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 초대 최강전’에 출전했다. 처음으로 참가한 역도 대회였다. 여섯 번 시도 중 다섯 번 성공했다. 메달권에는 한참 못 미치는 무게였지만 평소 기록보다 5kg씩이나 늘었다.
이번 대회는 지자체나 협회가 주관하는 대회와 달리 기업에서 연 대회였다. 대회를 주최하는 태인스포먼트는 ‘엘리코’ 바벨을 수입하여 판매하는 회사다. 엘리코 바벨은 올림픽에서 쓰이는 전 세계 공인 바벨이다. 태인스포먼트에도 역도 선수 출신이 많이 일한다는데, 역도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새로운 행사를 계획한 것 같았다.
대회장에 있던 엘리코 플레이트와 태인 뻥판. 뻥판은 바벨의 손상을 막기 위해 무게에 비해 부피를 키운 플라스틱 플레이트다 (분명 제대로 된 이름이 있을 것이다).
태인에서도 처음 시도한 대회라서 예선을 생략하고 본선으로 시작했다. 신청자들이 무게 최고 기록을 제출하면, 상위 7위까지만 참가를 허락하는 식이었다. 올여름 응원 갔던 전국생활체육 역도대회가 무척 재미있어 보여 어떤 대회라도 참가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대회만큼은 신청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나는 역도를 배운 지 1년이 갓 넘은 풋내기이고, 여름 역도대회에서 본 내 체급 사람들은 정말 강했다. 대한민국 여성의 평균 체중은 56.4kg이다. 내가 들어가는 55kg급에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으며, 강한 사람들도 비율만큼 많다.
반면 남편은 메달을 딸 수 있는 실력과 체급을 동시에 갖췄다. 그는 대회 소식을 듣자마자 냉큼 신청하고서, 한참 전부터 체중을 조절하며 사람들에게 대회 참여를 권했다. 나에게도 매번 갱신되는 신청자 명단을 보여주며 같이 나가기를 은근히 바랐다. 놀랍게도 마감일까지 내 체급에 7명이 채워지지 않고 있었다. 되든 안 되든 질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마지막 날 저녁, 대회를 신청했다.
신청 인원이 많지 않은 덕에 7명 안에 들 수 있었다. 일주일 속성 다이어트를 하며 대회를 준비했다. 장소 탓이 컸다. 저번 대회는 서울과 가까운 곳에서 열려 사람들이 많이 출전했다. 이번 대회는 차 없이는 갈 수 없는 일산 교외에서 열렸다. 게다가 참여자 확정 후, 7명을 채우지 못한 체급의 경기가 합쳐지며 대회 시간이 당겨졌다. 참가인원에서 이탈자가 또 나올 판이었다. 대회에 참여하는 것도 실력이니, 우리는 전날 일산에 숙소를 잡고 새벽에 대회장을 향했다.
새벽에 도착한 대회장에는 관계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텅 빈 연습장에는 창고에서 갓 꺼낸 듯한 엘리코 바벨과 플레이트가 있었다. 경기는 경량급에서 중량급으로, 남녀를 번갈아 진행했다. 남편이 경기를 준비하는 동안 쫄쫄 굶은 채 아침을 보내야 했다. 내 경기는 점심 때나 시작하니, 체중을 재기 전까지는 물 한 모금도 쉽게 마실 수 없었다. 굶은 채로 힘을 함부로 빼면 안 되니 그 유명한 엘리코 바벨도 함부로 들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그저 시간이 지나 내 경기가 오기를 바랐다. 그러나 해가 뜨며 양복을 입은 협회 관계자와 심판이 도착했고, 하나 둘 참가자들이 연습장에 도착하며 몸을 풀기 시작하자 내 몸에도 서서히 긴장이 스며들었다.
마침내 계체 시간이 왔다. 역도는 경기 두 시간 전에 체중을 측정한다. 몸무게를 재고 나면 그때부터 체급 제한에서 자유로워진다. 배고픈 건 둘째치고 경기 전까지 컨디션을 회복해야 해서 얼른 도시락과 간식을 먹어야 했다. 긴장한 탓인지 배가 고프지도 않았는데, 막상 밥이 들어가니 너무 맛있어 금세 해치웠다. 밥을 먹은 후에는 가만히 앉아 남편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았다. 막 도착한 코치님이 의자는 선수 앉는 곳이라 면박을 주어서 의자에서 비켜야 했다.
