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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FNE Sep 02. 2019

코토바 EP 언어의 형태 - 3

디자인과 콘셉트


디자인과 콘셉트


곡을 만들 때의 감정을 그려 보았을 때  그것들은 흐르고 있었다. 그늘진 동굴 속을 조용히 흐르는 물들이었다. 지하에 있지만 완전히 고여있지는 않았다. 웅덩이에 모이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흘렀다. 멈추지 않았다. 차분하고 자연스러운 결로 움직이며 깊은 곳에는 우울감이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전면에 내세우는 음악은 아니다. 동력원이 가라앉은 우울이지만 주된 모습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고, 흐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 위에는 빛이 비치는 장면을 생각했다.



물과 빛과 면(나의 아이디어 이미지)




빛과 숲 - 코모레비木漏れ日(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됸의 의견 이미지


중앙에 어두운 구체가 있는 이미지(마커의 의견)

EP 수록곡의 모티브를 대부분 나 자신이 가져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미지에 대해 객관적이 되긴 어려웠다. 무엇보다 어둡게 표현하고 싶진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물과 빛과 면의 이미지로 가득했고 그것을 우기고도 싶었지만 그건 함께 만드는 앨범에서 고집부릴 부분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감상도 중요했다. 멤버들의 여러 가지 생각이 궁금해서 일종의 숙제를 내기에 이른다. 멤버들은 대학 리포트 같다고 했지만 모두 충실히 답해주었다. 같이하는 자들의 구체적인 생각을 알 필요가 있었다.


        
코토바 ep 발매 관련 과제
1. 코토바의 곡들에 대한 ‘자신의 다양한 감상’을 서술
2. ‘코토바’에서 연주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 서술(사상, 마음가짐, 욕구 등)
3. 코토바에서의 ‘자신의 연주와 사운드’에 대한 감상을 서술 (자신의 연주에는 본인의 어떤 ‘성질’이 담겨 있는가?)
4. 코토바를 함께 하고 있는 ‘타인들’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
5.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생각하는 코토바의 이미지를 ‘한 장의 사진(그림)으로 묘사’ 한다면? (색감, 구조, 형식, 레퍼런스 등이 내용에 포함)
6.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넣고 싶은 앨범명을 정해보시오.

위의 내용을 ‘솔직하게’ 서술해주십시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질문의 답을 접하면서 각자의 인간은 참으로 다양하다고 생각했고 질문 자체가 너무 감상적이진 않은가에 대해 고민한 것 같다. 나는 내향적이며 깊게 파고들어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위의 설문을 통해 각자의 사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과 각 인간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각각의 인간은 인생의 방향성에 대한 욕구가 있지만 그 형태도 많이 달랐다. 멤버들의 답변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됸 - 내가 더 열심히 잘할게.

유페미아 - 내 즐거움은 알아서 찾는다.

마커 - 좋음. 재밌게 하자.


(어쨌든) 디자인 콘셉트는 의논 끝에 코모레비木漏れ日(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를 모티브 삼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어둡지 않고 빛이 비치며 녹색이 많아서 나는 찬성이었다. 코토바의 음악과 어울릴까 아닐까에 대한 의논을 많이 했는데 여러 가지 상상은 리스너 여러분께 맡기기로 했다. 꽤 괜찮고 너무 무겁지 않으며 희망적인 이미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디자인은 됸의 싱글 자켓을 작업한 디자이너분께 의뢰하기로 했다.

코토바 EP '언어의 형태' 공식 커버 이미지(디자인-태태숲)

최종 이미지인데 생각대로 잘 나왔다. 녹색의 숲이 싫었는데 그것은 어두웠기 때문 같다. 최근에는 기타들도 녹색이고 옷도 녹색들이 많다. 어쨌든 빛이 많이 들어오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좀 더 트로피컬 한 이미지였다. 그것이 앨범 자켓이고 그 안의 음악들을 상상하면 로우파이하며 R&B 음악의 이미지가 있었다. 꽤 귀여웠지만 프로듀싱하는 음원들은 꽤 클린한 음색이면서도 직관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깨끗한 색감과 빛이 비치는 밝은 이미지로 작업해주시길 요청드렸다. 독자들과 리스너들은 이미지를 맨 처음 본다. 현재는 스크린 중심으로 이뤄지는 콘텐츠 시대의 정중앙에 있다. 듣는 음악을 만들고 그것들로 영향을 주려는 마음이지만 커버를 통해 시간적인 자극과 영감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음원 작업 때 보다도 객관적이고 타인의 시선으로 생각하려 노력하였다. 희망적으로 아름다워야 했다.




'언어의 형태'를 발매하며


창작물을 만드는 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어떠한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다른 이를 창작물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혹은 내보이고 싶은 어떤 욕망. 창작물을 만드는 근원적인 원동력은 누구나 개인적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창작자가 살아온 삶의 어떤 부분들을 정돈하여 만들어 발간하고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동력으로 삼는다던지 하는 것. 그러한 의지가 창작물에 담긴다. 하지만 거대한 트로피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거대한 탑은 혼자 내면에 세울 생각이고, 이는 4인 구성 모임의 협동작품이다. 큰 틀과 프로듀싱은 내가 했지만 그 속에 모종을 심고 가꾼 것들은 모두의 몫이다. 작곡, 편곡 부분에서 각자가 몰입할 수 있는 연주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의논했다. 곡의 바탕들에서 각자가 끓어오를 수 있는 연주 형태를 담길 원했다, 자신의 언어를 통해서. 그것들이 모여서 '언어의 형태'가 되었다. 각자의 심연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는 그것들이 모여 또 다른 심연이 되었다.


8/29 온오프라인에 '언어의 형태'가 발매되었다. 8/31 발매 공연도 잘 치렀고 많은 분들의 축하를 받았다. 이 앨범이 많이 사랑받았으면 좋겠고, 듣는 분들끼리 많은 이야기가 오갔으면 한다. 곡 안에 익숙한 음성언어는 많이 없지만 말없는 모든 표현에는 의미가 있다. 그것들에 허투루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듣는 이 각자의 삶에 녹아들어 그들의 삶에 이바지했으면 한다. 함께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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