에 우리 교실에서 수업할 일이 있었다. 햇살이는 나를 보곤 반가워하며, 하나 물어볼 게 있다고 했다. 뭔가 비밀 이야기를 하듯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래서 햇살이 곁으로 다가가 자세를 낮춰주니 햇살이가 소곤거렸다.
“선생님, 저 언제 선생님 반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어요?”
햇살이가 옆 반에서도 수업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 나는 그 말에 살짝 당황했다. 내가 놀란 어조로 햇살이에게 혹시 옆 반에 문제가 있는지, 수업이 어려운지 빠르게 물었다. 나의 반응에 햇살이는 멋쩍어하며 대답했다.
“옆 반 선생님도 좋아요.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선생님하고 함께했던 시간이 그리워서요.”
그 햇살이의 말과 토순이가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 맞물려 어떤 깨달음을 주었다. 햇살이는 앞으로 옆 반에서도 수업을 잘할 것이고, 좋은 수업 태도를 지녔기에 어떤 선생님이 와도 수업을 잘할 것이다. 하지만 나와 함께했던 시간은 오래도록 간직할 것이다. 그리움을 안고서.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선생님이 많이 바뀌는 시기에, 무덤덤하긴 했어도 전 선생님 이야기를 안 한 건 아니었다. 아이들은 슬그머니 나에게 전 선생님과의 추억을 꺼내 이야기해 줄 때도 있었다. 코멘트를 적어줄 때 옆에 웃는 이모티콘을 그리는 선생님이 있었다고 말해준 아이도 있었고, 이 학원에 처음 왔을 때 자기를 활짝 웃으며 환영해주었던 자신의 첫 선생님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아이가 있었고, 어떤 선생님은 단어 뜻을 다양하게 알려줘서 고마웠다고 기억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특별했던 선생님을 오래도록 기억했다.
모든 만남은 사람에게 흔적을 남긴다고 생각한다. 어떤 흔적은 쉽게 옅어지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어떤 흔적을 다른 그 누가 와도 도저히 채울 수 없는 경우가 있었다. 그 사람만이 나에게 줄 수 있는 흔적이고, 그렇기에 그 사람이 나에게 특별해져서.
일터에서 대체 불가능해질 수는 없어.
하지만 관계에서 대체 불가능해질 수 있구나.
그걸 깨달은 이후,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내가 만날 수많은 동생들에게 ‘대체 불가능한 언니’가 되어주고 싶었다. 동생들에게도 지인인 언니들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해윤 언니만이 줄 수 있는 따스함과 웃음과 지혜가 담긴 조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 속에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다.
학원을 나온 지금, 최근에 한 햇살이에게 연락이 왔다. 처음 왔을 때 기초레벨부터 시작하고 1년간 나와 함께 수업하면서 1레벨로 끌어올린 친구였다. 내가 나가기 직전에는 2레벨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이 햇살이가 빨리 2레벨로 올라가길 바라서, 수업 중에 ‘햇살이 2레벨 되는 거 보는 게 선생님 소원이다!’라고 자주 말해주곤 했다.
햇살이가 곧 있으면 2레벨이 된다고 말하기 위해 카톡을 한 것이었다.
이 자랑을 지금 교실에 계신 선생님께 할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꼭 나에게 이 자랑을 해야 하는 햇살이만의 이유가 있었겠지. 나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띄우며 햇살이의 카톡에 답장을 보냈다.
‘그 시간을 통과’한 언니
2021년 겨울은 나에게 정말 시리고 추운 계절이었다. 번아웃에 시달려 방송작가를 결국 그만두고, 진로를 다시 찾아야 하는 시작점에 서야 했기 때문이었다. 에너지를 다 써버려 마음에 힘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진로를 고민해야 한다니 앞이 막막했다. 와중에 첫째 딸에게 기대가 높았던 부모님도 딸이 직장을 갑작스럽게 관두니 걱정을 쏟아내셨다. 번아웃이 온 나는 일단 마음 편히 쉬고 싶었는데, 부모님의 우려에 마음이 뒤숭숭한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 믿었던 지인에게 상처를 크게 받기도 했다.
