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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윤의 해피레터 Jun 15. 2023

스물 다섯번째 레터 : 이 결핍마저도 나의 것이라니

2023-05-14 발송 레터 : 사람을 고칠 순 없다 


우리 아빠가 어떤 분인지 설명하려면 ‘핸드폰 거치대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에게는 사은품으로 받은 핸드폰 거치대가 있다. 넙죽한 토끼모양의 얼굴에 핸드폰을 둬 화면을 보면, 짧은 다리가 받쳐주는 거치대였다.

(이렇게 생긴 핸드폰 거치대인데모양을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쇼핑)


사은품인 만큼, 뛰어난 퀄리티는 아니었지만 밥 먹을 때 유튜브를 보기에는 꽤 유용했다. 나는 그 정도의 퀄리티에 만족하며 핸드폰 거치대를 자주 사용했다. 어느 날, 아빠가 핸드폰 거치대를 사용하며 식사를 하는 나를 봤다. 아빠는 그 거치대를 들고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이리저리 돌려보며 말했다.


"이거 만든 사람이 물건을 잘못 만들었네. 거치대 다리 길이를 늘려서 각도가 45도가 되게 해야지. 거치대 다리가 짧으니까 각도가 잘못됐어. 네가 고개를 숙이고 보게 되잖아."


아빠가 말하지 않았으면 나는 핸드폰 거치대의 각도가 45도가 되지 않는다는 건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이대로도 괜찮아요, 아빠. 밥 먹을 때만 보는 데 뭐.”


그렇게 말하곤 나는 아무렇지 않게 핸드폰 거치대를 사용했다.


다음 날 내 책상 위에는 다리에 나무판자 조각이 덧붙여진 핸드폰 거치대가 올려져 있었다.


나무판자를 덧붙여서 거치대의 다리가 부자연스럽게 길어졌는데, 아빠가 흰색 테이프로 꽁꽁 밀봉해 튼튼하기는 했다. 우리 아빠는 공업 고등학교를 나왔고, 공업 고등학교의 선생님이었으니 뭔가를 만들거나 고치는데 능했다. 아빠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이렇게 다리를 늘려놔야 각도가 45도로 맞지.“


나는 핸드폰 거치대를 어색하게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아빠도 평소에 나를 이렇게 고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완벽한 각도, 45도로.


아빠는 내가 ‘교정’이 많이 필요한 사람처럼 대할 때가 있었다. 엠비티아이로 모든 걸 설명하려 하면 안 되겠지만, 구독자들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말하자면 아빠는 ISTJ 유형이고 나는 ENFP 유형이다. 성격을 이루는 네 가지의 요소 모두 다른 우리는 자주 부딪치곤 했다.


공업고등학교의 선생님으로 평생을 일해온 아빠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이고,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짜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였으니, 아빠는 자신의 딸이 왜 계획을 짜라고 하면 스트레스를 받는지, 왜 이렇게 체계적이지 못하고 허술한지, 왜 물건을 잘 잃어버리고 덜렁대는지, 자기 일이나 잘할 것이지 남의 걱정은 왜 사서 하는지, 왜 이렇게 감정적이고 작은 일에도 눈물을 잘 흘리는지, 별 거 아닌 일에도 상처를 왜 이렇게 잘 받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충분히 편하게 쓰고 있었던 핸드폰 거치대의 다리를 늘려 45도 각도를 맞춘 우리 아빠.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아빠기 때문에, 나를 그동안 그렇게 고치고 싶어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롱다리가 된 토끼 모양 거치대를 보고 떠올렸다.


‘하지만…… 사람을 물건처럼 고칠 수 없지 않나.’


아빠가 지적한 부족한 점이 고쳐진 박해윤을 상상해보았다.