남자 경량급 경기가 시작한 다음부터는 시간이 아주 빠르게 갔다. 남편 경기 이후 바로 내 경기이니, 남편이 시합하는 시간에 나도 몸을 풀어야 할 것 같았다. 역도는 몸이 풀리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운동이다. 빈 바벨부터 천천히 시작해서, 경기에 들 무게보다 조금 가벼운 무게까지 들어보아야 몸도 마음도 편하다. 평소 연습 때는 한 시간씩 들여 무게를 올리는데, 사실은 15분이면 된다며 모두가 쉬라고 했다. 주위를 살펴보니 과연 바벨을 드는 여자는 한 명도 없었다.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을 누르며 다른 사람 경기를 보았다. 남자 경기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코치님이 몸 풀기를 허락해주었다. 경기를 끝낸 남편이 친히 바벨을 조립해 주었다. 간간히 의자에 앉았다. 이제부터 내가 선수였다.
연습장에 있던 엘리코 바벨과 플레이트 (내 무게 아님)
처음 잡아본 엘리코 바벨은 이름값을 했다. 명령 없이도 사냥감에 돌진하는 사냥개를 모는 것 같았다. 허벅지를 지나면 저절로 위로 올라가는 양 탄성이 좋았다. 무슨 비기를 썼는지 다리가 치는 힘을 어깨까지 그대로 전달했다. 처음에는 바벨이 제멋대로 들리는 느낌까지 들었지만, 무게가 늘어날수록 탄성에 익숙해지며 박자 잡기가 쉬워졌다.
역도 경기는 인상과 용상을 세 번씩, 여섯 번 반복하는 것이다. 부저가 울리면 3초 만에 성패가 갈린다. 대회 플랫폼에 올라가면서는 심판 분들께 인사하는 것만 의식했다. 연습할 때 코치님이 말해준 자세도 무엇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1차 시도로 평소에 들었던 무게를 넘었다. 머리가 텅 빈 나 대신 코치님이 대회 무게를 신청해 주셨는데, 3차까지 가보니 용상, 인상 모두 원래 기록보다 5kg씩 늘어 있었다.
선수였다면 파울이었다. 동작 두 개 다 바벨을 든 팔이 흔들렸다. 바벨을 들고 있는 나도 긴가민가했는데 관객들의 환호 속에 성공으로 묻혔다. 동호인 대회라 가능한 일이다. 심판 분들도 역도복도 없는 초보자가 메달과 하등 상관없는 무게를 들어 올리니 한쪽 눈을 감고 심사하신 것 같다. 어차피 기록 무게는 지저분한 자세로 시작하기 마련이다. 첫 대회에서 PR을 경신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뿌듯하다.
코치님은 대회에서는 스스로 판단 말고 무조건 일어나라고 했다. 심판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요란하게 고함을 지르라고도 했다.
운동 대회는 여러 번 참여했다. 10km 달리기, 장애물 레이스, 자전거로 그림 그리기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아오기도 했다. 코로나가 풀리고 나서는 심심할 때마다 포탈에 운동 이벤트를 검색했다. 그렇지만 소수가 참여하는 경쟁 대회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 순간의 실수로 성패가 갈리고, 운에 따라 얼마든지 순위가 바뀌는 경기에 다음 날 출장만 잡혀도 밤새 악몽을 꾸는 내가 긴장을 버틸 수 있을지 불안했다.
지금까지 치른 (비)공식적인 시험들이 입증하듯, 나는 긴장을 버틸 줄 아는 사람이다. 여기에 초심자의 운이 겹쳐 스스로 만족할 결과를 얻었다. 개인 기록을 경신했으니 훈련 중량도 늘어난다. 역도나 헬스는 들 수 있는 최대 무게의 비율로 훈련 중량을 정하기 때문이다. 전보다 무거운 무게로 훈련을 할 것이고, 그러면 이번 대회에서 성공한 무게도 훨씬 안정적으로 받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내 것이 아닌 무게가 내 것이 되었으니, 이제 길들일 시간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