그 힘들었던 시기를 나와 함께해 준 여러 언니들 덕분에 잘 지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진로를 찾아야 하는 문제로 고민했던 시기에는 쩡이 언니의 만남이 기억이 남는다. 그때의 쩡이 언니는 다이어트 업체에서 식단 관리사로 일을 하다가 퇴사하고, 나중에는 다른 진로로 새롭게 취업을 한 상태였다. 쩡이 언니는 취업 준비 기간의 괴로움을 누구보다 십분 이해해주었다. 언니도 취업 준비 기간에 우울해지고, 부모님과의 갈등도 있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새로운 진로를 찾으려 하는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주었다.
쩡이 언니에게 큰 힘을 받았던 건, 언니가 특별하고 거창한 말을 해줘서가 아니었다. 쩡이 언니가 힘들고 우울했을 취업 준비 시간을 통과해서 내 앞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해윤이 너도 분명 새로운 진로를 찾아 새 직장을 찾을 수 있을 거야’라는 위로를 느꼈다.
믿었던 지인에게 상처받은 문제에 대해서는 백호 언니에게 큰 위로를 받았다. 백호 언니도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아서 밤에 잠을 잘 못 이룬 경험이 있다고 했다. 언니에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냐고 더 자세히 물으니 백호 언니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뒤로 이렇게 말했다.
“어? 근데 이젠 그 사람 이름 기억도 안 난다. 그 사람…… 이름이 진짜 뭐였지?”
그 말이 나에게 굉장히 위로되었다는 걸 백호 언니는 모를 것이다. 그때 당시에는 잠도 못 잘 만큼 상처받았지만, 시간이 지나 현재 내 앞에 앉아있는 백호 언니는 그 사람의 이름도 기억 못 하게 되었다는 게. 지금의 나는 괜찮지 않지만, 미래의 나도 언젠가 상처 줬던 사람의 이름과 이야기를 꺼내도 아무렇지 않게 될 거라는 확신을 백호 언니를 통해서 받았다.
그 뒤로 많은 시간이 지나, 나는 올해 교회 소모임에서 리더가 되었다. 많은 동생이 생겼다. 어느 날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자의 상처를 꺼내게 되는 순간이 왔다. 과거 ‘학교 폭력의 상처’에 대한 고민 이야기가 나왔다. 공교롭게도 나도 비슷한 상처의 경험이 있는 문제였다.
나의 경험 이야기를 해주다가 문득, 그러고 보니 나도 학교 폭력 가해자들의 이름은 지금은 가물가물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위로를 전하는 나의 말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은 그들이 준 상처가 너무나 아프고 쓰리겠지만, 언젠가 그 이름이 가물가물해질 만큼 잘 지내는 미래의 시간이 올 거라고 일단 내가 그 증인 중 하나라고 전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내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위로를 전해주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받은 상처들이 그 당시엔 나를 힘들게 했지만, 지금 소중한 동생들의 마음에 공감하게 해주고 위로하게 해주니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물론 그 당시의 상처 받았던 내가 들었으면 화를 냈을지도 모를 생각이다. 하지만 ‘언니’가 되고 나니 과거의 상처가 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살만 나이를 더 먹어도 ‘언니’라고 부른다. 지금 보니 ‘한 살이라도 더 먹는 것’ 그건 정말 대단한 거였다. 고통스러운 순간을 만났어도, 굴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내며 꿋꿋이 하루라도 더 살아내었다는 것.
그래서 수많은 언니들은 당신들의 존재만으로도 위로받는
수많은 동생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면 좋겠다.
앞으로 힘든 일이 있어도 씩씩하게 살아가야겠다.
그 시간을 견뎌낸 것만으로도 멋진 언니가 될 수 있으니까.
Q.
나에게 힘을 준 언니(형)가 있나요?
나는 어떤 언니(형이)가 되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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