계획을 완벽히 짜는 박해윤, 자기 자신이 가장 우선이라 남 걱정은 안 하는 박해윤, 철두철미하고 물건을 잘 안 잃어버리는 박해윤, 이성적이고 냉철하고 공감 능력은 떨어지는 박해윤, 이해타산이 밝고 실용적인 걸 가장 최고로 여기는 박해윤, 인문학적 지식보다는 공업을 더 최고로 여기는 박해윤...


거기까지 상상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저 박해윤이 진짜 나인가?

그냥 여자 아빠 버전이 아닌가.


그 순간 깨닫게 되었다.


나의 결핍도, 부족한 점도 나의 것이구나.


고쳐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 결핍을 빼 버리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허당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실수를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내가 좋고, 체계적으로 계획은 못 짜지만 하고 싶은 일은 해내고, 눈물이 많고 여려서 남의 일에 같이 슬퍼하고, 걱정을 미리 해서 누군가를 잘 챙겨줄 수 있고, 숫자계산에는 약하지만 글쓰기를 할 수 있는 내가 좋다.


아빠는 그것들이 다 내가 고쳐야 할 점이라고 이야기했지만, 타고난 나의 성격은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걸 깨닫기 전까지, 나도 아빠의 말을 들으며 나의 타고난 부분을 미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결핍들은 고칠 수도 없고, 나의 개성이기 때문에 '고치는 것'보다는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남의 걱정을 사서하는 사람이니까 운동을 해서 체력을 기르자, 나는 덜렁대니까 짐을 미리 싸두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놓자, 계획을 체계적으로 못 짜니까 나를 집에 두지 말고 스터디 카페에 가둬놔서 마감은 무조건 지키게 하자.


이렇게 결핍은 그 사람의 것이라는 걸 깨달은 뒤부터는 타인의 결핍도 수용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 방법도 아빠와 있었던 일로 깨닫게 되었다. 일명 '고르곤졸라와 토마토 피자 사건'이라 불리는 한 가지 에피소드를 더 소개하겠다.


마트에서 고르곤졸라 피자와 토마토 피자를 1+1 행사를 하길래 사온 적이 있었다. 엄마와 아빠와 내가 그 두 판을 나란히 두고 나눠먹을 때였다. 아빠와 대화하고 싶어서 내가 물었다.


"아빠는 고르곤졸라가 더 맛있는 것 같아, 아니면 토마토 피자가 더 맛있는 것 같아?"


여기서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대답은 '토마토 피자가 맛있는 것 같아' '고르곤졸라 피자가 더 낫네' 또는 '둘 다 맛있네' '둘 다 별로야'일 것이다. 그런데 아빠께서 이렇게 대답하시는 거다.


"해윤아 두 피자는 목적이 다르게 만들어졌고, 둘은 다른 맛이잖아. 왜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걸 물어보니? 예를 들면 자연수끼리는 비교할 수 있어. 1< 3 이렇게. 하지만 3 ? a 는 비교할 수 없잖아. 이 두 피자는 애초에 같이 비교할 수 없어."


나는 그저 아빠와 스몰토크를 하고 싶어서 물어봤을 뿐인데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 짧은 순간 속에서 분노와 함께 별 갖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아빠는 항상 이런식이야! 내가 대화를 하려고 하면, 내 대화에서 사실관계를 따지고 토론을 하려고 해. 왜 저렇게밖에 대답을 못하지?'


분노에 찬 상태에서 내가 화를 내려할 때, 엄마가(ENFP) 피자 한 조각을 아빠의 입에 욱여넣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런 말 할 거면, 이거나 한 조각 더 먹어!"


아빠는 엄마한테서 피자를 받아먹고는 순박한 아이처럼 헤헤 웃어보였다.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사실 관계를 따지던 선생님의 모습은 어디가고, 해맑게 피자를 맛있게 먹었다. 엄마는 농담으로 집안의 평화를 지켜냈다. 엄마가 농담으로 받아치지 않았다면, 나는 '왜 아빠는 늘 그런 식으로 말하냐'. '이래서 아빠하고는 대화를 못하겠다'라고 말하며 화를 폭발했을 것이다.


