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친구에게 선물로 받은 한나 아렌트 저서 3권 세트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인간의 조건', '전체주의의 기원' 인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그나마 두께가 건전해 독서 모임에서 읽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두 권은 벽돌 그 자체라 읽을 엄두를 못 내고 있었습니다. 최근에서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함께 읽었던 친구들끼리 날 잡고 '인간의 조건'을 챕터 하나씩 읽는 줌미팅을 갖기로 했지요. 마침 감사하게도 까치글방 서포터즈의 첫 책으로 '오늘을 비추는 사색'시리즈의 아렌트 입문서를 골라 읽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 덕분에 벽돌책을 시작할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 얇은 책이 저만한 책들을 설명하니 읽으면 개이득입니다.
<한나 아렌트 - 전체주의라는 악몽>은 글의 내용도 깊이도 훌륭한 입문서입니다.책은주로 '전체주의의 기원'을 설명하고 '인간의 조건'을 덧붙여 소개합니다. 전체주의가 어떻게 생겨나고 유지되는지 '전체주의의 기원'을 풀어 설명하고, 전체주의가 인간의 무엇을 파괴하는지에 대해서는'인간의 조건'을 인용합니다. 이 세계에는 여전히 독재가가 남아있습니다. 한국 인터넷에서도 가상의 적을 세워 서로 공격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이러니 21세기를 사는 우리 또한 얼마든지 전체주의의 함정에 빠질 것만 같습니다. 책은 우리 사회의 어떤 징후가 전체주의와 맞닿아있는지 생각해보게 하고, 다행히 우리 사회가 아직 전체주의에 이르지 않았음을 알려줍니다.
아렌트 전공자인 저자는 아렌트의 사상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중요한 개념을 짚어 가며 소개합니다. 역사적인 맥락을 설명하며 그 시절 사람들이 왜 유태인에게 반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 알려주면서도, 전체주의=반유대주의가 아니란 점을 다양한 예시를 들어 설명합니다. 책은 그림을 통해 전체주의가 어떤 구조인지를 한 눈에 보여줍니다. 필요할 때는 아렌트를 직접 인용한 후 뜻을 부연하여 이해를 돕습니다. 책을 읽으며 짧은 아렌트 수업을 듣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자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예시를 인용하며책을 마무리합니다. 악의 평범성을 보여준 아이히만 대신, 스스로 생각하여 유태인을 도운 독일 병사 안톤 슈미트의 일화를 알려줍니다.전체주의나 유태인 학살 같은 내용을 다루니 아렌트의 책에는 비관만 있을 것 같지만, 아렌트는 세상을 올바로 살아간 사람을 결코 놓치지 않았습니다. 저자 또한 이런 예시를 널리 퍼트려 스스로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그것이 희망이라 말합니다.
아렌트가 궁금해 입문서를 접한 독자로서는 아렌트의 대표 저작 두 권을 자연스럽게 이어주어서 좋았습니다. 아마 제가 내용을 잘 모르는 다른 저서도 많이 가져와서 설명하셨겠지요. 이렇게 얇은 책에 부록도 있습니다. 말미에 아렌트의 대표 저서를 연대기순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디딤돌 삼아 아렌트를 공부하라는 저자의 열정과 친절한 마음을 느꼈습니다.