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라고?
내 회사생활 가장 도움이 됐던 한마디(1)
4년 전, 금융 주임으로 일할 때 이야기다.
"야, 너 무슨 일 있냐?"
업무 마감을 하고 자금실로 들어오는 내 모습이 평소와 달랐는지 먼저 들어와 시재금을 정리하던 동료 언니가 물었다.
"아니.. 제가 자금실을 맡은 이후로 종종 돈이 안 맞는 일이 있다고... 누가... 5만원 묶음에 한 두장씩 빠져있고 그렇다고..."
"안 맞으면 그때 얘기하지. 지랄하네. 누가 그래?"
"그러게요. 왜 지금 와서."
시원하게 욕을 해주었으니 해결방법도 얘기해주려나 싶었는데 언니는 그걸로 끝이었다. 나에게는 너무 중요한 일이라 도대체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팀장님에게 말해야 하나 한숨을 쉬고 있으니 언니는 한마디를 더 해주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너보고 돈 내놓으래? 지가 틀려놓고."
그렇게 끝이 났다. 금융담당으로서 돈이 안 맞는 일은 생겨선 안됐고 그랬다면 원인을 찾아 메꿔놔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정말 내 실수였다면 그냥 넘어갔겠나? 당장 뛰어와서 따졌을 것이다.
어쩌라고.
사실은 언니의 성의 없고 투박한 대꾸에 조금 마음이 상했다. 엄한 소리를 한 직원도 원망스러웠지만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는 언니에게도 서운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렇게 넘길 일이었다. 실수가 없었다면 신경 쓸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물론 당시의 나는 왜 돈이 맞지 않았을까? 정말로 부족한 일이 있을 수 있나? 여러 가능성을 수없이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리는 없었다. 혹시나 사람이 바뀌면 이런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 다른 국에 돈을 보낼 때는 한국은행에서 온 비닐 그대로 돈을 보내거나 몇 번씩 세어 확인, 또 확인을 했으니까.
걱정을 하면서도 언니의 '어쩌라고?'라는 말이 계속 생각났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을 가득했지만 결국 그래서 어쩌라고? 원하는 게 뭐야?라는 말이 내입에서도 나오게 됐다. 혹여나 잘못이 있다면 경찰을 대동하고 오던지,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했다. 그게 아니라 애꿎은 사람에게 아무 말이나 내뱉은 것이라면 그분이 내게 사과를 하는 것이 다음 할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 그분은 내게 사과를 했다. 말을 잘못했다고. 모자란 일 없고 당시 계산을 잘못한 자기 실수였는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그 말을 들으니 더 화가 났다.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자기가 정말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사람, 또는 상대가 약한지 강한지 알아보기 위해 시비를 거는 사람.
경력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지는 것들이 생겼지만 새로운 사람, 새로운 업무 앞에서는 여전히 작아진다. 퇴근 후까지 일을 끌고 와 고민하기도 하고 일요일이면 출근할 생각에 오후 시간부터 우울해지며 큰 행사가 잡힌 주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내게 헛소리를 한 그 직원처럼 때론 아무 잘못 없는 사람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우는 사람도 여전히 있다. 그때마다 나는 '어쩌라고' 라는 말을 부적처럼 마음에 붙인다. 겉으로 내뱉진 못해도 속으로 백번씩 말하며 말 못할 감정을 쳐내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괜찮아진다. 정말이다.
회사 스트레스가 가득한 누군가의 글을 읽다 갑자기 4년 전의 내가 생각났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은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고 어쩔 수 있는 일들은 대응을 하면 된다고 깨달은 바를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런 말을 듣는다고 없어지는 불안이 아니란 걸 안다.
그냥 그렇다.
내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