엄마가 아빠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아빠의 대답에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돌아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대답은 '토마토 피자가 맛있는 것 같아' '고르곤졸라 피자가 더 낫네' 또는 '둘 다 맛있네' '둘 다 별로야' 이 네 가지밖에 없다고 나도 모르게 규정해놓았기 때문이다. 즉, 거기서 벗어난 아빠의 대답은 '틀렸다'라고 생각했고 그 대답을 고쳐야 한다고 여겼기에 화가 났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아빠가 늘 너무 이성적이고 냉철하고 내 말에 잘 공감해주지 않아 불만이었다. 아빠가 평생 나를 고치고 싶어한 것 같다고 앞에 썼는데, 나도 어떻게 보면 이성적인 아빠를 공감을 잘 해주는 아빠로 계속 고치고 싶어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아빠도 내 고민에 대해 나와 대화를 할 때면 끝내 답답해하셨다. 당신에게 왜 이렇게 공감을 바라냐고 말이다. 아빠는 공감을 해주기 보다는 딸의 고민을 해결해서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하셨다.


다정하게 대화해주고 공감을 먼저 해주고, 나의 아픔에 울어주는 아빠가 우리 아빠일까? 그건 그냥 박해윤의 남자 버전이였다. 우리 아빠 박종석은 논리적 흐름이 정확히 맞아야 하고, 토론하는 걸 즐기며, 울 시간에 차라리 문제를 해결해주는 걸 더 낫다고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볼펜을 쓰면서, 볼펜에게 왜 물감이 나오지 않냐고 화를 내서는 안 될 것이다. 볼펜은 검은 잉크가 나오도록 만들어진 물건이기 때문이다. 수채화를 그리고 싶다면 물감을 묻힌 붓을 드는 게 맞다. 나는 지금까지 볼펜인 아빠를 향해 '나를 사랑한다면서 왜 물감이 나오지 않냐'고 화를 내고 있는 셈이었다.

 

이제 나는 아빠가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을 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화를 내지 않는다. 나에게는 공감을 해줄 수 있는 좋은 언니 동생들이 이미 많다. (해피레터 3편 참고  https://stib.ee/jbZ7 [언니가 되고 싶어] ) 공감을 받고 싶은 일이 생겼다면 그 자매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된다. 아빠께는 해결 방법에 대한 조언을 얻으면 되는 일이다.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사랑스러운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나,

또는 누군가를 내 입맛대로 바꿔야만 사랑한다는 건 반쪽짜리 사랑이라는 걸.


엄마는 '어떤 맛의 피자가 더 좋아?'라는 질문에

'그건 비교해서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야'라고 대답하는 우리 아빠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니까, 같이 화목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건,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의 결핍까지도.


나는 이제 내가 물건을 깜빡 잊고 집에 두고 오더라도 예전처럼 '박해윤 너는 왜 이렇게 덜렁거릴까!'하며 나를 너무 괴롭게 하진 않는다.


'음, 박해윤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서 그래~' 라고 나에게 대답해준다. 그 뒤 한 마디를 더 보탠다.


'그러니 다음에는 집 나가기 전에 체크리스트 한번만 더 읽어보자.'


나를 스스로 그렇게 수용해주니, 타인에 대해서도 분노할 일이 줄고 너그러워지게 되었다.


어떤 사람을 보고 '저 사람, 저런 점은 고치면 좋겠는데.'생각이 들면 이렇게 마음을 바꾸려고 한다.

 

그래, 그건 너의 것인 결핍이구나!

그 결핍이 너를 너로 되게 하는 구나.

 

그 결핍을 고치는 게 아닌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아가기를




Q. 

나의 결핍은 무엇인가요?

나는 그 결핍을 어떻게 다루고 있나요?




-<해윤의 해피레터> 시즌 3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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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윤의 해피레터 시즌 3이 다섯 편의 레터로 종료되었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D 

올해 하반기에 시즌4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모두 몸 건강히 안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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