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민 시계를 4개월 간 사용했다. 가민을 구입한 이유는 자전거 탈 때 쓰던 싸구려 심박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심박계를 다시 사는 김에 기능이 많은 스마트워치를 사고 싶었다. 그럼에도 가민은 비쌌기에, 몇 주 고민을 하다 구입한 게 올해 6월 말이다. 매뉴얼을 보며 시계를 공부했다. 시간이 지나며 나에게 필요한 기능만 골라 쓰게 되었다. 시계를 활용하며 가민의 좋은 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사람들이 왜 가민 생태계에 빠져드는 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가민을 사용하는 이유가 운동을 잘 기록하기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기록 기능은 강력하지 않았다. 예컨대 달리기나 자전거 기록이 빨라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도 바로 보이지 않는다. 달별 페이스는 가민 커넥트의 ‘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지만, 앱에서는 안 보이고 웹 페이지에 접속해야만 볼 수 있다. 사실 같은 구간에서 얼마나 빨라지고 느려지는지는 스트라바 무료 버전도 지원하는 기능이다.
가민이 다른 스마트워치보다 돋보이는 장점은 트레이닝이다. 시계 주제에 운동을 시킨다. 달리기든 자전거든 혼자 하는 운동이다. 코치 없이는 지속하기도 어렵고 향상하기는 더 힘들다. 가민 트레이닝은 적절한 훈련 방법을 제공하고 운동 중 피드백이 온다. 계획 없이 달릴 때보다 효율이 높아진다. 내 가민 포러너 255s 50만 원 정도 하는데, 스마트워치로써는 비싸지만 멍청한 코치를 무기한 고용한 비용이라 생각하면 아깝지 않다.
지금 내 시계에 들어있는 트레이닝 계획은 ‘2023 100km 라이딩 계획’이다. 일주일에 세 번씩 한 시간 내외의 훈련을 내려준다. 40초 인터벌이나 피라미드 훈련을 켠 채로 자전거를 탄다. 심박수를 측정하며 기준보다 낮게 타거나 높게 타면 시계가 경고음을 낸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자전거를 잘 타고 싶다는 욕망과는 별개로 자전거 자체는 재미있는 운동이 아니다. 자세가 단순해서 향상할 여지도 적고, 혼자서는 힘을 짜내는 것 말고는 향상할 방법이 없다. 트레이닝을 켜고 타면 항상 같은 출근길이라도 지루하지 않다.
포러너는 달리기 특화 시계이다. 트레이닝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아침마다 오늘의 달리기를 제안한다. 매일 뜨는 ‘모닝 리포트’에 어젯밤 수면 점수 외에도 6:05 페이스로 30분 뛰라고 굳이 띄워주는 것이다. 오늘의 제안을 보면 뛰어야 할 것 같다. 물론 달리기를 결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가민에 세 번 달리기가 뜨면 그중 한 번이나 가는 빈도이지만, 시계 덕분에 하지 않을 운동을 하게 되었으니 이득이다.
운동을 시키는 종목으로는 수영도 있다. 가민에는 ‘임계 수영 속도’라는, 400m 자유형 기록을 측정하는 기능이 있다. 10분 자유롭게 수영 - 400m 자유형 - 10분 자유롭게 수영 – 200m 자유형 후 무한히 자유형을 할 때 가능할 페이스를 산출한다. 단지 나의 임계 수영 속도를 알고 싶어서 주말에 자유 수영을 나간 적이 있다. 측정을 하고 200m까지 끝내니 자유수영 5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수치는 생기면 향상하고 싶기 마련이므로, 간간히 자유수영을 가서 측정해 볼 생각이다.
내 시계는 포러너 255s이다. 달리기에 특화한 시계라 자전거를 타기 위해 사는 건 적절하지 않았지만, 심박 데이터를 속도계에 넣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구입했다. 과연 포러너에는 자전거 기능이 많지 않았다. 달리기는 한쪽 손목에 찬 센서만으로 접지 시간이나 수직 진폭률같은 다양한 데이터를 주고, 데이터를 통합해 전반적인 운동 능력 향상 정도를 알려준다. 반면 자전거를 탈 때는 심박수도 측정하고, 속도와 케이던스도 자전거에 달린 센서에서 받는데도 운동이 사용자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나는 가민의 기술이면 사용자와 자전거의 무게의 합에 속도와 케이던스를 조합해 예상 파워나 운동 향상 정도를 산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데이터를 주지 않는 것은 사용자가 부족함을 느끼고 다른 가민 제품을 구입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수영을 기록하는 기능도 부족하다. 포러너는 내가 어떤 영법을 썼는지 인식하면서 기록을 주지 않는다 (가민 스윔 시리즈는 기록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영법 인식 수준도 나쁘다. 평영을 하면 자유형이라고 뜨고, 배영을 하면 평영이라고 뜨니 기록하는 의미가 없다.
이외 아쉬운 점으로, 웨이트 트레이닝도 별로다. ‘근력 운동’을 켜고 운동하면 반복수와 예상 운동 동작을 잡아주지만 100% 정확하지 않다. 세트 직후 휴식시간에 시계에서 수정이 가능하지만 버튼 두 개를 위아래로 돌려가며 수정하기는 매우 불편하다. ‘근력 운동’ 기능을 쓰는 동안 가민 커넥트 앱에 실시간으로 운동을 기록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이런 기능은 없다(근력 운동에 특화했다는 가민 베뉴라도 이런 기능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이전부터 웨이트를 기록하는 다른 어플을 쓰고 있었기에, 운동이 끝난 다음 일일이 동작과 무게를 기록하느니, 쓰던 앱을 계속 쓰는 편을 택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으므로 가민이 제시하는 급성-만성 부하에 따른 피로도 측정도 완전하지 않다.
결론. 심폐지구력 운동을 좋아하고, 코치 없이 운동하는 데도 익숙하다면 가민은 운동을 보조하는 값을 한다. 자전거가 주종목이라면 속도계 번들 세트가 더 낫고, 수영을 한다면 스윔 시리즈를 사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제품을 사도 트레이닝 기능은 있다. 손목에 무게를 느낄 만큼 무거운 것도 싫었으니, 내게 포러너 255s는 좋은 선택이었다.
+ 혹시 제가 모르는 기능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잘 쓰고 있지만 더 잘 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